맹위를 떨치던 무더위의 기세가 한풀 꺾였다. 아침저녁으로 선선한 바람이 불어 그나마 숨통이 트이는 느낌이다. 하지만 한낮의 더위는 아직도 살아 있다. 늦더위가 기승을 부리는 여름의 끝자락, 늦은 피서를 계획하고 있는 사람들에게 충북 괴산의 화양계곡을 추천한다. 울창한 숲 사이로 불어오는 청량한 바람과 하얀 반석 위를 흐르는 맑은 계류가 더위를 달래기에 안성맞춤이다. 또 지난해 국립공원관리공단이 선정하는 '베스트 경관자원 100선'에 뽑힐 만큼 수려한 풍광을 자랑할 뿐 아니라 우암 송시열의 유적지도 있어 역사의 숨결도 느낄 수 있다.
◆청량한 바람과 맑은 물 '더위 싹~'
속리산국립공원에 있는 화양계곡은 화양구곡으로도 불린다. 노년을 이곳에서 보내며 주자학을 연구한 조선 후기의 대학자 우암 송시열이 중국의 무이구곡에 버금갈 만큼 아름다운 아홉 절경을 지녔다고 해서 화양구곡이라 이름을 붙였기 때문이다.
화양계곡을 즐기는 방법은 크게 두 가지다. 하나는 속리산에서 발원한 옥계에 몸을 담그고 더위를 식히는 것이다. 물이 맑아 바닥이 훤히 드러나는 까닭에 눈으로 수심을 재기가 쉽지 않다. 무릎까지만 올 것 같은 곳도 들어가 보면 허리가 잠길 정도로 수심이 깊다.
또 다른 방법은 화양계곡의 자랑거리인 아홉 절경을 찾아 계곡을 천천히 거니는 것이다. 걷다가 지치면 어디에서든 물에 들어가 더운 몸을 달랠 수도 있다. 화양구곡은 계곡을 따라 길게 늘어서 있다. 기암절벽이 하늘을 받치고 있는 듯한 형상을 띤 제1곡인 경천벽은 주차장 아래 쪽에 있어 코스 상 여덟 절경을 감상한 뒤 귀가할 때 보는 것이 좋다.
◆제1곡부터 9곡까지 절경 퍼레이드
주차장에 차를 세운 뒤 울창한 숲으로 덮인 넓은 포장도로를 따라 조금 올라가면 화양계곡의 수호신인 느티나무가 모습을 드러낸다. 아름드리 느티나무들이 도열해 있는 길을 지나 화양2교를 건너면 제2곡인 운영담이 나타난다. 맑은 연못에 구름 그림자가 비친다는 뜻을 가진 운영담은 이름 그대로 계곡이 아니라 커다란 연못 같다. 속리산 골짜기를 거침 없이 흘러 내려온 계곡물도 운영담에서는 잠시 쉬어가는 까닭에 물은 잔잔하기 그지없다. 식당 맞은편으로 난 계단을 따라 아래로 내려가면 고운 모래와 너럭바위, 나무그늘이 있어 쉬기 좋을 뿐 아니라 물살도 없어 물놀이 즐기기에도 제격이다.
운영담 위에는 송시열이 효종의 승하를 슬퍼하며 새벽마다 엎드려 통곡했다는 이야기가 전해 오는 커다란 바위인 제3곡 읍궁암과 송시열 유적지, 제4곡인 금사담과 암서재가 줄지어 서 있다. 금사담은 계곡 속 모래알들이 금가루를 뿌려 놓은 듯 반짝인다고 해서 붙여진 이름. 금사담에는 송시열이 학문을 닦았던 정자인 암서재가 있다. .
금사담 위 화양3교를 지나면 제5곡인 첨성대를 볼 수 있다. 첨성대는 별자리를 관측할 수 있을 만큼 바위가 높게 쌓여 있어 붙여진 이름이다. 다리 뒤편 절벽 위에 커다란 바위들이 아슬아슬하게 걸려 있는 모습이 인상적이다. 첨성대에서 50여m 떨어진 곳에는 구름을 잡을 수 있을 만큼 커다란 바위라는 뜻을 가진 제6곡인 능운대가 있다. 능운대는 구름으로 물든 절이라는 아름다운 이름을 가진 절 채운사로 가는 갈림길에 서 있다. 채운사는 고려시대 세워진 전통 있는 사찰이지만 지금은 대웅전과 삼성각 등 당우 4채만 거느린 채 겨우 명맥만 유지하고 있다.
