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신문

나 160cm, 그래 내 키 작다…그게 뭐 어때서?

세상 편견 뒤흔드는 소수들 '뭉침의 힘'

자칭
자칭 '대구 숏다리들의 모임'을 갖고 있는 3명이 키 작다고 무시하는 세상의 편견을 향해 익살스럽게 항의하고 있다. 왼쪽부터 유지윤(161㎝), 김영호(160㎝), 윤기원(166㎝) 씨.
'못 본다고 무시하지 마라. 우린 오감으로 느낀다!' 흰 지팡이 기행단이 나무를 온몸으로 체감하고 있다.

대한민국 사회는 겉으로는 정의를 부르짖고 사회적 약자를 위한다고 한다. 하지만 현실에서는 그렇지 않은 일들이 많이 벌어진다. KBS 인기 프로그램인 '개그콘서트'(줄여서 개콘)의 '네 가지'라는 코너는 이런 대한민국의 현실을 여지없이 드러내며, 속 시원하게 사회적 편견에 맞서는 서로 다른 캐릭터 4명이 통쾌하게 자신이 겪는 세상의 부당한 선입견에 대해 맞선다.

'네 가지'의 캐릭터는 인기 없고, 촌스럽고, 키 작고, 뚱뚱하다고 해서 여러 오해를 사는 4인의 개그맨이 실제 사건들을 그대로 통쾌하게 풀어낸다. 실제 우리 사회에는 이에 더해 집안 배경도 좋지 않고, 돈 없고, 내세울 만한 학벌도 없는 사람들이 대부분이다. 이들은 항상 무시당하며 살아야 할까? 개콘의 '네 가지'에 출연하는 4인의 개그맨처럼 현실에서도 사회적 편견에 당당하게 맞서는 사람들이 있다.

사회적 약자들도 세상의 값싼 동정을 바라기보다 자신들만의 즐거움을 찾아나서고 있다. 대구시각장애인문화원 소속 '흰 지팡이 기행단'은 지난 10년 동안 100번이나 전국 기행을 했다. 앞이 보이지 않는다고 여행을 할 수 있겠느냐는 의구심은 버리는 것이 좋다. 이들은 오감(五感)으로 여행을 즐긴다. 또 희귀병을 앓고 있는 자녀를 두고 있지만 희망을 잃지 않고 동병상련의 마음으로 정기적인 만남을 갖는 이들도 있다. 이들은 병에 대한 새로운 정보를 교환하고, 자녀들이 조금씩 좋아질 때마다 기쁨을 나눈다. 당당해서 보기에 좋고, 오히려 타인을 더 배려해 눈물이 날 정도로 감동적이다. 적어도 마음만큼은 그들은 약자가 아니다.

◆그래 내 작다! '아니∼ 아니∼ 아니 되오'

자칭 '대구 숏다리들의 모임'이다. 하지만 이들은 당당했고, 그 울림은 컸다. 개콘에 출연하는 키 작은 캐릭터인 개그맨 허경환이 이들에게 좋은 아이디어를 많이 얻어가도 좋을 듯하다. 방송에 소개돼도 좋을 듯한 키 작은 사람들의 포복절도 에피소드도 많이 들려줬다.

이 모임의 멤버는 김영호(47'댄스스포츠스쿨 원장), 유지윤(38'굿복싱 & 에어로빅 관장), 윤기원(28'덕화중학교 복싱 지도자) 씨. 당당하기에 절대 비밀이 될 수 없는 이들의 키는 각각 160㎝(김영호), 161㎝(유지윤), 166㎝(윤기원). 셋 모두 하나같이 동안에다 유쾌한 성격의 소유자들이었다.

셋의 공통 발언을 소개하면, "우린 작지만 위트 있고 부지런한 성격에다 동안이잖아요. 그리고 우리끼리 만나면 키 얘기를 할 필요가 없어서 좋아요. 눈높이도 딱 맞아요. 서로 입 냄새(?)를 맡으며 대화를 나눌 수 있어 좋습니다. 키 큰 사람의 겨드랑이 냄새보다는 훨씬 낫잖아요. 비공식 모임이지만 작은 사람끼리는 통하는 게 참 많습니다."

