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신문

[느리게 읽기] 인간보다 뛰어난 괴생물체와 맞닥뜨리면?

제노사이드/다카노 가즈아키 지음/김수영 옮김/황금가지 펴냄

정말 있을 법한 이야기다. 이 지구상 어디선가, 70억 인구 중에 유전자 변이를 통한 전혀 다른 종족이 나타난다는 것 말이다. 이 새로운 종족은 우리 인간들을 어떻게 바라볼까.

이 책은 '인류보다 진화한 새로운 생물'의 출현에서 비롯한 인류 종말의 위협과 이를 둘러싼 음모를 추리 스릴러와 SF 기법을 통해 풀어나간 작품이다. 하지만 단순히 '잘' 읽히는 인기 소설이라고 바라보기엔 담겨진 이야기는 묵직하고, 진지하다.

급사한 아버지가 남긴 한 통의 편지를 본 약학 대학원생 고가 겐토는 아버지가 몰래 연구를 하던 실험실에 대해 알게 된다. 그곳에 찾아간 겐토는 폐포 상피 세포 경화증이란 불치병의 치료제를 개발하는 어떤 프로그램을 발견하고, 아버지가 편지에 남긴 내용에 따라 약을 개발하려 하지만 의문의 여성과 경찰이 겐토를 쫓기 시작한다.

한편 미국인 용병인 조너선 예거는 불치병 때문에 수명이 수개월밖에 남지 않은 아들 저스틴의 치료비를 위해 어떤 임무를 받아들인다. 내전 중인 콩고의 정글 지대로 가서 피그미족의 한 부족과 나이젤 피어스라는 인류학자를 없애라는 임무였다. 4명이 팀을 이뤄 출발하게 되는 그 명령에는 이제까지 본 적이 없는 새로운 생물과 조우할 경우 그것 역시 제거하라는 내용도 포함돼 있다.

'미지의 괴생물체'라고 표현했지만 직접 만난 그 새로운 종족은 인간보다 훨씬 뛰어난 능력을 지니고 있다. 그 종족은 마음만 먹으면 인간을 멸망시킬 수도 있을 것이다. 이 새로운 종족의 눈에 인간은 어떻게 비칠까.

인간의 역사를 보면 '광기'라고 밖에 표현할 수 없는 순간들을 자주 만나게 된다. 콩고 내전에서의 학살, 발칸 반도에서 일어났던 인종 청소, 르완다에서 자행된 종족 학살, 독일군에 의해 자행된 홀로코스트까지. 따지고 보면 이는 예거 일행이 정글에서 목격한, 침팬지가 다른 침팬지를 잡아먹는 역겨운 행위와 전혀 다르지 않다. 다만 침략을 주도하는 정권 중추에는 전쟁으로 자기 배를 불리는 사람이 있는 것, 그리고 자신의 금전욕을 신보수주의라는 정치 사상으로 호도하는 정치가가 있다는 점이 다를 것이다. 이들에 의해 수많은 사람들이 죽어나간다. 마치 게임 속 캐릭터처럼 말이다. 석유를 노린 침략전쟁이 '정의'라는 미명 하에 일어나고 있는 것이 바로 이 지구다.

이 책에는 미국의 패권주의에 대한 비판적인 시각도 담겨 있다. 그저 피 한방울 묻히지 않고도 수천 수만 명을 죽일 수 있는 권력자의 결정, 그리고 그 결정에 깔려 있을지 모르는 한 인간의 콤플렉스를 분석한다.

이 책은 방대한 지식을 바탕으로 씌어졌다. 인류학, 진화론, 국제정치, 의학, 컴퓨터 등 폭넓은 분야와 최신의 정보를 넘나들며 이야기를 이끌어간다. 우리의 일상 너머에서 진행되고 있는 '이성적이고 합리적'이라고 믿는 수많은 중요한 결정이 사실 비과학적이고 비이성적일 수 있다는 것을 다시 한번 일깨워준다. 그것들이 결국 우리의 삶을 움직이고 있다는 사실도 씁쓸하게 깨닫게 된다. 빠른 호흡으로 책장이 넘어가지만, 가슴 한켠이 묵직해지는 이유는 저자가 지구 반대편의 고통까지 생생하게 그려놓은 덕택이다.

최세정기자 beacon@msnet.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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