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신문

[야고부] 말문을 여는 공동 작업

얼마 전 TV 해외 수사물을 봤다. 아마도 시리즈인 듯한데, 그날 방영된 극은 16세에 약물에 중독됐고, 20대 초반에 수감됐다가 30대 초반에 출소한 뒤 곧바로 사망한 여자의 죽음과 관련한 이야기였다.

경찰은 딸을 잃은 아버지에게 "(따님의 죽음과 관련해) 아직 어떤 명확한 결과도 찾지 못했다. 죄송하다"는 취지로 이야기했다. 이에 아버지는 "나는 설명을 들을 자격이 없다. 부모가 있고, 직업과 집이 있고, 학교를 보내주는데 문제 될 것이 없다고 생각했다. 딸아이와 나는 대화를 나누지 않았다"고 답했다.

평범한 부모라면 이 사건의 아버지처럼 '도대체 무엇이 부족하냐, 네가 빗나갈 이유가 없지 않으냐'고 생각하기 십상이다. 그러나 약물에 취해 죽은 자녀에게는 무엇인가 문제가 있었을 것이다. 따로 애쓰지 않아도 자식이 무난하게 자라준다면 다행이지만, 나름대로 애를 써도 옆길로 새는 자식이라고 '나 몰라라' 할 수는 없다. 학교 선생님들에 따르면 부모가 있음에도 '결손가정'이나 다름없는, 방치 상태의 아이들이 많다고 한다.

흔히 대화를 통해 자녀의 현재 상태와 고민을 알 수 있고, 당면한 문제를 해결할 수 있다고 한다. 그러나 정작 어떻게 대화를 해야 할지 아는 사람은 드물다. 이런 까닭에 부모와 자녀의 대화라는 것은 기껏 '해라, 하지 마라, 알아들었느냐, 뭐가 문제냐?'는 식의 물음과 질타, 당부에 그치는 경우가 많다. 물론 대화를 강조하느라 마땅히 권위나 매를 동원해야 할 때를 놓치는 경우도 있다.

미국이나 유럽의 경우 부모와 자식이 함께 만드는 DIY 제품이 많다. 이런 제품들은 혼자가 아니라 가족이 함께 작업해야 효율적인 것들이 대부분이다. 탁자나 침대, 책꽂이 등을 함께 만들면서 부모와 자녀는 자연스럽게 대화하고 협동한다. 그리고 공동 작업의 결과물을 내놓는다. 이 과정을 통해 부모와 자녀는 유대를 강화한다. 공동 작업의 과정과 공동의 결과물이 있으니 일종의 동지 의식까지 생긴다.

대화를 하겠노라고 무릎을 맞대고 앉으면 피차 할 말이 없어진다. 대화라는 것은 '대화 시작!'이라고 작정하고 시작하는 게 아니다. 자연스럽게 대화를 이끌어내는 데는 함께하는 작업만큼 좋은 게 없다. 자녀와 함께하는 캠핑, 요리, 가족 축구, 텃밭 가꾸기 등 소재는 다양하다. 자녀와 함께 무엇이든 만들어보자. 이야기가 술술 나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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