김 씨는 "사실 키 큰 사람이 조금 부럽기는 하다. 전 괜찮지만 제 아이들은 키가 더 컸으면 하는 바람에서 우유를 많이 먹이기도 했다"며 솔직한 심경을 밝힌 후 "그래도 남들 눈에 잘 보이지 않아 힘든 일을 적게 할 수도 있고, 전쟁터에서도 총알을 맞을 확률이 적은 등 키가 작아서 좋은 점도 많다"고 너스레를 떨었다.

유 씨는 "저는 '지금도 키가 크고 있다'며 스스로 최면을 거는 등 긍정적인 마인드로 살아가며, 아직도 밖에 나가면 애 둘 딸린 유부남인 것을 모르고, '총각' 또는 '학생'으로 부르는 이들이 많다"며 호탕하게 웃었다.

윤 씨는 네 가지 버전으로 자신에 대한 오해를 풀어냈다. "그래! 나 작소! 그렇다고 내가 타는 차도 작은 거 아니다. 좋은 차 잘 타고 있으며, 여자 친구도 예쁘고 키 크다. 한 번씩 교내 식당에서 영양사 선생님이 저를 너무 어리게 보고 엉덩이를 두드리며, '학생 많이 묵어'라고 하는데, 앞으로 그러지 마라! 만으로 스물여덟 살이다. 앞으로 작다고 함부로 어리게 봐서는 아니∼ 아니∼ 아니 되오!"

◆시각장애인들의 오감 여행과 동병상련 모임

"앞을 못 본다고 오해하지 마라! 우린 다른 사람들보다 오감이 더 발달돼 있다. '다들 우리보고 여행 가봐야 별 볼 일 있겠느냐?'고 빈정거리는데 실제 한번 우리 기행에 따라와 봐라. 여행의 참맛을 알게 될 거다. 소나무 껴안아 봤느냐? 그 소중한 느낌을 어떻게 전달할까? 그러니까 시각장애인들은 항상 마음으로 보고, 온몸으로 느낀다는 사실을 잊지 마라! 마음만은 천리안이다."

매월 한 번씩 여행을 떠나 지난달에 100번째 여행을 다녀온 대구시각장애인문화원 소속 '흰 지팡이 기행단' 회원들이 오감으로 느끼는 여행 전문가로서 비장애인들에게 들려주는 '네 가지' 방식의 코멘트다.

실제로 그렇다. 이 기행단은 매월 전국 어느 곳이든 떠난다. 여행과 문화 이현동 대표는 수년 동안 이들의 여행 가이드 역할을 맡으면서, 시각장애인들이 오히려 여행을 더 깊이 즐길 수 있다는 확신을 갖게 됐다.

대구시각장애인문화원 김현준 원장은 "기행을 100회째 이어갔다는 것은 참으로 대단한 일이라 생각한다"며 "4세 때부터 참가한 한 학생은 지금 초등학교 6학년인데 시각장애인 아빠에게 현판 글씨를 읽어 드린다고 한자를 배워 지금 2급 자격증까지 따서 기행 때 어려운 한자를 척척 읽어줄 정도"라고 소개했다.

김 원장은 "이런 즐거운 여행이 시각장애인에 대한 인식을 올바르게 하고 상호 소통과 이해를 증진시켜 편견과 차별 없는 통합사회를 만들어 나가는 데 조금이나마 역할을 한 것에 대해 보람과 긍지를 느낀다"고 덧붙였다.

자녀가 선천성 심장병을 앓고 있는 사람들의 모임이 있다. 모두 가슴 아픈 사람들이지만 희망의 끈을 놓지 않고 긍정적인 자세로 살아가는 사람들이다. 바로 '연리지'(가지가 합쳐진 사랑의 나무) 모임이다. 이들은 서로 같은 삶의 아픔과 고민을 갖고 있기에 매년 여름과 겨울 두 번에 걸쳐 만남을 갖고, 다른 사람 자녀의 건강이 좋아졌다는 소식을 들을 때 함께 기뻐해 주는 아름다운 모임이다. 이 모임 회원인 ㈜예일커뮤니케이션즈 강철원 대표는 "회원들이 사는 지역이 달라서 모임 때마다 약속 장소를 달리하고 있다"며 "남들이 볼 때는 가슴 아픈 모임일 수 있겠지만 우리들에겐 더없이 유쾌하고 아름다운 모임"이라고 말했다.

권성훈기자 cdrom@msnet.co.kr

사진'김태형기자 thkim21@msnet.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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