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신문

[한준희의 교육 느낌표] 함께 꾸는 꿈이 현실이 되다

대구에서 토론 관련 교육이 이뤄진 것도 제법 많은 시간이 흘렀다. 통합교과논술 바람이 불면서 한동안 다소 활성화되는 느낌도 있었다. 하지만 수학능력시험으로 대변되는 입시정책에서 토론은 언제나 뒤로 밀렸고, 힘들게 학교 현장에서 토론 교육을 진행하고 있던 선생님들도 지치기 시작했다.

그러던 작년 9월 '디베이트 중심도시 대구 만들기 프로젝트'라는 다소 거창한 목표 아래 토론 관련 사업이 시작됐다. 10개월 정도가 지난 현재, 학교 현장에서 500여 개의 디베이트 클럽이 만들어져 토론 관련 활동이 이뤄지고, 주말에는 지역의 학교들이 모여 캠프나 리그를 진행하고 있다.

하지만 현상의 이면에는 몇 가지 문제점이 드러났다. 디베이트 교육이 토요일마다 이뤄지면서 선생님들의 업무 부담도 늘어 이 교육이 원성의 대상이 되기도 했다. 정책 진행 속도가 빠르다 보니 적응하지 못한 학교 현장이 혼란스럽다는 소리, 골목마다 디베이트 관련 광고지가 붙을 정도로 사교육의 유혹이 크다는 소식도 들렸다. 좋은 정책이 분명함에도 이런 목소리들이 정책의 발목을 붙들었다.

문제는 오히려 더 본질적인 부분에 있었다. 찬반 대립과 승패 결정이라는 디베이트의 기본 구도가 오히려 경쟁을 유발한다는 비판이 그것. 흥미에서 시작해 대결과 승패를 지나 배려와 나눔을 통한 소통이라는 궁극적인 목표에 도달하기도 전에 승패에만 집착한다는 것이다. 얼마 전 만났던 코리아 스픽스 이병덕 이사는 '토론의 본질은 이기는 것이 아니라 서로 의견을 나누고 다양한 생각들을 모아가는 과정'이라고 말했다.

지난 몇 달 동안 디베이트 교사지원단 소속 선생님들은 문제점을 보완할 수 있는 프로그램 개발과 더불어 학교 현장을 찾아가 선생님들과 소통하기 위해 최선을 다했다. 기존의 디베이트 포맷을 받아들이면서도 교육적으로 부작용을 최소화할 수 있는 방안을 찾기 위함이었다. 출발은 디베이트 활동을 통해 디베이트 포맷을 완벽하게 익히는 것이 아니라 자신의 생각을 능동적으로 표현하는 힘을 길러야 한다는 기본 정신으로 돌아가는 일이었다. 나아가 대화를 통해 소통하고 배려하는 마음을 키울 수 있는 방안을 마련해야 한다는 점이었다.

가장 먼저 시작한 것은 용어의 변경. 디베이트 리그나 대회보다는 디베이트 어울마당이라는 말을 쓰기 시작했다. 경쟁보다는 서로 다른 생각이 어울리는 무대를 제공해야 한다는 것이 생각의 출발이었다. 경쟁으로 지친 아이들에게 숙제보다는 축제에 가까운 시간과 공간을 마련해주자는 것이었다.

다음으로 디베이트 포맷에 다양한 변화를 줬다. 시간이나 형태에 조금씩 변화를 주면서 '디베이트 이야기'와 같은 새로운 포맷을 첨가했다. 가족 디베이트, 독서 디베이트, 철학 디베이트, 사회과학 디베이트 등 다양한 어울마당을 기획했다. 초등학교와 중등학교의 차이도 고려하여 포맷의 변화를 줬다. 동일한 포맷은 대회 운영을 위해서 필요한 조건일 뿐이다. 수단이 목적을 앞설 수는 없는 것이다.

디베이트 교육이 정착되지 못한 학교 현장의 지원에도 총력을 기울였다. 대구 디베이트 교사지원단의 홈페이지인 '디베이트 라이프'를 통해 클럽 운영이나 캠프에 대한 무료 지원과 강의를 계속했다. 현장 선생님들의 작은 질문에도 진실하게 답변을 하면서 소통을 계속했다.

각 학교에서는 자연스럽게 디베이트 학교 리그나 캠프가 이뤄지고, 지역 학교들이 모여 지역 리그와 캠프를 개최했다. 이들에 대한 지원단 교사들의 지원도 계속됐다. 마음을 함께하는 학부모지원단의 도움도 아름다웠다. 아직은 부족한 부분이 존재하겠지만 시끄러웠던 목소리들이 조금씩 사라지기 시작했다. 아이들의 미래를 진정으로 걱정하는 선생님들의 힘이 얼마나 위대한지 확인되는 순간이었다. 함께 꾸는 꿈이 현실이 되는 아름다운 순간이었다.

한준희 대구시교육청 장학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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