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신문

[사설] 상주본 소재부터 먼저 밝혀야

훈민정음 해례본 상주본을 훔친 혐의로 1심에서 징역 10년을 선고받은 배 모 씨가 항소심 재판 중 해례본을 국가에 기증할 뜻을 밝혔다. 배 씨는 "재판 결과에 관계없이 해례본의 소재를 밝히고 국가에 기증할 생각이 없느냐"는 재판부의 물음에 "약속은 못 하지만 무고임이 밝혀지면 기증할 의사가 있다"고 말했다고 한다. 이에 대해 검찰은 국보급 문화재를 두고 거래를 하려 한다며 1심 판결보다 더 무거운 징역 15년을 구형했다. 판결은 30일이다.

보존 상태가 좋아 '1조 원대의 가치가 있다'고 할 만큼 최고의 해례본으로 인정받은 상주본의 절도 사건은 복잡하게 얽혀 있다. 1999년 안동 광흥사에서 서모 씨가 훔쳐 조모 씨에게 팔아넘긴 것인데 이를 다시 배 씨가 훔쳐갔다는 것이다. 조 씨는 대법원 판결로 소유권을 인정받고 나서, 국가에 기증 의사를 밝힌 상태다. 하지만 배 씨는 훔친 것을 부인하고, 1심에서 10년 형을 선고받고도 끝내 상주본의 소재를 밝히지 않았다.

배 씨의 말을 다 믿을 수는 없지만, 이번 재판 과정에서 보면 일단 배 씨가 해례본을 어딘가에 숨겨둔 것으로 짐작할 수 있다. 하지만 이를 두고 범죄 유무에 대한 재판을 호도하려 한다면 잘못이다. 배 씨가 입을 다물면 상주본을 찾기가 어려워, 처벌보다는 상주본을 찾는 것이 더 시급하다. 하지만 해례본 기증과 범죄행위는 별개다. 절도에 대한 유무죄 여부는 재판부가 판단할 일이다.

배 씨는 먼저 상주본의 소재를 정확히 밝혀야 한다. 상주본은 한글의 발전 과정을 연구하는 데 중요한 고리 역할을 할 국가 유물이다. 이를 숨긴다는 것은 단순한 절도죄 유무의 문제가 아니라 역사에 죄를 짓는 것과 같다. 배 씨는 씻을 수 없는 죄인이 되기 전에 상주본을 먼저 내놓고, 재판부의 선처를 바라는 것이 옳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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