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신문

[공존의 강, 희망의 강] (23)유럽<6>-빈을 살린 '뉴 도나우 프로젝트'

강줄기 하나 더 친환경 섬 건설 도시가 춤췄다

빈 시내를 가로지르는 도나우 강. 그 옆에 1992년 새로 생긴 뉴 도나우 강이 있다. 높은 곳에서 보면 두 강의 물 색깔이 완전히 다른 것을 알 수 있다. 흐르는 물과 평소 고여 있는 물의 바닥에 자라는 수초와 플랑크톤이 달라 생긴 현상이란다.
빈 시내를 가로지르는 도나우 강. 그 옆에 1992년 새로 생긴 뉴 도나우 강이 있다. 높은 곳에서 보면 두 강의 물 색깔이 완전히 다른 것을 알 수 있다. 흐르는 물과 평소 고여 있는 물의 바닥에 자라는 수초와 플랑크톤이 달라 생긴 현상이란다.
뉴 도나우 강 건설로 생겨난 도나우 섬에 있는 음식점들.
뉴 도나우 강 건설로 생겨난 도나우 섬에 있는 음식점들.
뉴 도나우 강에 생긴 명물 다리. 도나우 섬과 카그란 지역을 연결하는 이 다리는 홍수기 때 접을 수 있도록 설계됐다.
뉴 도나우 강에 생긴 명물 다리. 도나우 섬과 카그란 지역을 연결하는 이 다리는 홍수기 때 접을 수 있도록 설계됐다.

치수 사업은 역대 어느 통치자에게나 역점 시책이었다. 범람하는 강물로부터 백성을 보호하고, 물을 효율적으로 이용해 민심을 얻는 것은 가장 좋은 치적. 오스트리아 프란츠 요제프 황제에게도 이는 예외가 아니었다. '매년 여름이면 범람하는 도나우 강을 어떻게 다스릴 것인가.'

그는 1869년부터 1875년까지 대대적인 공사에 들어갔다. 홍수 예방이란 목표 이외에 19세기 후반으로 접어들면서 무역의 발달로 철도와 증기선들이 대거 등장하자 오스트리아도 대형 선박들이 오가는, 항상 일정 수량이 확보되는 물길이 필요했다.

업체의 이권과 개발이 맞아떨어졌다는 분석도 있다. 프랑스의 수에즈 운하를 건설한 업체가 요제프 왕에게 강 정비를 제안했고, 양측이 이 개발로 막대한 부를 축적했다는 의견도 있다. 이 업체는 수에즈 운하를 건설한 뒤에 대규모 토목 프로젝트로 이곳을 주목했다. 예나 지금이나 대형 국책사업에는 정치'정략적 목적이 숨어 있음을 알 수 있는 대목이다.

왕은 강의 저수로 폭을 넓히는 대규모 프로젝트를 시행했다. 하지만 이것도 잠시. 몇 년 뒤 발생한 대홍수 앞에서 무용지물이었다. 빈 시내에서 외곽으로 조금만 나가면 홍수 때 물난리를 겪던 흔적들이 곳곳에 남아 있다. 예부터 내려오는 건축물들은 성벽처럼 높게 쌓아 홍수에 대비했다고 한다.

결국 오스트리아는 100년 동안 이 문제를 해결하지 못하다가 1992년에야 홍수재해로부터 완벽하게 벗어났다. 세계적으로 잘 알려진 '뉴 도나우 프로젝트'가 바로 그것. 4대강 사업의 모델 중 하나로 제시되기도 했다.

홍수 방어를 위한 해결책으로 길이 21㎞, 폭 200m의 '뉴 도나우'라는 방수로를 건설하기로 결정했다. 1972년 착공해 1992년 완공된 방수로는 이 프로젝트의 결정판이다. 빈을 관통하는 도나우 강의 상류와 하류에 유입시설과 수위조절보(洑)를 설치했다. 강 하나를 따로 만든 것. 중간에도 하류부의 수위조절보를 설치했는데, 비홍수기엔 도나우 강이 호수처럼 보인다. 중간에 3개의 수문이 있으며 홍수 때는 수문을 열고, 평상시에는 막으니 호수가 되는 것. 여름엔 수영을 즐기고, 겨울에는 스케이트장으로도 활용된다. 요트와 윈드서핑 대회도 수시로 열린다.

