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신문

[지상 백일장] 형만 한 아우가/텃밭도 '자식농다'다/삶의 자리

♥수필1-형만 한 아우가

남편이 자꾸만 눈치를 보며 말을 건넨다. "여보, 이 옷 말이야. 서울 출장 간다고 급히 샀더니 작네. 당신 보기에도 작아 보이지." 이미 몇 번 입은 옷이라 교환도 어려울 것이라는 걱정까지 하면서 연신 툴툴거린다.

며칠 전 남편 생일이라 시동생들과 저녁을 함께 먹었다. 제법 날씨가 쌀쌀한데 막내 시동생이 여름 점퍼를 입고 왔었다. 아무래도 남편이 옷 타령을 하는 이유가 거기에 있나 보다.

결혼하기 전에 남편이 동생 셋과 함께 자취를 하는 집에 갔을 때였다. 마침 넷이서 나란히 누워 낮잠을 자는 중이었다. 동생들을 양팔에다 팔베개를 해서 자는 모습에 따뜻한 가슴을 가진 사람이라는 생각이 들어 결혼을 결심했다. 그러나 동생들을 사랑하는 그 마음은 나를 힘들게 할 뿐이었다. 매학기 등록금으로 은행융자를 내야 했고, 그 돈을 갚느라 살림살이는 궁색하기가 짝이 없었다.

산 넘어 산이라 했는가. 이제 출가를 했으니 한시름을 놓았다 생각한 것도 잠시였다. 막내 시동생이 어렵다는 소문이 들려왔다. 살림살이가 고만고만해 돌봐 줄 형편이 못 된다는 핑계로 외면하다 막상 추레한 그의 모습을 대하고 보니 마음이 편치 않았다.

'어머나, 정말 옷이 좀 작네. 당신보다 덩치가 작은 서방님께 드릴까.' 이런 말을 꺼내놓기를 목을 빼고 기다리는 그이에게 등을 돌리고 신문을 코앞으로 바짝 더 당겼다. 새로 장만한 점퍼를 동생에게 준다면 그이는 소매조차 나달나달 낡은 점퍼를 입어야 한다. 아직도 동생 뒷바라지가 끝나지 않은 것보다 내 눈치를 보는 남편이 한없이 안쓰럽다. 주방 구석에 남편 생일에 시동생들이 갖고 온 음료수 몇 병이 서글픔으로 다가온다.

조경숙(대구 남구 봉덕동)

♥수필2-텃밭도 '자식농다'다

도회지에서 자란 친구들은 텃밭 가꾸기를 재미로 안다.

두 고랑 남짓 주말농장을 분양받았다며 좋아하는 친구에게 내 고향땅 한 밭뙈기를 3년 무상으로 사용권(?)을 주었더니 큰 횡재라며 고구마, 감자, 고추, 들깨, 부추 등 열심히 가꾸기 시작했다. 파종을 하고 주말마다 들러 정성스럽게 가꾸어 이웃과 나누어 먹는다고 했다. 나는 부득이 어른이 계시니까 수시로 고향을 들락거리지만 욕심내어 할 수가 없었다. 어른은 "땅을 놀리면 죄다"라고 하시며 지팡이를 짚고 묵혀둔 밭을 괭이로 일구어 각종 씨앗을 뿌려 놓는다.

직장생활하며 농사일까지 할 수 없기에 먹을 만큼만 해왔는데, 친구는 욕심내어 첫해 농사를 지어 보더니 재미삼아 가꾸는 텃밭과는 달리 힘이 들었던지! 올해는 왔다갔다 하는 차 기름 값으로 사먹어야겠다며 3년 무상 사용권을 포기하고 말았다. 농사일이 어디 그리 쉬우랴.

오늘도 주렁주렁 매달린 감자를 뽑아 올리며 그 친구의 손길이 가지 않은 잡초 무성한 밭을 보며 뭐라도 심을 걸 하는 생각이 든다. 텅 빈 밭고랑보다 잡초 무성한 밭이 더 서글퍼 보인다. 증조할아버지 때부터 100여 년 넘게 농사 지어온 땅을 물려받아 주말마다 산소를 둘러보고 밭에 들러 오늘 저녁 밥상에 올릴 푸성귀 뜯어가는 것이 결코 재미는 아니다.

고향의 슬레이트 지붕에 풀이 숭숭 나 있어도 어른께서 계시니 부지런을 떨 수밖에 없지만, 농사일이란 땡볕에서 등짝이 타오르는 것 같은 더위에서도 일을 해야 하는 것, 주렁주렁 올라오는 감자와 대롱대롱 달린 고추며 아기털 송송한 콩잎을 보면 식물의 부모가 된 심정이라 고단함을 이겨내는 것이지 결코 재미가 아니란 걸 그 친구도 몸소 체험했을 것이다. 농부의 땀이 밴 채소와 곡식들을 소중히 여겨 맛나게 먹어주면 농부에 대한 보답이다.

텃밭, 그 비교도 할 수 없는 노동과 사랑으로 키워야 하니 자식을 농사에 비유하여 '자식 농사'라고 하는 게 아닐까?

문성권(대구 수성구 지산동)

♥시-삶의 자리

어둔 밤 별들과 달님이 비추다 만 자리가 있었습니다.

무더운 여름 아침 해님이 활활 불꽃을 피우다 만 하늘엔

하얀 이불을 덮어쓴 해님이 있습니다.

무엇에 심통이나 마음이 삐뚫어졌는지

금방이라도 이불 속에서 눈물이 쓰며 나올 것 같은 날입니다.

우리는 그님들의 품안에서 눈치만 보면서 살아가고 있습니다.

그님의 기쁨은 나의 기쁨이고

그님의 슬픔 또한 나의 슬픔입니다.

그님은 가난한 우리에게 풍부한 감성을 주시고

솔직한 마음을 주시고

사랑하는 마음을 주셨습니다.

어차피 잠시 동안 머물다 말

하늘 속 해 와 달 아래에서

당신과 나의 삶에 의미를 잃어버린다면

지금 이 자리를 거두고 돌아가야 할 것입니다.

당신과 나의 삶에 빛이 흐르는 동안

그늘진 구석 한 자리라도

삶의 희망에 끈이 이어질 것입니다.

여관구(경산시 사동)

※지난주 선정되신 분은 박기옥(경산시 와촌면 박사리) 님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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