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극의 여러 형식 혹은 사조라고 부르는 것들 중에는 '부조리극'과 함께 일반인들에게는 익숙하지 않은 '서사극'이라는 것이 있다. 사전적 의미의 서사극을 정의하면 '역사적 사실이나 전설 따위를 사건의 순서대로 다루는 극'이라고 할 수 있다.
여기서 말하는 '서사'의 뜻은 '서사시'라고 하는 것에서 의미를 찾아볼 수 있다. 본래 서사시는 영웅의 행위를 중심으로 역사적 사건을 그린 시이다. 그래서 흔히 영웅 서사시라고 부르는데 '일리아드'와 '오디세이'가 대표적인 작품들이다.
서사극은 이야기를 감성적이지 않게 객관적이면서 역사적으로 드러내는 서사의 특성을 시가 아닌 극에 담은 방식이다. 독일의 유명한 극작가이자 연출가인 베르톨트 브레히트(Bertolt Brecht)가 1920년대에 정치적 문제를 다루기 위해 주장한 이 연극이론은 연극의 예술적 기능보다는 교육적, 사회 비판적 기능을 중요시한다.
일반적으로 우리가 보는 연극이 무대 위에서 펼쳐지는 배우들의 연기와 극적 상황에 관객이 몰입하며 동화되는 것이라면, 서사극은 관객이 무대 위의 극적 상황에 일정한 거리를 두게 하는 연극이다.
즉 서사극은 기존의 사실주의를 바탕으로 한 수많은 연극과 달리 관객의 감정이 작품에 동화되는 것을 막고 감정을 이화시켜서 객관적이고 비판적인 시각으로 이야기를 지켜보게 만드는 것이다. 이를 통해 관객은 무대 위에서 펼쳐지는 이야기를 좀 더 깊이 있게 생각하고 냉정하게 바라보게 한다. 이러한 목표를 달성하기 위해서 서사극에서는 '소외효과'가 사용된다. 관객이 보는 것은 현실이 아니라 연극이므로 환상에 빠지지 말 것을 끊임없이 인식하게 하며 무대 위의 상황에 동화되지 않게 소외시키는 것이다.
사실주의 연극은 관객들을 무대 위의 상황에 끌어들이는 작품이기 때문에 무대 위의 각종 장치나 배우들의 연기는 철저히 관객들을 작품에 동화시키는 요소를 지니고 있다. 하지만 서사극은 그와 반대로 관객을 철저히 이화시켜야 하기 때문에 사실주의적인 요소를 철저히 배제하고 있다. 오히려 서사극의 특징을 잘 드러내는 새로운 요소들이 하나씩 생겨나 자리 잡아가기 시작했다.
대표적인 서사극의 특징으로는 조명을 드러나게 해 관객이 무대 위의 상황은 현실이 아닌 공연임을 인식하게 하거나, 자막을 사용하기도 하고 배우들의 춤과 노래를 활용하기도 한다.
또한 프롤로그나 에필로그를 활용하여 메시지를 직설적으로 전하기도 하고 플래카드, 슬라이드, 동시 무대 등 지금 보고 있는 것이 연극이라는 것을 잊지 않게 수많은 장치를 사용하고 해설자를 통하여 연극 내용을 구체적으로 설명하며 메시지를 제시하기도 한다. 사실 이런 서사극의 특징적 요소들이 오늘날의 연극에서는 그리 낯설지 않다. 많은 관객의 사랑을 받고 있는 뮤지컬의 특징들은 어쩌면 서사극의 특징과 꽤 많이 닮아있기 때문이다.
요즘은 특정 연극 형식이라고 콕 찍어 말할 수 있는 공연은 드물다. 어느 연극이나 대부분 여러 연극 형식들이 한데 뒤섞인 작품들이 주를 이루고 있다. 물론 그럼에도 불구하고 서사극의 특징들을 많이 사용한 작품 혹은 그런 특징을 지니고 있는 작품에 대해서는 서사극적 작품이라거나 서사극적 장치나 요소를 지닌 작품이라고 평가한다.
어쨌든 관객들은 서사극을 통해 연극을 새로운 측면에서 바라보며 공부하는 계기가 되었다.
서사극이 생겨나기 전의 관객이 연극은 보여주는 것만을 보며 즐기면 그만이라는 지극히 수동적 형태였다면, 서사극이 생겨난 후의 관객은 공연의 내용을 보며 작품에서 제시하는 사회적 문제에 대한 해결점을 찾기 위해 객관적으로 고민해 보는 등 능동적 형태로 변하게 만들었다. 이는 서사극이 지닌 교육적 특징을 잘 보여주는 것이다. 앞으로는 연극을 볼 때 어떤 서사극적 요소가 숨어 있는지 찾아본다면 연극의 또 다른 맛을 느낄 수 있을 것이다.
안희철 극작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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