옛 고구려 영토인 만주에서 중국의 소수민족으로 오랜 세월 살아온 중국동포(조선족), 우리와 같은 민족이지만 이들의 조국은 대한민국이 아닌 중국이다.
중국이 자치주로 인정하고 있는 옌볜은 하나의 도시가 아니다. 옌볜은 중심도시인 옌지시를 비롯해 허룽'룽징'투먼'둔화'훈춘시. 그리고 현 단위(우리나라의 군에 해당)의 많은 지역을 포함하고 있다. 이곳에는 거리 어디를 가도 간판에 한글과 중국어가 함께 표기돼 있으며, 아직도 대부분 지역에서 한국말이 통한다.
처음 이곳을 밟는 우리나라 사람들은 이곳이 한국인지 중국인지 헷갈릴 정도다. 모든 것이 익숙해 마치 한국의 어느 지역을 여행하는 것 같은 느낌이 든다. 또 이곳은 자치주인 탓에 시장 등 대부분 기관장 자리를 중국동포들이 차지하고 있다.
옌볜의 중국동포들은 한국의 눈부신 경제발전을 부러워하고 있으며, 그 경제력의 힘이 조선족 자치주에도 크게 미치길 기대하고 있다. 특히 옌지시에는 한국에서 몇 년간 일을 해서 번 돈으로 고향에서 집을 장만한 동포들이 많다. 그래서 그들은 코리안드림을 꿈꾸고 조상의 얼이 깃든 한국을 그리고 있다.
◆눈부신 경제발전, 그 이면은?
조선족 자치주를 둘러보면 외적인 경제성장이 이뤄지고 있음을 발견할 수 있다. 도심에는 초고층 빌딩들이 들어서고, 외곽에는 고급 아파트들이 줄지어 건설되고 있다. 조선족들의 경제력도 한층 높아져, 이젠 1억원 정도의 재산으로는 부자 축에도 끼지 못한다.
외적인 성장 이면에는 그늘도 있다. 날로 심각해지는 소득 양극화 현상은 이곳에서도 사회문제가 되고 있다. 뛰는 물가와 세계적인 불황, 특히 한국경제의 불황 여파가 조선족 자치주에도 악영향을 미치고 있다. 이곳 중국동포들이 꿈꾸던 한국의 일자리도 예전처럼 얻기가 힘들어졌다. 까다로운 시험을 거쳐야 하며 합격을 해도 짧게는 2년 길게는 4년까지 기다려야 한국에서 일할 수 있는 기회를 잡을 수 있다. 게다가 조선족 자치주는 몇 년 전, 황금알을 낳는 관광 보배인 백두산(중국에선 장백산이라 부름) 관리권을 중국 정부에 넘겨줌에 따라 재정의 어려움을 겪고 있다. 중국 정부는 백두산 관광을 수익구조를 가진 관광지로 변모시켰다. 이 바람에 지금은 백두산을 구경하려면 1인당 최소 200위엔(약 4만원) 이상을 내야 한다.
중국의 1인당 국민소득은 7, 8천달러이다. 조선족 자치주 역시 보통 직장인들의 월급은 60, 70만원. 고소득자 전문직은 100만∼150만원 정도다. 하지만 이들은 치솟는 물가와 교육비 등으로 생활고를 호소하고 있으며, 국가 전체의 경제성장에 비해 개인의 삶의 질은 오히려 떨어지고 있다고 한다.
◆조상의 고향을 잊지 못하는 중국동포들
지린성의 주도인 창춘시를 비롯해 조선족 자치주에 살고 있는 많은 사람들이 선조들의 고향을 그리고 있다. 이들은 한민족의 뿌리에 대한 관심이 많으며, 실제로 그 뿌리를 좇아 한국을 찾기도 한다. 특히 경상도 출신들은 따로 모임을 갖고 있으며, 이들 중에는 대구경북 출신들도 있다.
