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신문

[좋은생각 행복편지] 고령화 사회, 그 우울한 징후들

올봄 부친상을 당한 후배가 술자리에서 홀로 남은 모친 이야기를 반쯤 울음을 섞어 늘어놓으며 '도대체 어떻게 하면 좋겠느냐'고 조언을 구하는데 뾰족이 들려 줄 말도 없고 그냥 명치 아래가 답답하기만 했습니다.

일흔을 넘긴 후배 모친은 몇 년 전부터 치매기를 보여 왔다는데요. 글쎄, 고향 선산에 아버지를 모시고 땅거미를 거느리며 시골집 삽짝으로 들어서던 그날도, 모친네는 혼자 마루에 앉아 손칼국수를 썰고 있더랍니다. 친지, 어른, 아이 할 것 없이 모두 어안이 벙벙하여 서로 얼굴만 쳐다보고 있는데, 후배가 마루로 올라가 "어무이요, 아부지 장례식날 이게 무슨 일인기요?"하며 등 뒤로 껴안자, "야가 와이카노, 비키라. 니 애비 경운기 몰고 들에서 돌아올 때 다 됐다. 하루 종일 일하고 얼마나 배고플 끼고…"하더랍니다.

 그날 저녁의 가족회의에서 사남매가 혼자 남은 어머니를 대구로, 부산으로 서울로 서로 모시겠다고 해도 모친네는 한사코 손사래를 치며 시골집에 혼자 살겠다고 고래 힘줄 같은 고집을 피웠답니다. 어쩔 수가 없어 시골집에 달랑 혼자 남겨 두고 자식들은 모두 떠날 수밖에 없었는데 그날 이후로 모친의 안부가 걱정이 되어 틈만 나면 시골집으로 달려간다는데요.

지난 주말에도 애들을 데리고 시골집엘 갔었는데, 후배네 식구가 마당으로 들어서는 줄도 모르고 그 모친네는 그날도 마루에 앉아 손칼국수를, 썰고 있더랍니다. 아니 집안 구석구석에 켜켜이 쌓인 적막을 썰고 있더랍니다. 썰어낸 국수 가락을 부엌의 그릇마다, 냉장고의 칸칸마다, 마루의 채반마다 가득가득 담아두고서는. 그리고 후배 아내와 눈이 마주치자 천연덕스럽게 "얘야, 니 시애비 들에서 올 때 다 됐다. 어서 국수물 넉넉히 얹어라. 시애비는 내가 해 주는 손칼국수는 한 양푼이도 더 자신단다"하더랍니다.

도무지 해답이 없는 이 후배의 넋두리는 이제 우리 주변에서 발길에 차이는 돌멩이처럼 흔한 이야기입니다. 눈 가는 곳마다 즐비하게 들어서는 노인요양병원이나 다양한 종류의 실버산업이 번창하는 것만 보더라도 바야흐로 고령화 사회의 문제가 서서히 수면위로 떠오르고 있습니다.

학자들은 너나없이, 인구의 고령화가 몰고 올 충격이 천변지이(天變地異 )에 가까울 것이라고 경고합니다. 고령화에 관한 책은 그 제목만 봐도 '늙어가는 대한민국-저출산 고령화의 시한 폭탄', '고령화 쇼크'처럼 아주 쇼킹합니다. 보스턴 대학의 로렌스 코틀리코프 교수는 '다가올 세대의 거대한 폭풍'이라는 책 서두에 '책을 읽기에 앞서 편안한 의자에 앉은 다음 넥타이나 셔츠 단추를 풀고, 안정제나 우울증 약을 복용하기 바란다'라는 당부를 적으며, 다가올 고령화 사회의 쓰나미를 경고하고 있습니다.

'고령 인구의 급속한 증가와 젊은 인구의 급속한 감소'로 인해 어느 누구도 상상할 수 없을 만큼 무서운 초고령화 세상, 이 끔찍한 변화가 한반도에서 가장 심각하게 일어날 것이라는 전망이 우리를 더욱 우울하게 만듭니다. 한 예측에 따르면 우리나라 인구는 2020년을 정점으로 하향 곡선을 그릴 것이며, 그때가 되면 65세 이상의 노인들이 15세 미만의 어린이보다 많아지는, 그리고 50세 이상의 고령자들이 유권자의 절반을 차지하는, 이른바 노인국(老人國)이 된답니다. 노인국의 우울한 주민이 되어 너무나 길어지는 후반기 인생을 잉여 인간의 비애를 느끼며 비굴하게 살아가지 않으려면, 농부가 이모작을 하듯이 후반기의 삶을 새롭게 설계해 갈 것을 학자들은 강력히 권고하고 있습니다.

이미 초고령화 사회로 접어든 후배네 시골 마을, 모친 혼자 사는 집 그 옆집에도 할아버지 한 분이 혼자 살고 있다나요.

누가 무슨 말을 걸어도 '몰라'라고만 대답하시는 이 할아버지를 두고 동네 사람들은 '몰라 할배'로 부른다는데요. 평생 동안 논두렁 밭두렁을 숨 가쁘게 쫓아다니며 아들 딸 구남매를 키워내 제각기의 삶터로 떠나보낸 후, 그 각박하던 세월에 몸과 마음이 닳고 닳아 허리가 꺾였지만, 몇 년 전까지만 해도 만나는 사람마다 붙잡고 도시로 떠나간 아들 자랑 딸 자랑으로 침이 마르지 않더니, 작년에 할머니를 먼저 산으로 보내고부터는 굽은 허리 더욱 굽히고 집안에 들어박혀 세상과 담을 쌓고 지낸답니다. 잡초가 안마당을 지나 방문 앞까지 쳐들어와도 거들떠보지도 않고 늘 마루에 앉아 먼 산만 바라보며 지낸답니다.

세상일을 모두 모른다는 몰라 할아버지가 용케도 알아내는 것은 한 달에 한 번씩 아들딸들이 찾아오는 날이랍니다. 그날만 되면 몰라 할아버지는 아침 일찍부터 동구 밖까지 나와 동수나무 그늘에 쪼그리고 앉아 있답니다. 이 몰라 할아버지가 너무 측은해 보였던지 길가에 사는 민들레 질경이 강아지풀들도 할아버지 곁에서 발돋움하며 함께 동구 쪽을 바라본다나요.

김동국(시인)

최신 기사

많이 본 뉴스

일간
주간
월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