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남 담양군 용면 용연리의 용추봉(해발 523m)은 무명산이다. 그러나 이름만 무명산일 뿐, 산에 얽힌 전설과 빼어난 계곡, 역사적 의미에서의 이력은 다른 숱한 명산들을 압도하고도 남는다. 산은 그다지 높지 않으나 울창한 숲 사이의 계곡과 맑은 물, 기암괴석이 수려한 경관을 이루고 있다. 1986년부터 관광지로 지정, 개발되어 관광객을 위한 각종 볼거리, 편의시설, 운동시설, 등산로 등이 잘 갖추어져 있다.
호남정맥상에 위치한 용추봉 자락에는, 영산강의 시원(始原)이자 민족 상흔의 아픈 역사를 고스란히 간직한 가마골계곡이 있다. 원래 '가마골'이란 지명은 그릇을 굽는 가마터가 많다고 해서 유래되었지만, 6'25때 가장 치열했던 빨치산 격전지 중 하나로, 최후의 작전지구로 더 잘 알려져 있다.
1950년 가을, 국군의 반격으로 후퇴하던 전남'북 주둔 북한군 유격대 패잔병들이 이곳에 집결, 은거하면서 약 5년 동안 유격전이 벌어졌다. 당시 빨치산 유격대들은 이곳 가마골에 노령지구사령부(사령관 김병억, 장성 북하면 출신)를 구축하고 낮이면 곳곳에 숨어 있다가 밤이면 민가로 내려와 살인, 약탈, 방화를 일삼았다. 전투가 장기화됨에 따라 병기시설인 탄약제조창과 군사학교, 인민학교, 정치보위학교 및 정미소까지 세우고 끈질긴 저항을 계속했다고 한다. 그러다 1955년 3월, 육군 8사단, 11사단과 전남도경 합동작전에 의해 1천여 명의 사상자를 내고 완전히 섬멸되었다.
지금은 관광지로 개발되어 그날의 흔적을 찾아보기 어려우나 가끔 탄피, 수류탄, 무기 제조에 쓰인 야철, 화덕 등이 발견되어 그때의 참화를 말하여 주고 있고, 당시 사령관이 은거했던 것으로 전해지는 사령관 계곡은 제2 등산로를 따라가면 찾을 수 있다.
산행 들머리는 가마골 계곡 입구다. 자가용 및 대형버스 진입이 가능하다. 가마골 관리사무소를 지나 50m 정도 가면 삼거리에 '가마골'이란 화강암 표지석과 이정표가 있다. 용연1폭포를 지시하는 오른쪽으로 5분 정도 오르면 갈림길이 나타나고 왼쪽 계곡을 거슬러 오르면 용연1폭포다. 작은 산에 비해 웅장한 규모의 폭포가 이 산의 내공을 짐작게 한다. 폭포 앞 계곡을 건너 왼쪽 산 비탈길을 10분 정도 오르면 무속인들이 치성을 드린다는 제2폭포를 만난다. 제1폭포에 비해 규모가 작고 등산로에서 약간 비켜나 있어 찾는 사람들이 많지 않다.
넓은 등산로를 지나면 포장된 임도를 만난다. 삼거리에 '정광사 4㎞' '용추사 200m'라는 표지석이 두 개 있다. 용추사를 들르기로 하고 걸음을 옮겨보지만 절은 약 400여m를 걸어서야 겨우 나타난다. 526년(백제 성왕 4년)에 창건하고, 임진왜란 때 소실된 것을 1630년에 중창했다고 한다. 6'25전쟁을 거치며 전각이 불타고 천불전과 삼성각만 덩그러니 남아 있다. 사찰 인심이 후하다. 여러 가지 싱싱한 과일을 한 상자 가득 내어준다.
