산티아고 순례길을 아시나요? 스페인에 있는 산티아고 순례길은 예수의 12제자 중 1명인 야고보(스페인식 이름은 산티아고)의 무덤이 있는 산티아고 데 콤포스텔라(Santiago de Compostella)를 목표로 가는 길입니다. 그곳에 이르는 다양한 길이 있지만 가장 유명한 길은 프랑스 길로 프랑스와 스페인 국경지역에 위치한 생장 피에르 포트에서 시작해 산티아고까지 약 800㎞에 이르는 길입니다.
제주 올레 서명숙 이사장도 이 길을 걷고 나서 제주 올레를 구상했다고 합니다. 걷기 여행의 끝판대장 격인 산티아고 순례길. 저 역시 2010년 유럽 교환학생을 마치고 남은 방학기간 동안 순례 여정을 시작했습니다. 35일간의 긴긴 여정은 저를 새롭게 발견할 수 있게 한 계기가 되었습니다.
처음에 함께 교환학생으로 갔던 친구들이 말렸습니다. 야윈 저를 보며, "한국 간디! 산티아고에 출현! 아니면 한인 학생 순례길 걷다 병원으로 이송 중!"이라며 한참을 농담 반 진담 반으로 말리기 시작했습니다. 그래도 이번 기회가 아니면 언제 가보나 싶어 과감하게 가기로 결정했습니다. 더불어 종교적인 의미보다는 또다시 세계의 많은 사람들을 만날 수 있다는 기대감이 결심하는 데 큰 영향을 미쳤습니다.
막연하게만 다가왔던 800㎞ 여정은 서울-부산을 왕복하고도 남는 여정인데 '가능할까?'라는 생각도 있었지만 꼭두새벽에 기상해서 매일 20~40㎞ 거리를 걸어 하루 일과를 마치면 어느 순간 100∼300㎞ 이상 걷고 있었습니다.
무엇보다도 처음 목적도 그러하였지만 산티아고에서 만난 사람들은 정말 특별했습니다. 처음엔 제가 시작한 마을이 순례의 시작이라고 생각했는데 중간에 만난 몇몇 사람들은 순례란 자신의 집 문밖을 나설 때부터 시작되는 것이라고 했습니다. 저는 800㎞라는 긴 여정에 놀라면서 왔는데 독일, 영국, 네덜란드에서 시작한 분들도 있었습니다.
매일 다 같이 걷는 길이다 보니 순례자들 사이사이로 이야기가 퍼져 이런 분들의 관심을 한몸에 받으며 사진 세례를 받는 스타가 되기도 했습니다.
순례길은 아무래도 장거리를 걷는 사람들이 많다 보니 치료사들도 많았습니다. 일단 기본적으로 생기는 물집을 치료해주는 사람들뿐만 아니라 아로마테라피 물리치료사 등 아주 다양한 사람들이 있었습니다. 누구 한 명이 아파서 주저앉거나 고통을 호소하면 그 자리에 3, 4명의 의사 겸 힐러(?)들이 우르르 모여 복합 치료가 진행되는 이색 광경도 종종 볼 수 있었습니다.
순례길을 걷는 목적도 다양했습니다. 과거 자신이 낳은 자식이 세상을 떠나서 그 아픔을 잊기 위해 걷는 사람, 일상에 휘둘려 잊고 있다가 정년퇴직을 하고 나서 이 길을 걷고 있다는 네덜란드 아저씨, 스페인으로 여행 왔다가 이 길에 대한 소문을 듣고 뜬금없이 중간에 순례길에 합류했다는 핀란드 아가씨, 순례증을 받아서 스펙으로 쓰겠다는 스페인 청년, 건강한 몸을 만들어 보고 싶다면서 걷기 시작한 프랑스 대학생들, 그리고 불교신자, 심지어 무슬림까지 다양한 목적과 뜻을 가지고 온 사람들이 아주 많았습니다.
'단순히 사람들을 많이 만나보고 싶다'라는 생각에서 순례길을 걷기 시작하였는데 매일매일 다양한 사람들의 삶의 이야기들을 들으면서 제 삶에 대한 고민도 시작했습니다. 더불어 하루 종일 길을 걷다 보면 처음엔 풍경이 들어오다가 며칠 되지 않아 풍경보다는 제 생각과 마주하는 시간들이 더 많아지곤 했습니다. 특히나 신기하게도 괴롭고 피하고 싶었던 기억들 위주로만 생각들이 떠올랐습니다.
그렇게 사람을 만나고 과거의 기억을 떠올리며 스스로 질문을 던지는 과정의 반복 속에서 어느덧 최종 목적지 산티아고에 도착하게 되었고, 추가로 다시 100㎞를 걸어 피니스테라 즉 옛 로마인들이 세상의 끝이라고 불렀던 곳으로 다시 발걸음을 옮겼습니다. 스페인 최고 서단 해안 절벽에서 함께 길을 걸었던 친구들과 함께 보았던 노을을 보면서 35일간의 여정을 되돌아 보기도 했습니다.
그제야 이런 생각이 들었습니다. '어쩌면 자신이 한 행위는 돌아보지도 않고 답만 찾으려 했던 건 아닌가?' 그렇게 걷는 내내 고민하고 질문을 던졌지만, 결국 아무런 답은 얻을 수 없었고 단순히 자신과 깊이 있게 마주할 수 있는 시간을 가졌다는 것만으로도 큰 의미가 있다는 사실을 발견하게 되었습니다. 그것이 산티아고 순례길이 저에게 던져 준 하나의 의미였습니다.
박성익/네트워크 기획 '아울러' 링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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