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신문

[야고부] 바다로의 도피

정말 덥다. 가만히 있어도 등줄기에 땀이 줄줄 흐른다. 그런데도 에어컨은 싫다. 살을 파고드는 듯한 냉기 때문인지 왠지 정감이 가지 않는다. 역시 선풍기가 제격이다. 윙윙거리며 돌아가는 소리마저 정겹다. 잠이 들락말락하는데 집사람이 와서 선풍기를 꺼버린다. 졸리는 목소리로 "왜?"라고 하면 "잘못하면 죽어요"라고 내뱉는다. "정말 그럴까?"라는 생각을 하며 논쟁을 한번 벌여볼 마음도 있지만, 눈을 뜨고 일어날 만큼 대단한 일은 아니다 싶어 그냥 잠을 청한다. "집사람이 잠들면 선풍기를 다시 켜야지" 하는 생각을 하며 잠에 빠져든다.

사실 '선풍기로 인한 사망사고'(Fan Death)는 한국에서만 통용되는 말이다. 해마다 밀폐된 방 안에서 선풍기나 에어컨을 켜놓고 자다가 죽은 사람이 몇 명씩 나오니 그런 말이 나올 만하다. 모든 선풍기에 타이머를 부착하는 것도 한국뿐이다. 서양 전문가들은 이를 두고 '한국의 미신'이라고 할 정도로 부정적이다. 선풍기와 돌연사와는 직접적인 연관이 없으며 심장돌연사가 일어날 때 우연히 선풍기가 켜져 있었을 가능성이 크다는 것이다. 실제로 한 미국인이 밀폐된 방 안에서 선풍기를 켜고 며칠간 자는 생체실험까지 감행하고는 '낭설'이라는 말을 했으니 외국 전문가들의 말이 맞을지도 모른다.

한국인만큼 선풍기를 애용하는 민족이 없는 것 같다. 에어컨이 있어도 가동하지 않고, 하루 종일 선풍기만 끼고 살아가는 이들이 많다. 여름이 되면 그만큼 외부 활동을 하지 않는다는 얘기다. 그 옛날 선비들이 흐르는 물에 가만히 발을 담그는 '탁족'을 최고의 피서법으로 여겼던 것처럼 선풍기 아래에서 되도록 움직이지 않고 뒹굴뒹굴하는 것을 선호한다. 운동을 통해 땀을 흘리고 활동량을 늘리는 것이 더 좋은 피서법인데도 그렇게 하지 않는 것을 보면 타고난 천성인 것 같다.

바닷가에서 여름을 나는 것은 행복이다. '찜통 도시'인 대구에서만 살다가 이곳 포항에서 보내는 여름은 지내기가 한결 수월하다. 아무리 덥더라도 선선한 바람이 늘 불어온다. 방학'휴가라고 선풍기에만 의지하지 말고 시원한 바다의 맛을 느껴보는 것이 정신건강에도 좋다. 마침 이번 주부터 포항 국제불빛축제, 다음 달 4일에는 구룡포해변축제가 열린다고 하니 볼거리도 많을 때다. 뜨거운 도시에서 벗어나 바다로의 도피를 권하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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