또래압력은 어떻게 세상을 치유하는가/티나 로젠버그 지음/이종호 옮김/알에치코리아 펴냄
전국 어디서나 학교나 주택가 인근 골목에는 교복을 입은 채 담배를 문 청소년들을 심심찮게 볼 수 있다. 적게는 한두 명, 많게는 10여 명이 모여 담배연기를 뿜어댄다. 바닥에는 늘 버려진 담배꽁초가 어지럽다. 오가는 행인들은 불쾌한 듯 쳐다보고는 이내 시선을 외면한다. 그들에게 "담배는 몸에 해롭다" "청소들이 담배를 피우면 키가 안 큰다" "어디, 애들이 교복 입고 흡연이냐"며 훈계를 한다 치자. 아이들이 "제가 정말 잘못했군요. 다시는 담배를 피우지 않겠습니다"라는 대답은 돌아올 리 만무하다. 매를 들어도 혼을 내도 아이들은 다시 담배를 입에 문다. 지금껏 10대 금연 캠페인은 제대로 성공한 적이 없다.
그렇다면 왜 10대들은 흡연을 하는 것일까. 담배 자체가 매력적일까. 흡연이 몸에 나쁘다는 걸 몰라서일까. 아니다. 흡연은 반항의 상징이며, 또 더 어른스러워 보이고, 어른이 된 것 같은 기분을 느끼게 한다. 또래 집단과 결속감을 느끼는 수단이기도 하다. 10대들은 가정이나 학교에서 느끼지 못하는 소속감을 또래 친구들로부터 찾는다. 이 과정에서 어투, 옷차림, 행동 등을 서로 비슷하게 하려 노력하고, 흡연이나 음주, 폭력 등 탈선행위도 자연스럽게 받아들이게 된다.
1990년대 중반까지 미국의 상황도 비슷했다. '담배가 당신을 죽일 수 있다'는 식의 공포를 자극하는 금연 캠페인은 늘 실패했다. 식상한데다 어른들의 고압적인 태도가 느껴지는 '죽음' 캠페인은 효과를 거두지 못했다. 1998년 미국 플로리다 주에서는 새로운 방식의 금연 캠페인을 도입했다. 미래 고객을 확보하기 위해 10대들을 유혹하는 담배업계에 맞선 10대들의 '저항'이 테마였다. 담배회사들이 어린 흡연자들을 모집한다는 업계 내부 문건을 바탕으로 10대들이 담배회사에 장난 전화를 걸어 담배회사를 조롱하는 내용의 광고가 제작됐다. 담배에 반대하는 청소년들의 자발적인 모임도 구성됐다. 청소년들은 '담배를 피우지 말라'는 말 대신 유명 가수의 콘서트를 열고, 특이한 의류나 액세서리를 나눠줬다. 또래들이 담배회사에 저항하고 있다는 광고도 제작했다. 담배회사에 저항하는 10대들이 멋지다는 인식도 확산시켰다. 그 결과, 플로리다 주의 10대 흡연율은 이후 10년간 47%나 감소했다.
'또래압력은 어떻게 세상을 치유하는가'는 동료 집단의 사회적 압력인 '또래 압력'이 어떻게 사회적 문제를 해결할 수 있는지를 탐구하는 책이다. 퓰리처상 논픽션 부문 수상자인 저자는 다양한 실제 사례를 통해 또래 집단이 만들어내는 긍정적 변화가 세상을 바꾸는 열쇠라고 강조한다.
또래 압력이 강력한 이유는 인간을 움직이는 가장 강력하고 효과적인 동기가 '타인과의 결속감에 대한 염원'이기 때문이다. 긍정적인 또래 압력이 빈곤과 질병, 폭력, 아노미, 우울에서 벗어날 수 있는 '사회적 치유책'이 되는 이유다. 실제 남아프리카 공화국은 청소년의 에이즈 감염 문제가 심각했다. 청소년 감염자의 사망 가능성이 50%를 넘어섰을 정도였다. 남아공 청소년의 성문화를 바꾼 건 '러브 라이프' 캠페인이었다. 에이즈가 무섭다며 겁주는 대신, 10대들이 좋아하는 연예정보와 음악, 패션 등을 활용해 에이즈에 감염되지 않은 삶이 세련되고 멋지다는 분위기를 띄웠다. 소녀들은 또래 소녀들이 콘돔 없이 성관계를 맺자는 남자친구를 왜, 어떻게 차 버렸는지에 대해 들었다. 이후 에이즈 사망률은 급격히 떨어졌다.
세르비아의 밀로셰비치 독재를 무너뜨린 민주화 운동인 '오트포르'(저항) 운동은 유머와 거리 공연을 통해 정치 운동을 문화적 축제로 만들었다. 이 학생 조직은 한밤중에 경찰을 피해 휴대전화를 지급받고 암호를 외우고 돌아다니다 체포되면 다음 날 여자들의 인기를 한몸에 받았다. 인도 카스트제도를 완화시킨 불가촉천민들의 의료봉사 활동과 흑인과 히스패닉계의 미적분학 성적을 일거에 끌어올린 클럽 학습 등도 긍정적인 또래 압력을 활용한 경우다. 규율을 강요하거나 쟁점을 부각시키기보다는 그들이 좋아하는 거리 공연과 스포츠, 패션, 음악, 댄스 행사를 벌이고, 10대들이 환호하는 것을 제공하면서 자발적 참여를 유도해야 한다는 것이다. 저자는 "어딘가에 속하려는 욕구, 집단의 구성원이 되려는 욕구, 사랑받고 존경받고 존중받으려는 욕구가 인간을 움직인다"고 말한다. 532쪽. 2만2천원.
장성현기자 jacksoul@msnet.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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