또 '그 시기'를 겪고 있습니다. '그 시기'는 아이가 엄마와 떨어지기 싫어하는 '분리 불안기'입니다. 두 돌이 채 되지 않은 막내가 요즘 부쩍 엄마를 따릅니다. 출근할 때마다 현관, 엘리베이터, 차 앞까지 따라 나와서 발을 동동 구르며 팔을 벌리고 울어댑니다. 한 번 안아줘 보지만 끝이 없다는 걸 알기에 눈을 질끈 감고 차에 올라 휙 나가버립니다. 세 아이를 기르면서 한두 번 겪은 일도 아닌데 겪을 때마다 가슴이 아립니다.
첫 애 때는 차 안에서 눈물을 흘린 적도 있지만, 이제는 내성이 생겼는지 금세 잊어버리고 사무실로 향합니다. 막상 엄마가 눈에 보이지 않으면 아이는 언제 울었느냐는 듯 잘 논다는 것을 알고 있기 때문입니다. 남에게 아이를 맡긴다면 혹시나 학대당하는 건 아닐까 우려하겠지만 할머니, 할아버지께서 누구보다 더 큰 사랑으로 아이들을 돌봐주신다는 걸 알기에 마음 편히 휙 나갈 수 있는 것이기도 합니다.
퇴근 후 현관문을 열고 들어서면 아이는 "엄~마, 엄~마" 하며 달려와 온몸으로 반깁니다. 아침에 자기를 두고 가버린 엄마의 쌀쌀함은 기억도 나지 않나 봅니다. 하루 종일 아이와 씨름하느라 지친 할머니는 "하루 종일 돌봐줘 봐야, 결국 지 엄마가 최고라칸다. 하기사, 그게 당연한 거지. 엄마 없는 애는 어찌 보겠노" 하십니다.
그렇지만 일을 쉬고 싶다는 생각을 해본 적은 거의 없습니다. 세월은 흘러갈 것이고 아이들은 자랄 것이니까요. 지난주말에는 딸아이들에게 슬쩍 한번 물어봤습니다. "엄마가 회사 다니는 게 좋아, 집에서 너희들과 함께 있는 게 좋아?" '엄마가 좋아, 아빠가 좋아'라는 질문을 할 때처럼 당연히 '엄마와 함께 있고 싶어'라는 대답을 기대한 것이었습니다.
그런데 이게 웬 일입니까. 제 기대와는 달리 두 아이 모두 우물쭈물 대답을 하지 못하는 것 아닙니까. "솔직하게 이야기 한번 해봐." 다시 캐물었습니다. "생각이 반, 반이야. 엄마가 회사 가면 돈을 벌어 와서 좋고, 엄마가 집에 있으면 우리하고 함께 오래 있을 수 있어서 좋을 것 같아."
살짝 기가 막혔습니다. 이 아이들이 벌써부터 엄마와 함께 있으면 듣게 될 잔소리가 싫은가 싶기도 하고
'돈을 벌어 와서 좋다'는 말은 무슨 뜻인지 알고나 한 말일까 싶었습니다. 엄마가 회사에 가는 이유에 대해 어른들이 '너희들 학교 보내고 유치원 보내기 위해 돈 벌러 간다'는 이유를 댔기 때문일까요.
아무튼 초등 고학년부터는 엄마의 귀가를 기다리지도 않는다더니 정말 그럴 것 같습니다. '엄마 따개비' 막내도 비슷한 과정을 겪으며 쑤욱 커버리겠다 싶습니다. 제게도 '그날'이 오겠지요. 하지만 언제가 될지 모를 '그날'이 오기 전까지 겪어야 할 하루하루 일상은 치열함의 연속입니다.
'워킹맘' 말이 쉬워 워킹맘이지, '워킹'도 해야 하고 '맘'도 해야 합니다. 어디 그뿐입니까. 아내, 며느리, 딸, 시누, 올케…. 해야 할 역할이 한두 가지가 아닙니다. 결혼생활과 출산, 육아를 통해 제일 먼저 배운 것은 '나'를 억제하는 것입니다. 결혼을 해보지 않은, 아이를 길러보지 않은 사람들을 '생속'이라 일컫는 이유도 알 것 같습니다.
일로 인해 귀가가 늦을 때는 아이들과 어른들에게 미안하고, 저녁 약속을 잡지 못할 때는 아이 핑계 대는 것만큼 싫을 때가 없습니다. 아직도 직장 여성들이 아이 핑계를 대는 것은 프로답지 못하게 여겨지기 때문입니다. 역으로 아이 키우는 사람이라고 저녁 자리에 열외시켜도 속상한 마음이 듭니다. 아무튼 사회도, 가정도 모두들 '그럼에도 불구하고'를 원합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일을 잘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좋은 아내, 좋은 며느리, 좋은 엄마이다…. 마음속 깊이 육아기의 일하는 여성을 이해해주는 사람을 찾기는 힘듭니다.
그러던 중 최근 어느 모임에서 대선배님이 이런 인사말을 건넸습니다. "자기들 일상을 살아가는 것 자체가 대단해. 애들 키우며 일 열심히 하고, 그렇게 살아가는 자기들 일상 자체가 비범한 거야." 참 기운 나는 말이었습니다. 일상이 비범하다니요. 그렇습니다. 내가 살아가는 '일상'이 그저 감사하고 소중합니다. 특히 요즘같이 하루가 멀다 하고 흉흉한 사건사고 소식이 들려올 때는 더욱더 그러합니다.
마이클 샌델은 '돈으로 살 수 없는 것들'이라는 책을 통해 '어떻게 살아가고 싶은가'에 대한 문제를 제기합니다. 정말 곰곰이 생각해보면 이 세상에 돈으로 살 수 없는 것은 그리 많지 않습니다. 돈으로 살 수 없는 것들, 그 가운데 으뜸은 바로 우리 일상, 일상의 작은 행복이 아닐까요. '물 위를 걷는 것이 기적이 아니라 땅 위를 걷는 것이 기적'이라는 말도 있습니다. 독자 여러분, 여러분도 '일상을 살아가는 비범함' '일상을 살아가는 기적'을 가진 분들입니다.
임언미(대구문화 편집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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