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쟁터에서 평생을 보낸 티무르는 '평생 단 한 번도 진 적이 없는' 용장 중의 용장으로 알려져 있다. 그러나 그에게도 생로병사의 숙명은 비켜가지 않았다. 몽골족의 피를 이어받은 티무르는 원나라의 원수를 갚겠다고 명나라를 침공하기로 했다. 1404년 12월 14일 보병 20만과 기병 20만 명을 시르다르 강변에 집결시켜 중국으로 진군을 시작했다. 정복욕은 여전히 불타고 있었지만 이미 일흔 나이를 넘어 신체는 노쇠한 상태였다. 그로부터 한 달 후 전쟁으로 바빴던 한 생을 마감하고 그는 병사한다.
티무르의 시체는 썩지 않는 향유를 바르고 사마르칸트로 보내졌고, 그곳에서 '구르 아미르'라고 불리는 호화로운 무덤에 매장되었다.
정복왕 티무르 중국원정 중 급사
'구르'는 묘, '아미르'는 왕이라는 뜻이다. 구르 아미르는 티무르를 비롯해 그의 아들, 손자 등이 잠들어 있는 티무르 왕족의 가족묘이다. 원래 이곳은 티무르의 손자인 무하마드 술탄이 전사하자 티무르가 그를 기리기 위해 건설한 묘였다. 손자의 묘로 조성된 이곳에 1년 후 중국 원정 중 급사한 티무르 자신도 묻히게 된다. 그는 원래 자신의 고향인 샤흐리샵스에 묘를 조성해 놓고 그곳에 잠들길 원했었다. 그러나 살아서 세상을 호령했던 왕이었지만 죽어서는 끝내 자신의 뜻대로 이루질 못했다.
30대 초의 청년이 60대 말의 할아버지가 될 때까지 한시도 말에서 내리지 않을 만큼 사방을 달려 싸우고 또 싸웠다. 티무르는 생의 대부분을 정복과 파괴로 보내며 광활한 제국을 이루었다. 그러나 죽은 후 그에게 허락된 공간은 단지 조그마한 석관뿐이었다. 그것도 자신이 원했던 곳이 아닌 후손들의 뜻에 의한 장소에서 영원한 안식을 하고 있다.
미리 만든 손자 묘에 함께 묻혀
티무르의 묘는 흑녹색의 중국산 연옥으로 만들어져 있다. 위치는 가운데이나 생전에 가장 존경하던 스승의 발치에 놓여 있다. 그 옆으로 손자 한 명, 동쪽에는 무하마드 술탄, 남쪽에는 울루그벡 등 아들 손자의 묘석이 나란히 있다.
이들 석관은 모두 시신이 들어 있지 않고 묘의 위치를 표시한 표석이다. 진짜 관은 이 지하 4m 아래에 있는 묘실에 같은 순서로 묻혀 있다. 그리고 항상 머리는 메카 방향으로 안치되어 있다. 이 석관들이 남긴 일화가 있다. 구르 아미르에 안치된 티무르의 검은 석관에는 "내가 이 무덤에서 나올 때 가장 큰 재앙이 일어날 것이다"라는 글이 새겨져 있어 아무도 이 석관을 열지 않았다고 한다.
그의 사후 500여 년이 지난 1941년 6월 19일 구 소련 고고학 조사단이 처음으로 이 관의 뚜껑을 열었다. 그 결과 중세 유럽인들에게 두려움의 대상이었던 티무르가 다리 장애인임이 밝혀졌다. 그러나 공교롭게도 3일 뒤인 6월 22일 제2차 세계대전의 동부전선에서 나치독일이 소비에트연방을 침공한 작전명령이 실행되었다. 러시아 측은 그 후 티무르의 석관 뚜껑을 납으로 용접해버렸다고 한다.
화려한 내부 이슬람 예술의 정수
구르 아미르를 방문한 것은 한여름 더위가 기승을 부릴 때였다. 왕의 무덤에 들어간다는 생각에 입구에서부터 서늘한 느낌이었다. 바깥 모양은 일반적인 이슬람 사원처럼 건축되어 있다. 다만 돔의 특이한 구조가 눈길을 끈다.
15m 높이의 돔에 파인 세로줄 돋을 무늬 즉 주름은 모두 63개인데 이 숫자는 이슬람의 창시자 모하메드가 그 숫자만큼 세상을 살았기 때문이다. 이슬람교도들은 이 숫자를 신성시한다. 이 건축물은 독특한 외형과 함께 화려한 내부의 문양이 더해져 이슬람 예술의 정수로 꼽힌다.
석관들이 놓여 있는 묘실에 들어서자 오싹한 기가 목덜미를 스치는 것 같았다. 사람들은 처음 와보는 건물에서는 본능적으로 천장을 올려다본다. 돔 천장 꼭대기에는 화려한 샹들리에가 어두운 무덤 내부를 환하게 비추고 있다. 모든 사람들이 일제히 탄성을 지르며 입을 벌리게 한다. 찬란한 금빛 장식들과 화려하고 섬세한 디자인 때문이다. 내부를 둘러싼 번쩍이는 문양에는 금 5㎏이 사용되었다고 한다. 무덤 내부 돔의 천장은 금색과 청색으로 적절히 채색한 이슬람 문양이 아름답게 펼쳐져 있다. 중간 부분에는 '알라는 위대하다'는 내용으로 이슬람 경전인 코란의 경구가 벨트처럼 황금색으로 적혀 있다.
전사한 손자를 지극히 사랑한 티무르는 최고의 이상향을 묘사한 건조물에서 손자가 영원한 안식을 취할 수 있도록 했으나 바로 이어 자신이 그곳에 누울 것이라는 것은 짐작이나 했을까. 100년을 넘기지 못하는 것이 인간의 삶인데 '오늘은 나에게, 내일은 너에게'라는 경구가 절절한 메시지로 마음에 사무친다.
글'사진: 박순국(전 매일신문 편집위원) sijen2@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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