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신문

[행복을 요리하는 의사] 세상에서 가장 어려운 결정

민경이는 말을 잘했다. 치료 결과가 나쁘기로 악명 높은 '교모세포종'이라는 뇌종양에 걸리기 전까지는. 불과 5개월 전만 해도 민경이는 태권도를 잘하는 소녀였다. 그러나 뇌 수술과 항암치료를 받고도 병은 악화돼 이제는 말을 할 수도, 음식을 삼킬 수도, 걸을 수도 없게 됐다. 기관지를 절개해 숨을 쉬고, 코에서 위까지 관을 집어넣어 영양분을 섭취해야 한다.

의사소통이란 그저 주사바늘에 찔리면 눈물을 흘리며 울거나, 입을 씰룩거리는 정도다. 동화 속 공주처럼 길게 기른 머리카락도 항암치료로 다 빠졌다. 하루에도 몇 번씩 경련을 한다. 열한 살짜리가 맞는 죽음의 그림자는 참혹했다.

호스피스 5년째를 맞으며 그동안 800명 이상의 환자를 떠나보냈다. 하지만 소아 암 환자는 민경이가 처음이다. 소아 호스피스 환자가 드문 이유는 현대의학의 눈부신 발전으로 소아암의 완치율이 높아졌기 때문이다. 하지만 그런 높은 확률 때문에 드물게 민경이처럼 호스피스 대상자가 돼도 부모들은 선뜻 호스피스로 올 수가 없다. 왜냐하면 그들은 비록 기적일지라도 완치를 위한 희망 없는 치료를 포기할 용기가 없고, 어쩔 수 없는 포기가 아이에 대한 죄의식으로 이어지기 때문이다.

민경이 부모가 처음 호스피스 상담을 하러온 날을 기억한다. 60세 된 딸이 90세 된 노모(老母)를 모시고 오면서도 '죽음의 병동'이라고 두려워하는 곳이 바로 호스피스 병동이다. 민경이 부모는 며칠 밤을 하얗게 지새우며 어려운 결정을 내렸을 것이다. 그러나 나는 비겁하게도 민경이가 입원할까봐 두려웠다. 그들이 과연 지금처럼 아이의 마지막을 침착하게 받아들일지 걱정됐다. 아니 그것보다는 딸을 키우는 내 감정조절이 힘들 것 같아서 할 수만 있다면 그 상황을 피하고 싶었다.

그렇지만 민경이는 입원을 했다. 아이의 죽음은 가족의 비극이다. 가족에게 드리워진 검은 그림자를 현명하게 거두는 방법은 무엇일까? 우리가 할 수 있는 일은 죽음에 발버둥치며 악을 쓰는 것이 아니다. 그저 그날이 올 때까지 민경이를 사랑해주는 것이다. 만돌린 봉사자는 '개구리 왕눈이'를 연주해주고, 미용 봉사자는 머리카락을 예쁘게 다듬어주었다. 발 마사지 봉사자는 두 발이 굳지 않게 아로마 오일로 부드럽게 마사지를 해주고, 엄마는 동화책을 나지막이 읽어주기도 했다.

이별이란 관계를 멈추는 작업이다. 떠나는 아이는 사랑하는 가족이 자기를 잊을까봐 두려워한다. 기억에서 희미해지지 않도록 추억을 남겨야 한다. 서글픈 이별의 추억까지 포함해서 말이다. 민경이가 떠나고, 민경이 부모는 어쩌면 죽음보다 못한 삶을 살아야 한다. '죽음보다 깊은 삶'을 살아가려면 영원히 기억되는 눈부신 마지막을 지금 준비해야 한다.

김여환 대구의료원 호스피스'완화의료센터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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