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신의 영달을 꾀하려면 최고 권력자에게 충성하는 것이 제일임은 예나 지금이나 마찬가지. 구한말과 일본 식민지 시대 최고 권력은 일본 총독부. 일본의 조선 합병 전략이 노골화하면서 대세를 읽은 이완용과 송병준이 서로 일제에 충성하기 위해 공개 경쟁을 벌였다면 뒤에서 움직이면서도 실익을 챙긴 사람이 조중응(1860~1919)이다. 오히려 그는 앞의 두 사람보다 더 질이 좋지 않았던 평가를 받기도 한다.
이완용 내각의 법부대신'농상공부대신을 지내면서 매국활동을 하고, 1910년 한일합병 때 조약 체결에 찬성함으로써 매국노 7역신의 한 사람이 됐다. 그 후 일본 정부로부터 자작 작위를 받고, 조선총독부 중추원 고문이 된다.
2006년 친일반민족행위진상규명위원회가 공식 발표한 일제강점기 초기의 친일반민족행위 106인에 선정됐다. 2008년 민족문제연구소가 친일인명사전에 수록하기 위해 정리한 명단에도 이름을 올렸다.
2007년 대한민국 친일반민족행위자재산조사위원회가 그의 재산을 국가로 환수하기로 결정하자, 후손들이 행정심판을 청구했지만 패소했다. 3'1 만세운동이 일어났던 1919년 오늘 사망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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