이 같은 치수사업으로 도나우 강과 신도나우 강 사이에 도나우 섬이 생겼다. 이 섬은 폭 70~200m에 총 면적은 390㏊에 이른다.

현재 도나우 섬은 조류 서식처, 소형 보트 계류장, 자전거길, 산책로가 조성돼 있어 자연친화적인 여가활동을 누리기에 손색이 없다. 이곳에선 매년 6월이면 전 세계 음악축제가 열린다. 구역별로 각양각색의 텐트를 설치하고, 텐트마다 특색 있는 악기를 가진 음악꾼들이 모여 페스티벌을 여는데 이때 모여드는 관광객이 수십만 명에 달한다고 한다.

특별한 프로그램이나 인프라도 없이 강줄기를 하나 더 만들고, 여기서 나온 흙으로 섬을 건설했더니 관광객들이 모여드는 것이다.

강 주변에는 유엔 건물과 국제원자력기구(IAEA)를 유치해 습지성 수변공간을 친환경적인 세계적 명소로 변모시켰다.

뉴 도나우 프로젝트의 성과는 엄청났다. 버려졌던 도시 개발이 가능해졌고, 에너지원 확보, 홍수 방지, 친환경, 관광레저 산업 활성화 등이 덤으로 주어졌다. 이러한 성과를 인정받아 2006년 유엔 해비타트 프로그램의 '베스트 프랙티스'에 선정됐다. 또 EU로부터는 2007-2008년 환경 복원을 위해 노력한 공로로 '최우수 생태환경상'(THE PRIZE of BEST LIFE NATURE)을 받았다.

이 모든 것이 강의 범람을 막았기에 가능한 프로젝트들이었다. 강을 개발하는 데 따른 반대 여론들이 있었지만 오스트리아 정부는 정부의 입장을 국민들이 공감할 수 있도록 긴 세월 동안 인내심을 가지고 국민을 설득했다.

정부와 국민들 간의 넓은 공감대가 형성된 뒤에야 사업을 추진했다. 오스트리아 정부는 1954년 '뉴 도나우 프로젝트'를 입안했으나 서두르지 않았다. 시의회 등이 반대하자 홍수로 인해 고통받는 사람들을 참여시켰다. 오랜 시간에 걸쳐 학계, 전문가, 시민단체와 개별 시민들의 의견을 종합적으로 수렴해 정책을 제시한 지 18년이 지난 1972년에야 공사에 착수했다. 완공에만도 20년이나 걸렸다. 중간에 의견이 엇갈릴 때면 각종 공청회를 열어 의견 수렴과 반대편 설득 작업을 병행했다. 느린 것이 반드시 느리지만은 않다는 것을 오스트리아의 뉴 도나우 프로젝트가 증명하고 있다.

뉴 도나우 건설은 100년 만의 홍수가 있었던 2002년 빛을 발했다. 엄청난 홍수로 인해 도시가 절반가량 물에 잠길 위기에 처했을 때 뉴 도나우 강으로 물길을 돌려 도나우 강의 범람을 막았다. 뉴 도나우 강가에서 놀이공원을 운영하는 프란체스 헬렌 씨는 "뉴 도나우 강이 만들어지지 않았다면 모든 것이 휩쓸려 갔을 것"이라고 했다.

뉴 도나우 프로젝트로 인해 초당 1만㎥의 물을 수용할 수 있다. 통상 하천의 보들이 7천~8천㎥인 것과 비교하면 엄청난 수용능력이라고 할 수 있다.

빈에서 글'사진 최정암 기자 jeongam@msnet.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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