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신문

[문화칼럼] 몸과 예술

'몸'이 항상 문제였다. 정신과 몸을 분리하려는 이원론적인 서구 철학의 관점에서 우리의 몸은 부정적인 것으로 평가절하되어 왔다. 몸은 다스리기도 통제하기도 어려운 비합리적인 열정'감정'욕망의 통로나 매체라고 생각되었기 때문에 적절히 몸을 제어하고 규제해야만 했다. 그러니 우리의 몸이 주체가 되는 예술 또한 제대로 평가를 받지 못한 것이 사실이다. 예술의 시작은 원시시대부터라 할 수 있으며, 그 중심에 '몸의 예술'(body art)이 있었다는 것도 간과되어 왔었다.

원시미술에 나타난 보디 아트의 형태는 암각화, 조각상, 가면의 형태를 띠고 있다. 고대에서부터 어느 지역을 막론하고 사람들은 다른 동물과 달리 몸에다 그림을 그리거나 가면을 제작'사용하여 왔다. 구석기시대는 주로 암각의 형태를, 신석기시대는 주로 조각상의 형태를 띠고 있다. 암각화 속의 인물들은 춤을 추는 동작, 사냥 장면, 주술사의 모습으로 주로 등장하고, 머리에 뿔, 동물 가면 그리고 팔과 다리, 신체는 점과 선 등의 타투로 장식되어 있다. 신석기시대는 주로 비너스상이나 여신상 같은 조각상의 형태로 발견된다. 몸에 채색을 하거나 변형을 통해서 새로운 정체성을 형성하고 주술이 힘을 발휘하였다.

미술의 역사에서 몸은 무수히 많은 예술 작품의 대상이 되어왔다. 기독교적인 회화 속에서는 순교자의 몸으로, 신화적인 회화에서는 어떤 여신의 몸으로, 마네의 현대회화에서는 젊은 여인의 몸으로, 피카소와 마티스에서는 조각되고 새롭게 구성된 몸으로 재현되었다.

몸이 예술의 대상으로서가 아니라 주체로서 조형적 표현이 주목받기 시작한 것은 1960년대 이후이다. 신체를 주요 매체로 삼는 미술은 퍼포먼스의 일환으로서 보디 아트에서 선을 보였다고 할 수 있다. 보디 아트의 한 획을 그은 작가로는 이브 클랭을 꼽는다. 그는 여성 누드 모델의 몸으로 붓을 대신한 '인체측정'(Authropometrie'1960)을 제작하였다. 여기서 몸은 예술의 대상인 동시에 행위자가 된다. 즉 보디 아트는 퍼포먼스 아트의 선구로서 인간의 몸을 재료로 하는 미술 형태이다.

1960, 70년대의 아방가르드 운동 이후 포스트모더니즘 시대에 접어들면서 몸의 이미지도 변한다. 몸이 정치적 이데올로기들을 전달하는 급진적 실험 장소가 되면서 몸의 예술이 문화와 사회 속에서 특정한 메시지를 전달하는 도구로 사용된다. 상식을 뒤엎는 변형된 몸의 이미지를 통해서 기존의 사회질서에 저항하는 새로운 저항 기호로 이해된다. 그로테스크하게 재현된 몸은 규범적인 것, 고정된 여성성과 남성성과 같이 정상화된 시각의 영역에 대항하는 막강한 비판력을 가지게 된다.

최근의 보디 아트는 축제의 현장에서 '섹시한 몸' '아름다운 몸'으로서 새롭게 구성되고 주목을 끌게 된다. 주로 인간의 몸인 신체를 캔버스로 사용하여 다양한 회화적 표현이 가능한 '보디 페인팅'의 영역으로도 나타나며, 모델 즉 연기자의 몸에 의한 다양한 퍼포먼스를 통해 작품이 새롭게 완성되는 특징을 갖는다. 보디 페인팅의 고전적인 소재로는 꽃과 나비 동물 등 자연의 소재가 많이 사용되었으며, 최근에는 작품의 주제에 따라 작가의 감성을 자유롭게 표현하는 비구상적 작품이 주를 이루고 있다. 보디 페인팅의 표현 방식은 공통적으로 화려한 색채의 조화를 통한 시각적인 감성의 표현이 두드러지게 나타난다.

보디 페인팅이 우리나라 축제에서 부각되기 시작한 것은 지난 2002년 월드컵 때부터라고 볼 수 있다. 그 당시 뜨겁게 달궈진 응원 열기가 전국을 축제의 장으로 만들었으며, 그 축제의 장에서 페이스 페인팅을 비롯한 보디 페인팅이 대중화되기 시작했다. 남녀노소를 불문하고 축제를 즐기는 사람들이 페이스 페인팅과 붉은색의 치장을 통해서 '붉은 악마'라는 동질적 정체성을 부여받았다.

원시미술의 주술적 문신(타투)에서 오늘날 보디 페인팅에 이르기까지 '몸의 예술'로서 보디 아트는 다양한 사회적 의미들을 표현하는 메타포였다. 예술이 인간의 근본적인 현상인 것처럼 보디 아트 또한 원시시대부터 현대에 이르기까지 근본적인 인간의 현상이라고 할 수 있다. 신의 창조물인 몸(body)에 선을 긋고 색채를 부여하는 과정은 인간이 창조자로서 새로운 피조물인 '몸'을 새롭게 만드는 창조의 과정이라고 할 수 있다.

이현주/대구보건대 교수·뷰티코디네이션학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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