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신문

[매일춘추] 토익점수 고고익선인가요

심지현(문학박사
심지현(문학박사'대구가톨릭대학 강사)

인간의 체온을 넘나드는 더위에도 아랑곳하지 않고 도서관의 명당자리(?)는 비어 있을 틈이 없다. 방학을 맞이한 대학생들은 말할 것도 없고, 취업난에 허덕이는 구직자, 게다가 직장인들까지 너나없이 토익 점수를 올리기 위해 열공 중이기 때문이다. 필수불가결하다는 스펙 중 하나인 토익은 이른바 고고익선(高高益善)의 열기를 더하고 있다.

20, 30대 젊은이들 중 토익 때문에 골머리를 썩이지 않는 사람이 몇이나 될까. 토익은 영어를 국어로 하지 않는 사람들을 대상으로 하는 실용영어 능력 평가 시험이다. 하지만 이 땅에서 토익 시험은 그 이상의 의미를 지니고 있다. 심재천의 '나의 토익 만점 수기'를 보면 "토익 만점을 받은 친구는 취직에 성공했고, 쏘나타 신형을 뽑았다. 주말이면 여자애를 태우고 가평 펜션으로 놀러갔다"고 단정적으로 표현하고 있다. 작중 주인공에게 있어 토익 점수는 단순한 시험 성적이 아니다. 출세의 보장, 행복의 보장, 찬란한 미래에 다름 아닌 것이다. 토익 800점 이상을 요구하는 사회에서 주인공의 590점은, 이러한 것들이 허몽에 지나지 않는다. 소설 속 이야기지만 그렇게 억지스럽지가 않다.

오늘을 살고 있는 젊은이들 대다수에겐 토익 만점과 취업은 피할 수 없는 장벽이자 소망일 수밖에 없을 것이라 여겨진다. 영어를 못하면 사람대접을 받을 수 없고, 영어를 못하면 사람 구실을 제대로 할 수 없음은 물론, 과장 좀 하면 생사가 달려 있는 문제이기 때문이다. 오죽하면 연애, 결혼, 출산은 포기할지언정 영어만은 포기할 수 없다는 말이 생겨났을까. 이미 오래전부터 배낭 하나 달랑 들쳐 메고 워킹홀리데이 길을 나서는 젊은이들이 보편화되어 있다. 그런다고 곧장 토익 고득점자가 된다는 보장도 없는데 말이다.

왠지 매사 영어 점수가 자신의 가치로 작용하는 현실이 자꾸만 씁쓸해진다. 주어진 업무에 따라 다소 차이는 있겠지만, 직장이라는 현장에서 영어의 비중이 그리 대단한 것은 아니다. 영어를 몰라 업무처리를 할 수 없다거나 영어가 미숙해서 직장생활에 크게 불편을 느끼지는 않는다는 것이다. 그런데도 굳이 토익 점수에 목을 매고, 토익 점수에 청춘을 다 바치고, 토익 점수 때문에 사회에 이바지할 기회마저 얻지 못한다는 건 분명 모순이다. 토익 고득점자가 정작 외국인 앞에서 입 한 번 제대로 떼지 못한 채 식은땀만 줄줄 흘리는 현상을 어떻게 받아들여야 하나. 이런데도 사회는 여전히 높은 토익 성적을 요구하고 있다. 많은 사람들이 영양가도 없는 토익 점수를 위해 이 시간에도 피를 말리며 애를 쓰고 있다. 영어만 잘하면 일류 국민이 되고, 영어만 잘하면 세계 제일의 국가가 된다는 그릇된 의식부터 바꿔야 하지 않을까 싶다.

심지현(문학박사'대구가톨릭대학 강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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