능운대 휴게소에서 한숨 돌린 뒤 길을 다시 재촉하면 길은 좁아지고 호젓해진다. 등산객들만 오가는 한적한 길을 따라 올라가면 꿈틀거리는 용의 모습을 닮은 제7곡인 와룡암과 학이 바위 위에 둥지를 틀고 알을 낳았다는 제8곡인 학소대가 차례로 나타난다. 학소대 위에는 화양계곡의 마지막 절경인 제9곡 파천이 자리 잡고 있다. 계곡을 가득 메운 넓은 바위들이 용의 비늘을 꿰어 놓은 것처럼 보인다고 해서 파천이라는 이름을 갖게 된 곳으로 신선들이 술잔을 나누었다는 전설이 전해 온다.
화양계곡은 아름답다. 특히 분위기는 고고한 느낌으로 다가온다. 가파르게 솟아 오른 기암과 하얀 모래를 뭉쳐 만든 것 같이 편평한 바위, 그 사이를 헤집고 흐르는 수정 같은 맑은 물이 한폭의 선경을 연출한다. 세속을 떠난 속리(俗離)산의 이미지와 잘 어울리는 화양계곡은 세상 일을 잠시 잊을 수 있는 곳이다.
◆선유동계곡'법주사 '인근 명소들'
화양계곡 인근에는 명소들이 많다. 대표적인 것이 선유동계곡과 법주사, 정이품송이다. 화양계곡이 우암 송시열의 흔적이 서린 곳이라면 화양계곡과 물길을 맞대고 있는 선유동계곡에는 퇴계 이황의 숨결이 서려 있다. 이황은 충북 괴산군 송면리 송정부락(당시 칠송정)에 있는 함평 이씨댁을 찾아갔다가 선유동계곡의 경치에 반해 아홉달 동안 머물렀다고 한다. 선유동계곡에도 화양구곡에 버금가는 선유구곡이 있다. 제1곡 선유동문, 제2곡 경천벽, 제3곡 학소대, 제4곡 연단로, 제5곡 와룡폭포, 제6곡 난가대, 제7곡 구암, 제8곡 기국암, 제9곡 은선암 등 선유구곡은 이황 선생이 이름을 붙였다.
법주사는 신라 진흥왕 14년(553년) 의신이 창건했다. 시야가 탁 트일 만큼 널찍한 법주사 경내에는 국보와 보물 등 유적이 즐비하다. 평소 보기 힘든 유적을 하나 하나 찾아 보는 것이 법주사 탐방의 재미다. 국가지정문화재로는 국보 제5호인 법주사 쌍사자석등을 비롯해 국보 제64호인 법주사 석연지, 보물 제15호인 법주사 사천왕석등, 보물 제216호인 법주사 마애여래의상, 보물 제848호인 신법천문도병풍, 보물 제1259호인 법주사 괘불탱 등이 있다. 또 높이가 33m나 되는 거대 불상 청동미륵대불도 법주사를 대표하는 명물이다.
법주사 길목에서 만나는 정이품송(천연기념물 제103호)도 빼놓을 수 없는 볼거리다. 1464년 세조가 법주사로 행차할 때 소나무가 스스로 가지를 들어 올려 어가를 무사히 통과시키자 세조가 정2품의 벼슬을 내렸다는 이야기가 전해오고 있다.
◆가는 길
대구에서 화양계곡으로 가려면 경부고속도로 김천분기점 충주 방면~중부내륙고속도로 낙동분기점 청원'남상주 방면~청원상주고속도로 화서IC~선산'상주 방면~괴산'화북 방면으로 달리다 증평'화양계곡 이정표를 따라가면 된다. 화양계곡에서 법주사로 가려면 화양청소년수련원 방면(좌회전)~보은'속리산 이정표를 따라 가다 보은과 속리산 갈림길에서 속리산'법주사 방면으로 길을 잡으면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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