표지석 삼거리까지 돌아 내려와 임도를 힘들게 오르니 오른쪽에 가마터가 보인다. 1998년 용추사 주변에서 임도 개발 공사를 하다가 발견된 가마터를 현재의 모습으로 복원했다고 한다. 몇 컷의 사진을 남기고 아스팔트 포장도로를 15분여 오른 지점에서 왼쪽 산길로 접어드니 전형적인 산길이다. 표지기가 많이 걸려 있다. 산길 등산로를 조금 오르면 길은 다시 갈라지고, 직진은 호남정맥 능선길이고 왼쪽이 용추봉으로 가는 길이다. 두 군데 다 이정표가 없다.
허리 높이의 산죽을 지나 완만한 능선 길을 30여 분 오르면 용추봉 정상이다. 넓은 헬기장에 정상석은 보이지 않는다. 그 대신 사면이 탁 트여 조망이 뛰어나다. 내장산을 비롯해 회문산, 여분산, 무등산, 강천산, 산성산, 추월산 등이 차례로 보인다. 길 오른쪽에 스테인리스로 세워진 용추봉 표지판이 있다.
넉넉하게 30여 분이면 신선봉과 호남정맥 치재산 갈림길이다. 독도 주의 지점으로 신선봉은 직진, 호남정맥은 오른쪽이다. 호남정맥 길에 표지기가 많이 달려 있다. 왼쪽으로 용추사를 끼고 능선을 오르내리면 임도에 닿는다. 왼쪽으로 10여m 내려서면 신선봉으로 가는 이정표가 보인다.
나무벤치가 있는 지점을 통과하면 등산로는 순한 암릉으로 탈바꿈되고 조망이 확 터지기 시작한다. 깊은 골짜기 너머 오른쪽으로 치재산(591m)과 강천산, 추월산의 능선들이 첩첩의 파노라마를 그린다. 용추봉 산행의 백미는 신선봉에서 바라보는 멋진 조망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이름 그대로 신선이 된 것 같은 기분이다.
시원정으로 내려서는 길은 무척 가파르다. 그렇지만 암릉으로 치장된 주변의 전경에 피로가 싹 가신다. 시원정은 콘크리트로 만든 이층 구조의 팔각정으로 호남지역의 유명한 서예가 장전 하남호 선생의 현판이 걸려 있다. 남도의 젖줄 영산강의 발원지인 용소와 용소폭포가 그림처럼 내려다보이는 곳에 세워져 있다. 양쪽의 절벽 사이 출렁 구름다리를 건너 철 계단을 오르면 사령관 동굴과 연결이 된다.
가파른 철계단을 내려서니 가마골이다. 용소를 돌아보기 위해서는 오른쪽으로 조금 더 오른다. 용소는 시퍼렇고 깊은 커다란 연못 형태다. 영산강 물줄기는 남한 4대강 중 가장 짧지만, 이곳 용소에서 출발해 광주와 나주를 거쳐 목포에서 바다와 만난다.
관리사무소에서 등산을 시작해 용연폭포, 용추사, 가마터, 용추봉. 신선봉, 시원정을 돌아보는 데 약 3시간 30분 정도 소요된다. 가장 긴 코스는 가마골 최고봉인 치재산까지 연계하는 산행으로 4시간 이상 걸린다고 보면 된다.
담양의 용추산을 등산하기 위해서는 반드시 정확한 전체적인 등산 개념도를 숙지하는 것이 좋다. 자칫하면 엉뚱한 길로 빠지기 십상이다. 담양군에서 세운 대형 안내지도에는 1, 2, 3 등산로가 표기되어 있지만 너무 오류가 많아 참고만 할 뿐 맹신해서는 안 된다. 한국전쟁 기간 동안 남북 양쪽의 사망자 수가 130만 명, 행방불명자가 111만 명이다. 민족의 아픔이 아로새겨진 용추산 가마골에서 동족상잔의 비극인 6'25전쟁을 다시 한 번 생각해보는 것은 어떨까.
글'사진 지홍석(수필가'산정산악회장) san3277@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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