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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물의 세계] 항문 땅에 대고 미끄럼 '항문낭' 의심

반려견이 다른 개를 만났을 때 가장 처음으로 하는 인사는 상대의 항문 냄새를 맡는 것이다. 이 냄새로 상대가 나와 친할 수 있는지 아니면 위협이 되는 존재인지를 판단하는 것이다. 개과 동물은 자신들 특유의 항문낭 냄새를 가지고 있다. 그중에서도 항문낭이 가장 발달한 동물은 잘 알려진대로 스컹크가 단연 으뜸이다.

항문낭의 역할은 야생에서 천적으로부터 자신을 방어하기 위한 수단이다. 야생에서는 천적이 사냥을 위해서 발견된 개의 분변 상태를 확인한다. 변의 신선도를 통해서 사냥감인 개의 위치를 판단할 수 있기 때문이다. 변이 마르지 않고 따뜻하면 분명 주변에 먹잇감이 있다고 보고 추적을 한다.

이 같은 판단을 하는 것을 막기 위해 개는 천적이 자기의 변의 상태를 구별하지 못하도록 변을 본 후 항문낭을 통해 고약한 냄새를 뿌려서 변의 상태를 확인하지 못하도록 한다. 하지만 실내에서 생활하는 반려견은 천적이 없다. 이 때문에 항문낭이 점점 퇴화하고 있는 상태다.

어린 반려견이 항문을 땅에 대고 미끄럼을 타는 경우가 있는데, 대부분 보호자들은 변을 보고 재롱을 부리는 것으로 생각한다. 하지만 이런 행동을 보일 경우 빨리 가까운 동물병원에 가서 항문낭의 염증 유무를 확인해야 한다. 염증의 정도가 심하다면 외과적 제거 수술이 필요하다. 항문낭액에 수분이 증발하고 낭속에 끈적한 것이 오래 머물러 있어서 염증이 유발된다.

또한 항문낭 도관이 막힌 경우에는 항문낭이 팽창해서, 변을 볼 때 통증이 생기고 항문에 자극이 된다. 이러한 이유로 개들이 항문을 땅에 대고 썰매를 타는 것과 같은 행동을 보이는 것이다.

이런 행동이 반복될 경우 항문낭이 피부 안쪽에서 터져서 염증을 유발하기도 한다. 심한 경우는 항문낭 자체가 외부로 터지게 된다. 항문낭이 터지면 항문을 제거해야 되고 배액관을 삽입해 안쪽에 염증 산물이 고이지 않고 흐르도록 해야 된다. 이 상황까지 되면 치유기간이 길어지고 고통도 심하게 받을 수밖에 없다.

항문낭 관리는 주기적으로 해야 한다. 손 쉬운 관리를 위해서는 어릴 적에 미리 항문낭 제거 수술을 하거나 아니면 목욕을 한 후 항상 깨끗이 짜주어야 한다. 꾸준한 관리를 통해 큰 수술을 막는 현명한 보호자가 되기를 당부한다.

최동학 대구시수의사회 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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