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신문

"차가운 현실 한계성 실감"…김영준 변호사

전관예우 배제 1호, 1년에 1억 까먹을 작정하고 버텨

김영준(47'사진) 변호사는 '전관예우 방지를 위한 법' 개정 후 전국 1호 퇴직 판사다. 이 때문에 퇴직 전 1년 내 그가 근무했던 대구지법과 대구서부지원 사건을 맡을 수 없었다. 전관예우 혜택이 실제로 있든 없든 대구에서 사건을 맡지 못한다는 자체만으로도 변호사로서 첫발을 내디뎌야 하는 그에겐 잔인한 형벌이었다. 그리고 족쇄(?)가 풀린 지 두 달. 그동안 어떻게 지냈는지 궁금했다.

퇴임 당시 '전국 1호'라는 명패 덕분에 한때 유명세를 탔지만 현실은 차가웠다. 부장판사로 퇴임했건만 어떻게든 1년 동안 버텨 살아남는 게 최대 목표였다. '1년간 1억원 까먹을' 작정까지 했다.

무장해제 당한 채 법원 밖으로 내던져진 그날의 막연함과 황량함은 지금도 잊을 수 없다. 사건조차 없으니 불안감, 온갖 생각에 정신적 고통이 이만저만 아니었다.

그는 "'다시 들어갈까'하는 후회를 안 했다면 거짓말"이라며 "사표 강행 직전 '1년이 생각보다 길고 1년 후 보장도 없다. 다시 잘 생각해보라'는 선배 법관들의 조언이 뼈에 사무치게 다가왔었다"고 털어놨다.

개인 사무실 개소, 법무법인 합류, 탈(脫) 대구 등 선택을 놓고 많은 고민을 했다. 법무사처럼 1년 동안 '소장대행만이라도 해볼까'도 생각했었다. 결국 용기를 내 변호사 사무실을 개원했지만 결과는 '역시나'였다. 상담만 할 뿐 맡을 사건이 없었다. 소위 말하는 '새끼(고용) 변호사'를 둘 수도 있었지만 양심상 도저히 그럴 수 없었다.

그는 이렇게 저렇게 1년을 버텼다. 아니 정확히 말하면 9개월이다. 올 2월 법무법인 중원에 합류했기 때문이다.

개업 당시 과감히 접었던 법무법인에 뒤늦게 들어간 가장 큰 이유는 '혼자서는 도저히 힘들어 더 못 살겠다'는 게 솔직하고 현실적인 이유다.

김 변호사는 "개인 사무실의 한계를 느꼈다. 20, 30년 변호사 생활을 해야 하기에 길게 생각했다. 어차피 1년이 지나면 법인을 선택할 생각이었던 만큼 몇 달 일찍 들어가기로 결정했다"며 "실제 대구 법조를 지키기 위해선 법인이 최선의 대책이라고 생각해왔었다. 대구 법조계는 법인이 많이 만들어져 법인 문화로 바뀌어야 살아남는다는 신념을 가지고 있었다"고 말했다.

그리고 드디어 손꼽아 기다리던 그날이 왔다. 해방일, 5월 23일. 1년이 지났을 뿐인데 10년이 지난 것 같았다. 자신감이 생겼다. 이제 '변호사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상담이 들어오면 '어디 사건' 인지부터 물어보며 스스로 위축되지 않아도 되기 때문이다. 김 변호사는 "자유인이 된 기분이다. 족쇄가 풀린 느낌"이라고 했다. 그리고 한 마디 덧붙였다. "전관예우는 '잘 봐줘서'가 아니라 '잘 알기 때문'이 아닐까. 판사를 해봤기 때문에 판사가 어떤 고민을 하는지 잘 알고, 그래서 더 잘 어필할 수 있으니까"라고.

이호준기자 hoper@msnet.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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