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신문

우리 일상을 바꿔놓은 창조적 선구자들

누가 우리의 일상을 지배하는가/전성원 지음/인물과 사상사 펴냄

1914년 1월 5일 포드자동차의 창업주 헨리 포드는 '폭탄선언'을 했다. 종업원의 하루 최저임금을 5달러로 인상하고 9시간 노동에서 8시간 노동으로 근무시간을 단축하겠다는 것이었다. 당시 다른 제조업체의 일당인 평균 2.34달러의 두 배가 넘는 고임금이었다. 연말에는 이익 분배금으로 1천만달러를 내놓겠다는 약속까지 했다. 다음날부터 공장 앞은 구직자들로 인산인해를 이뤘고 노동자들은 '마르크스 대신 포드를'을 외쳤다. 이후 3년간 포드자동차는 1억달러 이상의 순이익을 남겼다. 이는 종업원들이 포드자동차를 살 수 있을 정도로 부유해졌다는 뜻이었다.

헨리 포드가 중산층을 확대했다면 월마트를 세운 샘 월튼은 종업원들을 다시 가난뱅이로 만드는 데 큰 역할을 했다. 1960년대 월마트는 '매일 매일 최저가 판매'라는 저가 할인 전략으로 상권을 장악했다. 거대한 물류센터를 세우고 생산업체에서 대량의 물건을 값싸게 구매해 각 매장으로 공급했다. 소비자들은 다양한 물건을 저렴한 가격에 구입할 수 있게 됐지만, 월마트가 들어선 지역은 기존의 재래식 상점이나 다른 중대형 마트가 초토화됐다. 생산업자로부터 싸게 물건을 구입하던 월마트는 생산업자들에게 잔인한 원가 절감을 요구했다. 노동조합은 철저하게 막았고, 종업원들은 최저 임금으로 내몰아 가난에서 벗어날 수 없게 만들었다. 오늘날 한국의 대형마트들의 행태는 월마트의 영업방식을 그대로 빼다 박았다.

'누가 우리의 일상을 지배하는가'는 우리의 일상적인 삶에 깊은 영향을 끼친 무언가를 만들어낸 사람들을 살펴보는 책이다. 헨리 포드에서 마사 스튜어트에 이르기까지 16명의 선구자를 통해 그들이 어떻게 근대화와 세계화에 깊은 영향을 줬으며 그들의 기업이 만들어낸 시스템이 우리의 삶과 노동, 시간의 개념을 어떻게 규정하고 변화시켰느냐를 들여다본다.

헨리 포드의 꿈은 '가격이 저렴해서 중산층이면 다 구입할 수 있는 자동차'를 만드는 것이었다. 이를 위해 포드는 한 가지 모델만 집중적으로 생산해 생산성을 높이고 제품 가격을 최저로 낮췄다. 제작 공정에 따라 꼭 맞는 도구와 기계를 만들고, 작업에 필요한 기계들을 일일이 작업 공정 순서대로 배치해 시계 톱니바퀴처럼 돌아가도록 했다. 덕분에 노동생산성은 50배나 뛰었고, 자동차 가격도 3분의 1 수준으로 떨어졌다. 하지만 노동자들은 엄청난 노동강도에 시달렸다. 포드 자동차는 '출퇴근시간 기록기'를 도입하고 생산라인이 중단되지 않도록 직원들의 휴식시간을 딱 한 번, 15분의 점심시간으로 제한했다. 노동자들은 작업 기계에 앉거나 기댈 수도 없었고, 작업 중에 휘파람을 불거나 말하거나 담배 피우는 것조차 엄격히 금지됐다. 포드의 생산양식은 전 세계로 확산됐고, 자동차 보급은 도로망 건설과 도시의 확장을 가져왔다. 또 조명용 램프의 연료였던 석유를, 오늘날 화석연료의 5분의 1이 자동차 연료로 사용되도록 만들었다. 또 단일 작업장에 노동자가 모이면서 대단위 노동조합의 탄생 배경이 됐다.

미하일 칼라시니코프는 나치 독일로부터 조국 러시아를 구하기 위해 AK-47 소총을 만들었다. 하지만 가볍고 다루기 쉬운데다 저렴하다는 AK 소총의 장점은 반세기 동안 전쟁과 테러 무기로 사용되는 결과를 낳았다. 더구나 18세 미만의 청소년들이 병사로 끌려가는 원인이 됐다. 보잉747기로 유명한 보잉사가 만든 B-29는 1945년 50만 명의 사망자와 102만 명의 사상자를 낸 도쿄 대공습의 주무기였다. 이 밖에도 소니 워크맨으로 개인주의 혁명을 일으킨 모리타 아키오를 비롯해 침묵하는 다수의 마음을 읽은 여론조사의 선구자 조지 갤럽, 20세기 석유 문명을 만든 탐욕과 자선의 야누스 존 D. 록펠러, 화약기업으로 시작해 200년간 세계를 지배해온 듀폰사, 작은 생쥐 하나로 글로벌 미디어 제국을 세운 월트 디즈니, '플레이보이'로 포르노 제국을 건설한 휴 헤프너, 행복한 가정이라는 환상을 판매하는 살림의 여왕 마사 스튜어트 등도 살펴본다.

책은 각 인물의 삶을 출생부터 임종까지 연대기 형식으로 짚어낸다. 하지만 성공담을 전파하는 자기계발서나 개인의 업적에 치중한 위인전과는 다르다. 이들이 생전에 한 일들이 오늘날 우리의 삶에 어떤 영향을 끼쳤느냐에 방점을 찍는다. 저자는 "우리가 자연스럽게 받아들이는 일상의 촘촘한 틀을 만들고 지배하는 시스템을 고민하자는 게 목적"이라고 말한다. 536쪽. 1만8천원.

장성현기자 jacksoul@msnet.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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