조상의 고향이 경북 청도군 매전면 건천리인 창춘시 록원구 조선족 소학교 석진호(53) 교감은 청도를 방문해 호적을 찾아냈다. 석씨 종친회 석진환 회장은 석 교감에게 족보에 대해 알려주었고, 석 교감은 그 족보를 복사해 가보로 소중하게 간직하고 있다.
록원구 조선족 소학교의 김해철(39) 교사는 최근 자신의 뿌리가 경북 성주군 용암면이라는 사실을 알게 됐다. 그는 몇 년 안에 꼭 그곳을 방문해 조상의 뿌리를 찾고 싶다고 말했다. 김 교사는 "창춘시 일대에 살고 있는 대구경북 출신 사람들을 만나게 되면 왠지 모르게 반갑고, 함께 술 한잔 기울이고 싶다"고 했다.
동북사범대 김시선(59) 교수는 부모의 고향이 상주와 문경이다. 김 교수는 가끔 한국을 방문할 때 상주와 문경에 꼭 들린다고 했다. 그는 "중국에서도 대구경북 모임이 활발하게 이뤄지고 있다"며 "역사와 뿌리에 대한 인식이 없다면 조선족의 자격이 없다"고 말했다.
조선족 자치주의 북쪽 도시인 둔화시에는 발해의 흔적이 고스란히 남아 있다. 둔화시의 도심 한 공원에는 옛 발해의 건물의 기초가 되었던 바닥 축조석들이 그대로 보존돼 있다. 또 발해를 건국한 대조영(1대 발해왕)을 비롯해 발해를 다스렸던 왕들의 모습이 대리석에 조각돼 있었다.
◆조선족 소학교 돕는 대구의 단체
민족통일 대구중구협의회는 창춘시 록원구 조선족 소학교를 10년 넘게 돕고 있다. 민통 중구협의회(회장 이문형)는 매년 이 조선족 소학교를 방문해 1천500만원의 학교 운영비(중구청에서 1천만원 어학연수 보조)를 지원하고 있다. 또 몇 년 전부터는 이 소학교에서 중국 어학연수를 실시하고 있다. 이 프로그램은 3주 동안 현지에서 중국어를 배우면서, 문화체험을 할 수 있는 기회를 제공하는 것이다. 비용 부담도 크지 않아 올해는 12명이 중국에서 연수를 받고 있다.
민통이 지원하는 조선족 소학교 백정숙(중국동포) 교장은 "민통이 중국동포를 위해 학교 운영비 등을 지원하고 있는데 정말 감사하다"며 "이런 따뜻한 교류가 민족문화를 발전시키고, 중국 내 조선족의 위상을 높이는데 도움될 것"이라고 말했다.
중국 연수에 참여한 경북공고 김대식 교사는 "적은 비용으로 현지에서 중국어를 배우고 중국을 체험할 수 있는 좋은 기회를 갖고 있다"며 "이곳에서 중국동포들을 만나면 비록 다른 나라에 살고 있지만 한 민족이라는 느낌이 든다"고 말했다.
민통 중구협의회 유재도 사무국장은 "해마다 발전하고 있는 소학교의 모습을 보면서 큰 보람을 느낀다"며 소감을 밝혔다.
중국 연변 자치구에서 글'사진 권성훈기자 cdrom@msnet.co.kr
※옌볜 조선족 자치주=중국의 동북 3성(지린성'랴오닝성'헤이룽장성)의 하나인 지린성(吉林省)에 위치하고 있으며, 중심지는 옌지(延吉)이며, 면적 4만3천474㎢, 인구는 약 220만명 정도 된다. 둔화시를 제외한 옌볜의 조선족 인구비율은 46.5%. 주요 도시로는 옌지시를 비롯해 우리 동포가 가장 많은 룽징(龍井)시, 두만강을 두고 북한과 경계에 있는 투먼(圖們)시, 둔화(敦化'돈화)시, 룽징시와 인접해 있는 허룽(和龍)시, 러시아'북한과 접해 있는 훈춘(琿春)시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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