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신문

[야고부] 올림픽과 정치적 의사

1968년 멕시코올림픽 육상 200m 시상식. 우승자인 미국의 토미 스미스와 3위 존 카를로스는 신발을 신지 않은 채 검은 양말 차림에다 검은 장갑을 끼고 시상대에 올랐다. 검은 장갑은 인종차별 반대, 검은 양말은 흑인의 빈곤에 대한 항의의 표시였다.

이들은 미국 국가가 연주되는 동안 고개를 숙인 채 검은 장갑을 낀 주먹을 하늘을 향해 뻗었다. 그 대가는 가혹했다. '정치적 의사표시'를 했다는 이유로 200m 종목에서 최초로 20초 벽을 깬(19.83초) 위업에도 불구하고 메달을 박탈당했다. 스포츠계에서 매장됐고 직업도 구하지 못했다. 그러나 미국 흑인 사이에서는 진정한 올림픽 영웅으로 각인되어 있다.

1960년 로마올림픽 마라톤을 맨발로 제패한 아베베 비킬라의 경우는 사뭇 달랐다. 그는 "25년 전 조국의 한을 풀었다"고 소감을 밝혔다. 자신의 우승이 1936년 에티오피아를 침공한 이탈리아에 대한 되갚음임을 시사한 것이다. 그러나 아베베는 메달 박탈은커녕 세계인의 영웅이 됐다. 당시 세계 언론은 "에티오피아 점령에는 모든 이탈리아군이 필요했지만, 로마 점령은 단 한 명의 에티오피아군(아베베는 당시 하사관)이면 됐다"며 우승의 정치적 의미를 한껏 부풀렸다.

IOC 헌장은 "올림픽 경기장이나 관련 시설에서 정치적, 종교적, 인종적 선전 활동을 금지한다"고 규정하고 있다. 인류 화합의 장이 정치로 오염될 소지를 막기 위해서다. 그러나 그 기준은 모호하다. 정치적 의사 표시에 대한 IOC의 판단은 매우 자의적이고 차별적이다.

이스라엘은 런던올림픽 개막식에서 1972년 뮌헨올림픽 때 팔레스타인해방기구(PLO)에 희생된 자국 선수 11명의 추모 묵념을 공식 행사로 제안했다. IOC는 이를 거부하는 대신 이스라엘 선수단이 개막식에 입장하면서 검은 손수건을 상의에 꽂고 행진하도록 허용했다. 아랍인의 눈에는 분명 정치적 의사 표시였을 것이다.

우연히 관중에게 넘겨받은 종이 피켓으로 '독도 세레모니'를 펼쳤던 올림픽 축구 대표팀의 박종우 선수가 정치적 의사표시를 이유로 메달이 박탈될 처지에 놓였다. 독도 세레모니와 이스라엘 선수단의 검은 손수건, 아베베의 '조국의 한' 발언은 어떤 점에서 어떻게 다른 것인가. 메달 박탈에 앞서 IOC는 올림픽 참가 선수의 의사표시의 한계는 어디까지인지부터 밝혀야 할 것이다.

정경훈 논설위원 jghun316@msnet.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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