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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자위원 칼럼] 시인은 기침을 해야겠지만…

통통배든 유람선이든 가리지 않고 배를 타면 한두 번 쯤은 꼭 보게 되는 장면이 있다. 일명 '타이타닉 포즈'. 하지만 내 기억에 아직도 선명한 그 영화의 한 장면은 주인공이 침을 뱉는 모습이다. 물론 이는 당시 상류사회의 위선과 허위의식에 침을 뱉자는 것이고, 침을 뱉는다는 것은 '권위에 맞서다'의 상징적 행위에 불과하며 감독의 의도 또한 그것이었음을 충분히 알지만 그럼에도 두 주인공이 침을 뱉어대던 장면은 온전히 불쾌함으로만 남았다. 불합리하고 억압적인 권위에 맞서는 거, 물론 좋다. 개인의 행복과 자유, 그것도 두말할 나위 없이 좋다. 그렇다고 침을? 바다는 어쩌라고? 바다를 보는 다른 사람들은?

'바닥에 침을 뱉지 마세요. 음식을 버리지 마세요.' 등의 문구가 적힌 식당이 유럽에는 없다고 한다. 최근 방한한 한 철학자에 따르면 이는 상식이고 당연한 것이기 때문에 강요받을 이유가 없기 때문이다. 윤리적 표준으로 한 사회가 이미 받아들인 것들은 허용이냐 금지냐를 명시적으로 드러낼 필요가 없고 그에 대한 언급조차 불필요하다는 것이다.

예를 들어 누군가가 "강간을 하고 싶어"라고 말했을 때 "정신 나갔어?"라며 구성원 모두가 그를 미친 사람으로 취급하는 것처럼 정상적인 사회의 윤리적 수준이란 그런 것이어야 한다고 그는 말한다. 지금의 문명사회에 강간이 좋은 것인가 나쁜 것인가를 논하는 일은 물론 없을 것이다. 다만, 강간은 역겹고 정신 나간 짓이라고 여겨지는 사회와 "오, 강간은 안돼요"라고 순진하게 말만 하는 사회가 있을 뿐이다.

살인, 강간 등을 저지르고 그에 대해 처벌을 받는다는 것에는 누구도 의문을 제기하지 않는다. 하지만 음주운전을 했다거나, 뇌물을 주고받았다거나 등의 행위로 처벌을 받게 되면, "왜 나만?"이라며 자신의 불운(?)을 탓하는 것이 아직은 우리의 현실이다. 다시 말해 후자의 경우는 "오, 안돼요"라며 손을 내젓고는 있지만 전자의 경우처럼 재론의 여지없이 해서는 안 되는 일로 자동화된 배제가 이루어지진 않는다는 것이다. 부동산 투기, 위장 전입, 논문 표절, 세금 탈루, 병역 기피 등 인사청문회 때마다 같은 레퍼토리가 반복되는 것도 아직은 우리 사회가 이에 대해 "오, 이런 공직자는 안돼요"라며 제스처만 취하고 있기 때문일 것이다. 똑같이 아직 "오, 안돼요" 수준에 머물러 있지만 이것이 음주운전 등과 구별되는 것은 음주운전 등은 그래도 여지없이 처벌을 받지만, 이 경우는 그렇지 않은 경우도 많아서다.

누군가 전동차 안에서 침을 뱉었다. 사과를 요구하던 이가 되레 무차별적으로 휘두르는 칼에 찔리고 말았다. 최근 의정부에서 벌어진 일이다. 이 사건에서 침을 뱉은 행위나 사과를 요구한 행위 자체를 논의 대상으로 삼는 것은 넌센스에 지나지 않을지 모른다. 그렇기는 하나, 만약 우리 사회가 공공장소에서 침을 뱉는 행위를 강간의 경우와 같이 정신 나간 것으로 간주한다면 그 누군가는 위험한 미친 사람임에 틀림없으므로 모두가 조심하고 피했을 것이다.

어느 누구도 방금 자신을 강간한 사람을 붙들고 그 자리에서 사과를 요구하지는 못할 것이므로. 침을 뱉는 거랑 강간하는 거를 어떻게 같이 말하느냐고, 그거야말로 정말 정신 나간 소리라고 할 이도 물론 있을 것이다. 하지만 그런 그 또한 타인의 침으로 얼룩덜룩한 보도와 그렇지 않은 것을 두고 선택을 하라고 하면 분명 후자를 택할 것이다. 그러고 보면 공중도덕, 좀 더 크게 말해 공동의 선이라는 것이 그리 거창하고 무거운 개념만은 아닐 것이다. 한 사회의 윤리적 수준이란 것이 쉽게 바뀔 수 있는 성질의 것이 아니기는 하지만 청문회의 경우만 보더라도 우리는 짧은 기간 내에 "오, 안돼요"라고 이구동성으로 외칠 수 있는 수준까지 올라왔다.

올해는 여러모로 우리 사회의 수준을 가늠해 볼 큰 시험이 있다. 누군가는 나서서 "오, 안돼요"라고 크게 소리쳐야 한다. 시인은 기침을 해야겠지만 이곳에서는 매일신문이 그 소리침을 해주기를 독자의 한 사람으로서 간곡히 바래본다.

김계희/변호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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