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제 자녀를 명문대에 입학시키려면 '할아버지의 경제력', '어머니의 정보력', '아버지의 무관심'이 필수라는 속설도 바뀌어야 할 듯하다. 최근 자녀 교육에 아버지의 역할이 강조되면서 대학 입시에 관심갖는 아버지들도 늘고 있기 때문이다. 각 교육청에서 진행하는 아버지 교육 프로그램와 대입 설명회에선 아버지들의 모습을 쉽게 찾아볼 수 있다.
문제는 아버지 세대와 달리 현재의 대입제도가 상당히 다르다는 점이다. 학력고사 시절 모든 수험생은 같은 시험을 친 뒤 전기, 후기, 전문대 순으로 지원했다. 하지만 현재는 3천 가지가 넘는 수시모집 전형에다 정시모집도 3가지 모집군이 있는 등 대입 전형이 다양하고 복잡하다. 자녀 교육을 어머니에게만 맡기다 대입을 앞두고 '19년 만에 (자녀 교육을 위해)돌아온 아버지'들로선 머리가 아플 수밖에 없다. 한 발 늦게 자녀 교육에 뛰어든 아버지들의 눈높이에 맞춰 대입제도에 대한 오해와 진실을 추려 봤다.
◆내가 대학 갈 땐 그 학교는 쳐주지도 않았어.
"거기 보내려고 이제껏 힘들게 벌어 공부시킨 줄 알아?"
고교생들을 만나 보면 아버지와 마주 앉아 입시에 대해 얘기를 나눌 때 많이 듣는 말이라고 한다. 입시 전문가들은 고교생 자녀가 있음에도 요즘 선호하는 대학과 서열을 잘 모르는 아버지들이 많다고 했다. 자신이 대학에 진학할 때 생각만 하는 아버지들의 기준은 경북대. 그들의 머리속엔 '차라리 경북대…', '경북대 정도는…'이라는 생각이 자리하고 있다.
'차라리 경북대…'는 연세대, 고려대에 못 갈 바에는 경북대에 가라는 의미다. 현재 수도권 주요 10개 대학이란 이름으로 많이 언급되는 곳은 서울대'연세대'고려대'서강대'성균관대'한양대'중앙대'경희대'한국외대'서울시립대. 하지만 19년 만에 돌아온 아버지들로선 서울대'연세대'고려대 외엔 성에 차지 않는다. 각 입시 전문 기관이 내놓은 2012학년도 정시모집 배치기준표만 봐고 아버지 세대들은 흔히 '삼국대'라 부르던 동국대'건국대'단국대가 경북대와 비슷하거나 높은 곳에 자리하고 있다는 점을 모르고 있다.
'경북대 정도는…'도 착각이긴 마찬가지. 자녀가 공부를 잘 못해도 경북대는 갈 거라는 막연한 기대 심리가 깔린 말이다. 경북대의 위상이 하락한 것은 사실이지만 수능 성적 외에 대학진학적성검사(AAT), 입학사정관 전형 등을 따로 준비하지 않는다면 내신 성적만으로 따져볼 때 3, 4등급 성적으로 인기 학과 진학이 쉽지 않다.
대구진학지도협의회 박영식 회장(청구고 교사)은 "실제 수도권 대학들이 그 정도 실력인지, 졸업 후 취업이 잘 되는지 등은 곱씹어볼 여지가 있지만 '인(In) 서울'을 중요시하는 게 엄연한 현실인데 진학 상담을 하러 온 대부분의 아버지들은 그 사실을 모르고 있다"고 했다.
◆자녀들 교육은 아내가 알아서 잘해왔겠지?
아버지들이 '아내가 알아서 잘해왔을 것'이라고 생각하는 것은 '아내가 아이 교육비에 많은 돈을 투자한 만큼 아이 성적도 좋을 것'이라는 뜻이다. 하지만 이것 역시 착각이다. 학원을 고르랴, 입시 정보를 모으랴 바쁘게 뛰어다닌 어머니들을 못 미더워서 하는 소리가 아니다. 아버지들의 현실 인식이 부족한 탓이다.
