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달 금융권에 '핵폭탄'이 발견됐다. 공정거래위원회의 양도성예금증서(CD) 금리 담합 의혹이 그것이다. 문제가 해결되지 않을 경우 국내 금융 시장은 물론 국가 신인도까지 치명타를 입을 수 있다는 점에서 심각한 상황이다. 하지만 당국의 조사는 좀처럼 진도를 나가지 못하고 있고 금융권의 반발은 갈수록 심해지는 등 문제의 심각성을 제대로 인지 못하는 분위기다.
◆지지부진한 조사
지난달 17일 공정위가 전격적으로 조사에 착수하자 CD금리 담합 여부는 금방 결론날 것처럼 보였다. 국내외 장'단기 금리의 하락에도 CD금리가 지난 4월 9일부터 석 달 동안 연 3.54%에서 고정됐다는 확실한 증거가 있고, 일부 금융회사가 담합 사실을 공정위에 자백했다는 소문까지 돌았기 때문이다.
하지만 금융회사들이 조직적으로 반발하면서 변화가 생겼다. 사태를 진정시키기 위해 금융사들은 전방위적 로비에 들어갔고 정부와 금융감독 당국에 자신들의 입장을 설득시키며 시간을 벌고 있다.
금융위 등 금융당국도 공정위 조사에 걸림돌이 됐다. CD금리 움직임이 수상하다는 것을 인지하던 금융당국은 공정위 조사가 시작되자 "협의도 없이 진행한다"며 불쾌감을 내비친 것이다.
이에 따라 공정위는 본격적인 조사가 시작된 지 한 달이 지났지만 시중은행 19곳의 현장 조사를 통해 확보한 자료를 분석만 하고 있는 상태이고 추가 현장 조사나 금융기관 관계자 소환 조사는 벌이지 못하는 분위기다. 통상적으로 공정위는 현장 조사 자료 분석을 마친 뒤 필요에 따라 추가 조사를 실시한다. 이어 반론 등을 듣기 위해 관련자를 소환한다. 이 같은 절차를 진행하지 않았다는 것은 그만큼 조사 진척이 느리다는 의미로 해석할 수 있는 부분이다. 그래서 이번 조사 기간이 길어질수록 '용두사미'(龍頭蛇尾)에 그칠 가능성이 높다고 점치는 이들이 많아졌다. 담합 사건은 조사가 길어질수록 증거인멸 가능성도 그만큼 높아지기 때문에 속전속결로 끝내는 것이 무엇보다 중요하기 때문이다.
◆핵폭탄 터지나?
CD 금리 담합 의혹에 대한 조사는 '메가톤급' 후폭풍을 몰고 올 전망이다. 당장 일부 시민단체는 금리 담합으로 대출자들이 막대한 피해를 보았다며 은행을 상대로 대형 집단소송을 준비하고 있어 주식시장이 요동칠 기세다. 이보다 큰 문제는 의혹의 실체가 밝혀지지 않으면 국제 금융시장에서 한국 금융시스템의 신인도 하락도 불가피해 국내 경제에 치명타를 안겨 줄 수 있다는 점이다.
공정위 현장조사가 시작되기 직전인 지난달 중순 코스피시장에서 은행업종 주가는 무려 4% 가까이 폭락하며 전체에서 가장 큰 하락 폭을 보였다. 특히 금융업에 대한 외국인투자가들의 팔자 움직임이 두드러지는 등 '큰 손'들의 이탈현상이 감지됐다. 공정위 조사의 여파로 CD 금리가 낮아지면 이와 연동한 기업 및 가계대출 금리도 떨어져 은행의 순이자 마진이 감소하게 된다. 이는 곧 은행의 실적 감소로 이어질 수 있다는 예상에 따라 '큰 손'들의 손절매가 이뤄진 것이다. 공정위의 조사 결과에 따라 은행들이 막대한 과징금을 부과받게 되거나 그동안 과도한 이자를 부담했다는 소비자들의 집단소송에 휘말리면 상황이 더 나빠질 가능성도 있다.
더 큰 문제는 한국의 금융 대외신인도에 타격을 줄 수도 있다는 점이다. 담합 의혹이 지속되면 국제 금융시장에서 한국 금융회사의 채권에 대한 기피 현상이 생길 수 있고 대한민국 국채 매입자가 줄어들게 된다. 국채의 성격상 수요가 줄어들면 채권 가격이 떨어지고 채권 금리는 상승한다. 채권 금리 상승은 국내 금융기관의 조달 금리가 그만큼 올라간다는 의미다. 집단소송 리스크가 해결되지 않으면 금융회사의 신용등급에도 직접적인 영향을 줄 수 있다.
박상전기자 mikypark@msnet.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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