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신문

[수암칼럼] 런던의 눈물

사람이 눈물을 흘리는 것은 칠정(七情'일곱 가지의 감정) 중에서 슬픈 감정이 들 때만 우는 것으로 알기 쉽다. 그러나 기쁨이 사무칠 때도 울고 노여움과 분함이 넘칠 때도 울고 사랑이 넘칠 때도 눈물을 흘린다. 거기에다 감격을 주체 못 할 때는 눈물과 함께 울부짖음이 곁들여진다.

울음과 눈물과 부르짖음은 지정(至情)에서 우러난 감성이 북받쳤을 때 일어난다. 그게 사람이다. 올림픽 10일째를 맞으면서 우리 선수들과 국민들은 거의 매일 눈물과 외침의 칠정을 쏟아내고 있다. 선수들은 사대(射臺)와 매트, 코트, 잔디밭 위에서 포효하며 눈물을 쏟고, 국민들은 안방과 사무실에서 젖은 눈시울과 콧등이 시큰한 감동으로 격정을 풀어낸다.

눈물을 흘린다는 것은 슬픈 눈물이든 기쁜 눈물이든 약(藥)이 된다고들 말한다. 런던에서 쏟아지는 눈물이니 영국 얘기를 해보자. 영국의 헨리 모슬리라는 의사는 눈물을 가리켜 '신이 인간에게 선물한 치유의 꽃'이라고 했다. 다이애나 전 황태자비가 죽었을 때도 온 런던 시민들은 엄청 눈물을 쏟았다. 온 국민이 싫도록 다 울어버려서 우울하고 부정적인 스트레스가 날아가 그 무렵 영국의 우울증 환자 수가 절반으로 줄었다는 얘기가 있었다. 영국 정신의학자들은 그 눈물 현상의 효과를 일컬어 '다이애나 효과'라 이름 지었었다. 의학적으로도 감정이 사무쳐 오를 때 눈물을 많이 흘려버릴수록 정신적으로나 육체적으로 건강해지고 충만해진다고들 말한다.

미국 뉴욕에도 남자들만 이용하는 '실컷 울고 가는 가게'가 인기라고 한다. 울고 싶은 마음이 꾹꾹 눌려 폭발 직전인데도 아무 데서나 울 수 없는 남성들을 위해 만든 공간이다. 몇 달러를 내고 들어가 혼자 실컷 울고 나간다는 것이다. 한 달에 5.3회 눈물을 흘리는 미국 여성들이 한 달에 1.4회밖에 울지 않는 미국 남자들보다 5년 이상 더 오래 산다는 주장도 눈물이 치유의 꽃임을 말해준다.

이번 올림픽에서 한국은 어느 나라 선수'국민보다 눈물이 많았던 것 같다. 원래가 희로애락 감정에 정직하고 칠정이 넘치는 민족이지만 유독 해외 스포츠 경기장에서는 그 여린 감성이 더 예민한 것 같다. 오심에 대한 분노도 거친 몸싸움보다는 억울함을 눈물로 나타내는 배달민족 특유의 감성 문화다. 온몸에 피멍이 드는 고통을 견디며 피땀 어린 메달을 따낼 때마다 광야의 사자처럼 하늘을 향해 울부짖는 포효의 소리도 사무치는 칠정을 주체 못 하는 한민족의 감성이다.

어제 새벽 축구 8강전, 영국과의 승부차기에서 승리한 순간 혈관 속에 한국인의 피가 흐르는 사람이라면 누구나 다 눈물이 복받쳤을 것이다. 오심의 억울함, 패배의 슬픔뿐 아니라 기쁨이 사무쳤을 때도 눈물이 흐른다는 것, 그리고 슬픈 일이든 기쁜 일이든 분노해야 할 일이든 가슴이 저려올 만큼, 짙은 정이 우러날 때에야 비로소 눈물이 난다는 것을 보고 겪었다.

올림픽이 끝날 때까지 앞으로 또 얼마나 더 눈물을 흘려야 할지 모른다. 태극 전사들이 따내는 메달 수가 많으면 많을수록 국민들의 눈물도 더 펑펑 쏟아질 것이다. 그런 눈물은 아무리 흘려도 아깝지 않다. 서로를 다독이고 마음을 뭉쳐주고 서로의 가슴을 열게 하니까.

그러나 젊은 태극 전사들이 온몸과 영혼을 던져 국민의 눈물을 쏟아 내주고 있을 때 공천 뇌물 따위의 쓰레기 같은 추문이나 쏟아내는 일부 여의도 패거리에 대한 분노는 거꾸로 눈물을 마르게 한다.

펜싱장의 오심을 보고 분노가 끓어 울었던 국민들이 오심보다 더 치사한 여의도 정치판을 보고는 왜 눈물 한 방울 안 보일까. 바로 사무치는 정이 안 우러나서 그렇다. 솔직히 그들 차떼기 집단에 무슨 사무칠 만큼의 정이 남아 있을 것인가. 좌파 꼴이 못 미더워 '행여 너만이라도' 하는 마음으로 지켜보고 있을 뿐인데…. 속칭 '대세'라는 뭉게구름 지지를 '그네 사랑'으로 착각 말라. 런던의 영웅들이 돌아온 뒤 민중의 시선이 의혹들을 향해 정조준되기 전에 빙산 밑에 숨겨졌을지도 모르는 의혹까지 미리 다 까 내놓고 꿇어앉는 자세가 돼야 진정한 민중의 눈물을 얻을 수 있다.

부정 의혹이 사실이고 또 다른 숨긴 의혹이 나중에 뽀록나면 새누리에 흘려 줄 '눈물'은 미안하지만 단 한 방울도 없다.

김정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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