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신문

[더위를 즐기는 사람들] 여름 속 겨울 아이스링크

들어가자마자 시원…10분만 있으면 "어, 추워"

더위 속에 얼음세상이 펼쳐진 빙상장. 얼음 위를 시원하게 가르는 스케이트 칼날 소리에 무더위를 실어 날려버린다. 뒤뚱뒤뚱, 아빠나 강사 손을 붙잡아야만 한 걸음을 뗄 수 있지만 이만한 피서지도 또 없다. 사람들의 표정에서도 무더위는 순식간에 사라진다.

◆대구실내빙상장

대구시 북구 고성동 대구실내빙상장. 바깥에선 가만히 앉아만 있어도 땀이 줄줄 흐르지만 빙상장에 들어서자마자 등줄기에서 흐르는 땀이 금세 식어 버린다.

30℃를 웃도는 외부와 달리 실내온도는 3, 4도 안팎. 반소매를 계속 입고 있으면 추위가 느껴질 정도여서 '여름 속의 겨울' 같은 착각이 들 정도다. 그래서 대부분이 긴소매에 긴 바지를 입고 스케이트를 타고 있다. 한 어머니는 긴 옷을 입지 않으려는 아이를 불러내 옷을 입혔다. "몸이 으스스할 정도로 추워서 혹시 감기 걸릴까봐서요."

빙상장은 아이들의 놀이터일 뿐만 아니라 친구끼리, 연인끼리 만나는 장소로도 이용되고 있다. 친구들과 함께 온 이지연(19) 양은 "친구들과 피서 가는 것을 부모님이 허락하지 않아 의논 끝에 이곳을 찾았는데, 더위를 피하기엔 빙상장이 딱"이라며 "밖에 놀러 가면 햇볕이 뜨거워서 피부도 타고 몸에도 안 좋은데, 실내빙상장은 시원하고 좋아 수다 떨기에도 그만이다"고 했다.

김찬욱(23)·이현진(21) 씨도 "데이트하기에도 좋은 장소인 것 같다"며 "손잡고 스케이트를 타다가 지치면 쉬면서 커피를 마시는데, 데이트 비용도 적게 들어 좋다"고 했다.

30년을 빙상장과 함께해 온 피겨스케이트 지도자 김현정(38) 씨에게 여름철 빙상장은 이제 일상이 됐다. 선수 시절에는 하계 합숙 때문에, 지도자가 된 후로는 여름특강 때문에 빙상장에서 산다. "이곳에 있으면 바깥이 여름인지 겨울인지 잘 몰라요. 한여름에도 제 몸은 항상 냉기가 느껴질 정도이니까요. 냉기가 피부에는 좋은 것 같아요. 나이에 비해 젊은 것 같지 않아요"라며 싱긋 웃어보였다. 그러면서 여름철에 차 안에 파카가 걸려 있는 것을 보고 이상하게 여기는 사람이 많다고 했다.

◆이랜드 아이스링크

이슬이 송골송골 맺힌 유리문을 열고 아이스링크로 들어서자 찬 기운이 훅 덮쳐온다. 냉동실이 따로 없다.

11일 오후 이랜드 타워 2층에 있는 아이스링크에는 혹서기를 맞아 아버지와 아들, 친구나 연인 관계로 보이는 80여 명이 신나게 얼음을 지치고 있었다.

김채웅(10) 군은 "올해 처음 여름방학 동안 스케이트 강습을 받고 있는데, 선택을 잘한 것 같다. 우선 시원해서 좋고, 또 재미도 있다. 얼음을 지치고 냉기를 몸 가득 안고 집에 가면 공부도 잘된다. 그래서 부모님께 피서 가자고 조르지 않았다"고 말했다.

온 가족을 데리고 온 김장수(43·대구 달서구 상인동) 씨는 "피서를 가지 못해 아내와 딸에게 미안해 이곳을 찾았다"며 "어릴 적 스케이트 타던 추억이 생각나기도 하고, 무엇보다 너무 시원해 이곳에 오면 피서 갈 필요가 없는 것 같다"며 가족들을 쳐다보며 싱긋 웃었다.

조익환(32) 정빙사는 올해처럼 더울 때면 친구들로부터 부러움을 한몸에 받는다고 했다. 시원한 곳에서 근무하고 있기 때문이다. 조 정빙사가 하는 일은 바닥의 깨진 얼음가루를 청소하고 물을 뿌려 다시 얼려 표면을 매끄럽게 하는 일이다. 그는"바깥에는 30도를 오르내리는 불볕더위지만 이곳은 시원하다 못해 춥다. 그래서 일을 하는 동안은 두툼한 점퍼를 입고 일한다"면서도 "나야 30분 정도 일해 괜찮지만 오랜 시간 일하는 동료 가운데는 코감기를 달고 사는 이들도 있다"고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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