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신문

[교단일기] 그래, 너희도 잘 있었니?

겨울 출근길, 차가운 공기를 마시며 버스에 몸을 실었다. 출근하는 시간에는 항상 고등학생들이 많다. 내가 고등학생일 때도 했던 0교시와 야간 자율학습을 저 아이들도 하고 있을 거라는 생각에 기분도 씁쓸했다. 교복을 입고 있는 그 아이들의 모습을 보고 옛 생각에 잠겨 있을 무렵 나의 생각을 깨트리는 카랑카랑한 목소리. "선생님!"

버스의 온갖 시선들이 나를 향해 있었다. 일부러 대학생처럼 보이는 복장으로 버스에 올랐는데, 누가 이렇게 날 부르는 것인지! 그 교복을 입은 고등학생 중 한 명이 나를 보고 환하게 웃고 있었다. '어…, 저 아이는 슬기다! 6년 전 우리 반이었던 아이인데. 달리기를 잘하고, 남학생들을 휘어잡던 그 슬기! 벌써 고등학생이 되었구나!'

"와! 선생님, 저 기억하시겠어요? 선생님 학교 어디세요? 아기는 잘 커요? 휴대폰 번호 바뀌셨죠? 진짜 보고 싶었어요!"

주위에 그 당시 옆 반 아이들도 같은 고등학교였던지, 함께 모여들면서 속사포처럼 여러 가지 질문을 한다. 뜻은 한 가지, 반갑다는 말이다.

'그래, 당연히 기억하지! 슬기잖아. 휴대폰 번호가 중간에 한 번 바뀌었어. 너희도 잘 있지? 고등학생이라 힘들겠다. 다들 너무 예뻐졌네. 한 번 놀러 와.' 이 말을 하고 싶었는데, 버스 한 정거장을 놔두고 발견한 터라 더 많은 이야기를 나눌 수도 없었고, 단순히 내가 할 수 있었던 말은 고작 한마디. "그래, 잘 지내니?"

이 말이 끝남과 동시에 버스 문은 열렸고, 그렇게 아이들은 우르르 내려가 버렸다. 버스 밖에서도 한참을 손 흔드는 아이들. 지금 보니 피곤에 찌든 고등학생이 아니라, 너무 예쁜 아이들이었다.

맞다. 그때 아이들과 함께했던 때는 사건'사고도 참 많았다. 하루에도 몇 번씩 분쟁이 일어나 그때마다 아이들 사이에서 분쟁위원회를 열었던 일, 겨울에 교실 문을 꼭꼭 닫아두고 삼겹살 파티를 하다 냄새가 안 빠져서 추운 겨울에도 창문을 열어두고 환기를 계속시키면서 수업을 해야 했던 일, 매달 생일파티를 하면서 한 바퀴씩 아이들을 업고 돌아주다 넘어지면서 큰 상처가 생겼던 일, 수업시간마다 이야기를 들려주다 정작 12월에는 진도 나가기가 엄청 힘들었던 일, 헤어지면서 서로 엉엉 울다 1년 뒤에 오면 파티를 한다 했더니 대부분 아이들이 찾아와 그해 내가 맡은 2학년 아이들과 함께 앉아 파티를 했던 일….

그때는 힘도 참 많이 들었는데, 신기하게도 그 힘들었던 일이 다 좋은 추억으로 남게 되는 것은 아마도 나를 100% 이상 신뢰하고 사랑해 주는 제자들이 있기 때문이 아닐까? 교사는 그런 것 같다. 아이들과는 정작 1년만 함께하지만, 나를 스쳐 지나간 아이들이 항상 잘되기를 바라는 마음을 계속 먹게 되고 그 또래 아이들을 보면 항상 내 제자들이 생각난다.

올해 아이들도 곧 중학생, 고등학생이 되겠지. 슬기처럼 길을 가다 우연찮게 만나게 되겠지. 나의 제자들은 날 기억하지 않아도 좋고, 시험에서 몇 개를 더 틀려도 괜찮다. 하지만 거짓말하지 않고 정직하며, 남을 배려할 수 있는 사람으로 당당하게 살아가 주면 가장 고맙겠다.

서현정 매곡초교 교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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