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주는 역사 문화의 정신적 수도(首都)다. 그래서인지 경주 일대에는 일제의 민족정기 훼손 흔적이 곳곳에 널려 있다. 왕릉을 파헤친 것은 물론이고 지세가 좋은 땅이면 혈침을 박고 갈라놓았다. 광복 67주년을 맞은 오늘, 경주는 아직도 일제가 우리의 정신을 끊어놓으려고 두드려놓은 망치질에 신음하고 있다.
◆명당에 자리한 조선총독부비
계속되던 찜통더위가 13일 종일 내린 비에 한풀 꺾였다. 처음 찾은 곳은 경주 보문삼거리에서 불국사 방면으로 빠지는 길목에 자리한 명활산성. 이 산성은 신라 때 왜구를 막고자 만들었다. 멀리 보이는 '명활산성 복원현장'이라는 입간판을 방향 삼아 산 중턱을 15분쯤 올랐을까, 복원공사 과정에서 뽑힌 것으로 보이는 높이 87㎝, 너비 20㎝가량의 조선총독부 고적비가 땅에 널브러져 있었다. 앞면에는 심한 풍화로 '朝鮮總督府'라는 음각 가운데 '朝(조)'와 '府(부)'만 희미하게 남아 있었고, 뒷면에는 '고적 제16호'라는 기록이 새겨져 있다. 이곳에 있는 명활산성 작성비와 사적비, 고적비 가운데 고적비 2기는 조선총독부가 세운 것이다.
주민 김모(32) 씨는 "오늘 정부가 대한민국 대통령의 이름이 새겨진 '독도수호표지석'을 독도에 세워 영토주권을 명확히 한다고 하는데, 경주에서는 뭘 하는지 모르겠습니다. 경주시가 '과거 역사도 역사'라는 이유로 조선총독부비를 없애지 못한다면 따로 장소를 마련해 보관해야지, 아무렇게나 땅 위에 방치해 놓아서야 되겠느냐"고 말했다.
주변 정토암 암자 한쪽에도 이와 같은 고적비가 서 있다. 일성 스님은 "25년 전 정토암에 들어왔을 때부터 봐 온 비석이다. 조선총독부라는 글귀가 맘에 걸려 뽑으려고 했지만 관련기관 때문에 그러지 못했다"며 "우리나라 사적비와 조선총독부의 고적비가 함께 있는 것을 보면 여전히 영토분쟁을 하고 있는게 아닌가 하는 착각이 든다"고 말했다.
◆일제가 끊어버린 민족의 정기
신라 궁성 안의 연못이었던 안압지는 어떨까. 임해전 북쪽 2m 뒤를 뚫고 지나가는 동해남부선이 눈에 들어왔다. 일제는 이곳에 나무를 심는 대신 철길을 냈다.
역술인 김종율 씨는 "평안을 유지하기 위해서는 집 뒤에 나무를 심어 수벽(樹壁)을 만들어야 하는데, 일제는 민족의 평안을 깨트리려고 불(火)을 상징하는 기차를 다니게 했다"며 안압지 주변의 철길을 풍수학적으로 풀이했다. 안압지에서 불국사 방면에 위치한 사천왕사지 역시 금당지와 강당지 사이를 관통하는 철도를 냈다. 동해남부선은 1918년 경주와 포항 구간이 완공됐고 동해안 수산물과 자원을 일본으로 본격 수송하기 위해 1935년 부산까지 연장됐다. 국토해양부는 올해 철도를 걷기로 계획을 세웠지만, 경주~울산 선로 및 역사부지 예산 확보 등의 문제로 답보 상태다.
경주 수도산 정상에 있는 김유신 장군릉도 예외는 아니다. 장군릉 20여m 아래 중앙선 철로를 지나는 터널이 뚫려 있는데, 이 역시 일제가 우리의 지기를 끊으려고 만든 철도다. 부자(父子)지간을 도로로 갈라놓은 곳도 있다. 바로 무열왕릉인데, 경주 터미널에서 건천 가는 길에 있다. 무열왕릉에서 도로 건너 보이는 능이 있는데 바로 둘째 아들인 김인문 능이다. 이들은 죽어서 나란히 이곳에 묻혔는데, 일제가 50여m가량 되는 도로를 만들어 부자간의 사이를 갈라놓았다. 풍수적인 이유에서다.
◆열강을 위한 일제의 또 다른 풍수침략
천마총 주변의 서봉총은 일제가 열강(列强)들에게 잘보이기 위해 손을 댄 곳이다. 일제는 이곳을 스웨덴을 일컫는 '서전총'(瑞典塚)이라고 부르려 했으나 당시 스웨덴 왕세자 구스타프가 이곳에서 나온 봉황 문양의 왕관 이름을 따라고 해 '서전'의 '서'와 '봉황'(鳳凰)의 '봉'을 빌려 '서봉총'(瑞鳳塚)이 됐다고 한다. 일제는 우리나라의 유물을 훔치려 한 것도 모자라 이름마저도 열강들에 잘보이려고 제멋대로 바꾸려 했다.
서봉총의 아픔은 경주문화원(옛 경주박물관)으로 이어진다. 이곳에는 구스타프와 일본 왕세자가 심은 전나무 두 그루가 나란히 자리하고 있는데 김윤근 신라동인회 회장은 "지붕보다 나무가 높으면 기운이 좋지 못한데, 이곳 나무는 하늘을 뒤덮고 있는 형국이다. 나무를 볼 때마다 수탈의 역사가 아직 살아 꿈틀거리고 있는 듯해 서늘하다"고 말했다. 나무는 일제의 또 다른 풍수침략의 하나라는 주장이 거세, 2004년 몸통이 절반가량 잘려나갔다. 여전히 뽑아내자는 주장이 강하게 일고 있다.
박승혁기자 psh@msnet.co.kr
신동우기자 sdw@msnet.co.rk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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