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ㄱ'자 흙집 안마당에 가을 햇살이 잠뿍 내려앉았다. 처마 밑에서 누렁이가 졸고 있고 이 집 안주인은 마당에 오카(고구마와 감자의 중간맛이 나는 식물로 이들의 주식)를 널어 말린다. 흙벽돌담 사이 삽짝문을 나서면 담을 따라 두 사람이 겨우 비껴 지나갈 수 있는 고샅길이 이어진다.
오른쪽 고샅길은 동네로 이어지고 왼쪽 고샅을 따라 열두어 발걸음을 옮기면 통시(화장실)가 나온다. 흙벽돌로 지은 한 평 될까 말까 한 정방형 통시의 문은 거적때기를 걸쳐 놓았고 지붕은 산에서 벤 풀을 지은 초가다. 통시 속 널빤지 두 개가 구덩이 위에 적당한 간격으로 놓였고, 손이 닿는 벽에는 헌 신문지를 꽂은 구부린 철사가 눈에 띈다. 그 옆 돌담 우리엔 사람 발걸음 소리를 듣고 돼지들이 밥을 달라고 꿀꿀거린다. 삽짝 밖 고샅 아래 계단밭에서는 옥수수가 가을 바람결에 서걱서걱 소리를 내고, 그 아래로 앞집 초가지붕이 보인다. 그 너머는 파란 호수가 끝 간 데 없이 펼쳐졌고 눈이 시리도록 새파란 하늘 위엔 흰 구름 한 점이 유유자적하고 있다.
◆캐추아족 인디오 마을, 카라마마니 집
서두에 언급한 풍경은 어릴 적 우리네 시골 모습이 아니다. 지구 반대편 남아메리카 페루 땅, 정수리에 하얀 만년설을 인 고봉들이 남미대륙 서쪽에 종단으로 늘어선 안데스산맥 한복판. 눈 녹은 물이 고인 티티카카 호수 위에 봉긋이 떠 있는 아만타니 섬 산비탈에 옹기종기 붙어사는 캐추아족 인디오 마을, 카라마마니 집 모습이다.
우리나라가 봄이라면 이곳은 스산한 바람이 불어오는 가을이 된다. 하지만 그들의 동네 풍경이나 집, 그리고 사는 모습은 우리네 어릴 적 시골 모습을 쏙 빼닮았다. 동네 풍경뿐 아니라, 그들의 얼굴을 보면 모두가 어디서 본 듯한 우리 이웃들의 모습이다.
그들이 어떻게 이 땅에 정착했는지는 잘 모른다. 그 옛날 시베리아와 알래스카 사이 베링해협이 육지로 이어졌을 때 몽골리안들이 북미 대륙을 거쳐 이곳 남미까지 내려왔는지, 혹은 빼어난 항해술로 태평양을 건너왔는지…. 하지만 그들이 우리와 한 핏줄인 것은 틀림없다. 인디오와 어린아이들의 엉덩이엔 시퍼런 몽고반점이 도장을 박은 듯이 선명하다.
◆안데스산맥 속 티티카카 호
안데스산맥 속의 티티카카 호는 수면의 높이가 해발 3,812m나 되는, 세계에서 가장 높은 데 위치한 호수이다. 그 넓이가 자그마치 충청남도 면적(8천600.96㎢)과 비슷하다. 바다와 진배없다. 이 호수에 처음 온 나그네는 배를 탔다 하면 머리가 아프고 구토 증세를 일으킨다. 이것은 뱃멀미가 아니고 바로 고산병 증세다.
호수변의 작은 읍내 '푸노'까지 나가려면 4시간 배를 타야 하는 외딴 섬 '아만타니에'는 200여 가구의 인디오들이 문명을 등진 채 '아도베'라는 흙집에서 살아가고 있다. 이들은 의식주를 간단하게 해결한다. 티티카카 호수에서 고기를 잡고, 산비탈 밭뙈기에서 옥수수, 감자, 오카를 심어 먹고, 양을 키워 털을 뽑아 옷을 해 입으면 끝이다. 마당에서 오카를 말리고 있는 카라마마니 여인은 40년 전 어느 날 밤을 잊지 못한다. 17세의 '칼신카리'는 달빛이 파랗게 물든 밤 티티카카 호숫가에서 꽃다운 16세 카라마마니의 두 손을 잡고 '성공하면 데리러 오겠다'는 약속을 남기고 훌쩍 아만타니 섬을 떠나 버렸다.
◆티티카카의 아름다운 러브스토리
티티카카 호수는 아름다운 러브스토리를 품고 있다. 카라마마니는 그 약속을 가슴에 안고 하염없이 티티카카 호수만 바라봤지만 칼신카리의 모습은 나타나지 않았다. '내일이면 오겠지'라며 언덕에서 내려오기를 9년, 그렇게도 기다리던 칼신카리가 나타났다. 고향 섬 아만타니 섬을 떠난 칼신카리는 성공해 보겠다고 훌리아카로, 아레키파로, 리마로 떠돌며 온갖 고생을 했지만 성공은커녕, 제 한 몸 입에 풀칠하기도 바빴다.
성공이 무슨 대수냐? 돌아온 것만 반가워 카라마마니는 칼신카리의 품에 안겨 가슴을 적셨다. 파랑새를 잡으러 도시를 떠돌던 칼신카리도 제 살 곳은 고향뿐이라는 것을 깨닫고 카라마마니와 살림을 차린다.
그리고 강산이 3번이나 바뀌었다. 카라마마니는 슬하에 3남 3녀를 두었다. 제 아비를 닮았는지 아들 딸들은 고향을 떠나 모두 도시로 나갔다. 리마로, 훌리아카로, 푸노로…. 첫째인 장남은 리마에서 카펫 직공으로 일하며 2남 1녀를 두었다. 4년 전 아들 내외가 단칸 셋방살이하는 것이 안쓰러웠던 카라마마니는 남편의 등을 떠밀어 리마로 보냈고, 남편은 변두리 땅에 흙벽돌집을 지어주고 돌아왔다. 미혼의 아들딸들은 가끔씩 몇 푼의 돈을 집으로 부쳐준다며 카라마마니는 빙긋이 웃는다. 훌리아카의 식당에서 일하던 셋째 딸 세라피나가 이제 고향집으로 돌아와 집안일을 도와주는 것이 고마워 카라마마니는 또다시 웃는다.
그들이 살아가는 모습 또한 우리네 시골집과 그렇게 똑같을 수가 없다.
글'사진 도용복 대구예술대 특임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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