KBS 1TV '역사스페셜-8'15기획, 임시정부 초대 외무총장 박용만 '편이 16일 오후 10시 방송된다.
대한민국 임시정부 초대 외무총장, '박용만'이 사망 후 67년 만에야 독립유공훈장에 추서됐다. 1909년, 미국 네브라스카주. 박용만은 이곳에서 해외 최초의 무관학교인 '소년병학교'를 세웠다. 무장투쟁론자였던 박용만은 소년병학교를 통해 장차 만주와 러시아에서 독립전쟁을 지휘할 군관을 양성하려는 목표를 가지고 있었다. 또 박용만은 하와이에 1914년 근대적 군사조직인 '대조선국민군단'을 창설했다.
1919년, 대한민국 임시정부는 박용만을 초대 외무총장으로 선임한다. 하지만 외교 중심 노선으로는 독립운동에 한계가 있다고 느낀 무장투쟁론자, 박용만은 임시정부에 참여하지 않는다. 그는 대신 이동휘, 문창범 등과 함께 만주와 러시아 지역의 독립군을 조직하는데 박차를 가한다.
박용만은 또한 중국의 군벌과도 연대를 도모한다. 미국 정보부대 비밀 보고서에 따르면, 박용만은 1920년대에 북경을 장악한 군벌 오패부와 합작해 만주지방에 새로운 조선인 독립 국가를 건설하겠다는 원대한 비밀 계획을 세우고 있었다.
그러나 1928년, 박용만은 베이징에서 의열단 단원으로 알려진 이해명에 의해 암살되었다. 재판 과정에서 이해명은 박용만을 변절자라고 거듭 주장한다. 하지만 일본 방위성 방위연구소에 보관된 박용만이 죽기 1년 전 작성된 일제 비밀 보고서에 따르면 박용만은 여전히 독립운동의 우두머리로 지칭되고 있었다. 제작진은 또 박용만이 죽기 넉달 전에 쓰인 중국측 비밀 문건을 통해 그가 중국 북방의 군벌세력인 염석산 부대와 결탁해 무장독립전쟁을 벌이려는 계획을 세웠던 사실도 알아냈다.
전창훈기자 apolonj@msnet.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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