아버지들 중에선 대입을 앞둔 자녀 성적표를 보고 놀랐다는 이들이 많다. 생각보다 자녀의 성적이 좋지 못하다는 것이다. '성적이 왜 이 모양이냐'며 아내와 자녀를 다그치다 보면 해결책을 찾을 수 있기는커녕 갈등의 골만 깊어진다. 하지만 교육비와 자녀의 성적이 정비례한다고 믿는 것은 잘못이다. 다니는 학원 수보다 학습 동기, 스스로 학습할 시간 확보가 더 중요하다.
(사)지식플러스 교육연구소에 따르면 자녀의 진학 상담을 하러 온 아버지들은 자신보다 훨씬 나은 환경인데도 공부를 잘 하지 못하는 자녀를 이해하기 힘들어 하는 경우가 많고, 아버지의 학력이 높을수록 이 같은 경향은 더욱 강하다. 과거와 현재의 입시제도부터 다르다고 설명해도 '어쨌든 공부만 열심히 하면 되는 것 아니냐'고 짜증을 내고 만다는 것이다.
이곳 김기영 연구실장은 "현 입시제도를 제대로 이해하지도 못한 채 자녀를 붙들고 지원 대학'학과, 공부 방법 등 진학 문제를 꼼꼼히 따질 것이라면 차라리 진로 멘토 역할을 하는 게 낫다"며 "사회생활을 하면서 각 직종의 현황과 전망 등 보고 듣고 느낀 점을 알려줘 진로 선택에 참조할 수 있도록 하는 것이 더 현명한 일"이라고 했다.
◆내신? 동아리활동? 수능만 잘 치면 되지 않나?
학력고사 세대 아버지들은 아직도 고3 때만 열심히 수능시험을 공부해도 명문대에 들어갈 수 있다고 생각하는 경우가 적지 않다. 입시 전문가들은 특히 직업이 의사인 아버지들 경우 그 같은 사례가 많다고 했다. 유명한 의과대학은 못 가더라도 지방의 의대 정도는 쉽게 갈 수 있다고 믿는다는 것. 그들의 입에선 '나는 고3 때 바짝 공부한 것만으로 의대에 갔다', '내 친구는 공부를 잘 못했는데도 지방의 의대는 갔다'는 말이 쉽게 나온다. 자연계열 경우 배치기준표상 서울대 위에 의대가 있다는 것을 모르고 하는 소리다.
더구나 현재 입시제도에서는 수능시험 하나로 대입 관문을 뚫기는 어렵다. 학력고사만 잘 치면 되던 시절과는 판이하게 다르다. 서울대가 이번에 신입생의 80%를 수시모집에서 선발하기로 하는 등 수능 위주인 정시모집보다 수시모집 비중이 더 크다는 점을 간과해선 안된다.
물론 수능은 중요하다. 상위권 대학일수록 수시모집에서 수능 최저학력기준을 두고 있기 때문. 하지만 수능이 만사를 해결해주진 못한다. 전형에 따라 내신 성적과 동아리활동 등 비교과 영역이 기록된 학생부, 자기소개서와 추천서, 포트폴리오 등을 갖춰야 하고 논술, 적성검사, 면접 등을 준비해야 하는 등 신경 쓸 게 한두 가지가 아니다.
대구시교육청 진학진로지원단 박재완 단장(혜화여고 교사)은 "수능 모의평가 점수가 정시 기준으로 어느 정도 위치인지 확인해 합격 가능한 대학들을 추려낸 뒤 학생부'논술'적성고사 등을 얼마나 준비했는지 따져 원서를 쓰는 것이 수시모집 전략의 기본"이라고 했다.
채정민기자 cwolf@msnet.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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