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신문

[전태흥의 이야기가 있는 음악풍경] 임희숙 '내 하나의 사람은 가고'

십팔번(十八番)이란 말을 사전에서 찾아보면 "자신이 갈고 닦아서 가장 잘하거나 자랑으로 여기는 재주를 속되게 이르는 말로 주로 가장 잘 부르는 노래를 지칭한다"고 설명하고 있다. 또한 부연해서 "일본의 전통연극 '가부키(歌舞伎)의 명연기 대본 열여덟 가지'라는 뜻의 일본말 '가부키주하치방'(歌舞伎十八番)에서 나온 말"이라고 설명하고 있다. 사전의 설명처럼 대부분의 사람들은 그 어원보다는 자신이 가장 잘 부르는 노래를 일컫는 것으로 그 말을 이해하고 있는 듯하다.

이미 오래전에 세상을 떠나신 외할머니께서는 독실한 기독교 신자였다. 아마도 6'25전쟁 후, 월남한 실향민으로서 자식 셋을 홀로 키워야 했던 당신으로서는 기대야 할 곳이 교회라는 울타리뿐이지 않았을까 싶다. 돌아가시는 순간까지도 예수를 믿고 의지하셨기에 늘 할머니의 교우들이 찾아와 외갓집에서 찬송가를 부르고 기도를 하곤 했다. 특히 식사 시간에 할머니의 긴 기도는 어린 손자, 손녀들에게는 그다지 유쾌하지 않은 것이었다. 그런 할머니께서 즐겨 부르시던 노래 또한 찬송가였는데 지금 생각하면 그것은 십팔번이라기보다는 할머니께서 가장 좋아할 수밖에 없었던 유일한 노래가 아니었나 싶다.

아무튼 그 찬송가의 제목은 '내 주를 가까이'였다. 할머니는 전력 사정이 좋지 않던 초등학교 시절, 정전이 되면 가족들을 불러 모아 그 찬송가를 함께 부르시곤 했다. 어린 손자와 손녀들은 할머니의 선창에 따라 찬송가를 따라 불렀고 신기하게도 다시 전기가 들어오곤 했던 기억이 남아 있다. 그럴 때면 할머니는 "예수님께서 세상을 밝히신 것이다"며 감사의 기도를 드리곤 했다. 결국 외갓집의 십팔번은 '내 주를 가까이'였고 그것은 할머니께서 살아계시는 동안 내내 우리 가족들의 십팔번이기도 했다.

가끔 술자리에서 노래 부르기를 청 받을 때, 곤혹스러울 때가 있다. 타고난 몸치라 흥겨운 노래는 아예 관심 밖이어서 아는 노래 대부분이 분위기를 깨는, 느리고 슬픈 것이어서 극구 사양을 해보지만 별도리가 없을 때는 결국 한 곡을 부르고 만다. 그 노래는 다름 아닌 임희숙의 '내 하나의 사람은 가고'인데 이것이 십팔번이라면 십팔번이다.

'내 하나의 사람은 가고'는 음유시인으로 불리는 백창우가 작사, 작곡하고 임희숙이 1984년 발표한 노래다. 그녀는 노래를 받아든 후 '등이 휠 것 같은 삶의 무게여'라는 가사에 마음을 빼앗겼다고 훗날 고백했다. 그것은 아마도 1975년 박정희 정권이 가요정화운동이라는 명목 아래 벌인 대마초 파동에 휘말려 5년간이나 가수 활동을 못 하게 된 자신의 처지를 노래한 것이나 다름없었기 때문일 것이다.

'너를 보내는 들판엔 마른 바람이 슬프고/ 내가 돌아선 하늘에 살빛 낮달이 슬퍼라/ 오래도록 잊었던 눈물이 솟고/ 등이 휠 것 같은 삶의 무게여/ 가거라 사람아/ 세월을 따라/ 모두가 걸어가는 쓸쓸한 그 길로'(내 하나의 사람은 가고 중에서) 히말라야의 안나푸르나 쏘롱라 고개(해발 5,416m)를 오르면서 노래처럼 낮달을 만난 적이 있었다. 정상을 불과 30분 남긴 지점이었다. 흰 설산 위에 걸려 있는 보름달에 울컥 목이 멨다. 살아온 날들에 대한 회한 같은 것들이 거기 있었다. 서적 외판원을 하며 고단한 삶을 살아온 백창우가 그랬을지 모른다. 권력의 희생양이 되어버린 임희숙이 그랬을지 모른다.

젊은 날, 목숨 걸고 싸웠던 세상이 지친 삶의 무게로 다가올 때, 할 수 있는 것은 아무것도 없었다. 스스로에 대한 변명을 만들고 또 만들었지만 쏘롱라의 바람은 무심하게도 아무런 대답을 해주지 않았다. 결국 그것은 신념에 대한 변절이라는 또 다른 이름에 지나지 않았다. 가끔 이 노래를 부를 때면 숨을 멈추게 했던 그날의 그 낮달이 떠오른다. 끝까지 지키지 못한 신념에 대한 참회, 세상에 대한 또 다른 헌신에 대한 다짐이 그 낮달의 눈물에 있다.

십팔번의 의미를 생각한다. 어떤 이는 첫 사랑의 아련함으로, 또 어떤 이는 삶의 고단함으로 그래서 그것은 삶의 흔적이 되고 다시 노래가 된다. 살아가면서 사람들은 그렇게 자신들의 십팔번을 만들고 기억한다. 아직도 '내 하나의 사람은 가고'는 삶의 무게를 벗어버리지 못하고 십팔번으로 남아 있다. 기회가 된다면 모두들 한자리에 모여 외갓집의 십팔번을 함께 불러보고 싶다.

전태흥 미래TNC 대표사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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