손마디에는 40년 세월이 켜켜이 새겨져 있었다. 새끼손가락은 굽어 있었다. "일종의 직업병이죠. 주로 손을 이용해 분장하는데 특히 새끼손가락을 많이 사용하다 보니 새끼손가락이 자연스레 굽었어요."
1971년부터 시작한 분장이 어느새 40년을 훌쩍 넘겼다. 대구공업대 뷰티아트디자인계열 장병인(60) 교수는 지난 6월 지금까지 쌓아온 지식과 경험을 '분장의 정석'이라는 책에 담아냈다. 그동안 차근차근 모아왔던 사진은 물론, 삽화도 직접 그리며 현장감 있는 교본을 만들어냈다. "우리나라에 분장 관련 책이 여럿 있지만 대부분 외국 번안이나 외국 서적을 응용한 책이라 현실감이 떨어지죠. 진작부터 책을 내려고 했는데…." 10년 전부터 생각하던 작업을 지난해 초가 되어서야 시작했다. 후배들이 회갑 잔치를 하자는 것을 출판기념회로 대신하자고 했기 때문이다. "아침 6시에 학교로 출근해 문을 걸어잠그고 틈틈이 집필에 매진했어요. 그렇게 해서 1년 6개월 만에 책을 낸 거죠."
장 교수는 중앙대 미대를 졸업하고 방송국에서 20년가량 일하다 1997년 대구로 내려와 정착했다. 그 과정에서 지금까지 세지도 못할 정도로 수많은 작품에 참여했다. 또한 처음으로 지역대학에 '분장과'를 개설해 후배 양성에 매진했고 수 만 명의 제자가 곳곳에 진출해 그에게서 배운 기술을 활용하고 있다. 장 교수는 우리나라 분장사로는 처음으로 화랑에서 전시회도 가졌다. 데드마스크를 이용한 전시회, 배우들의 표정을 이용한 전시회 등 세 차례나 열었다.
분장을 하면서 에피소드도 많았다. 초창기 분장재료가 지금처럼 넉넉하지 않을 때 재료를 일일이 만들면서 한 번은 방송국에 불을 낼 뻔한 적도 있고 시간이 나면 접착제에 쓰이는 송진을 구하기 위해 산을 오르기 일쑤였다. 또한 가위로 배우들의 얼굴에 상처를 내는 실수도 여러 차례 경험했다.
그렇기에 분장을 바라보는 장 교수의 생각은 남다르다. "분장은 배우 자신이 아니고 극(劇)이 요구하는 제2의 인물을 만들어내는 것이죠. 하지만 단순히 캐릭터를 그리는 것이 아니고 명화의 기법과 선과 색이 가지는 기법 등 회화적 기법을 사용하는 예술이죠. 다시 말해 선과 색, 명암의 예술이라 말할 수 있죠. 이 세 가지 요소가 충족돼야 비로소 분장이라 할 수 있죠."
장 교수는 이번 책 발간을 계기로 분장에 대해 좀 더 세분화된 내용을 시리즈로 발간할 생각이다. 퇴직 후에는 경북지역에 분장박물관을 겸비한 후배 양성소도 하나 차릴 계획이다. 분장 외길 40년이지만 그의 분장 인생은 또 다른 시작으로 다가왔다.
전창훈기자 apolonj@msnet.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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