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어와 문화예술 거리로 만든다던 대구 수성구 범어네거리 지하 공간 조성 사업이 이렇다할 성과를 내지 못한 채 '애물단지' 신세를 면치 못하고 있다. 영어 체험 거리는 문을 연지 5개월이 되도록 개점휴업 상태인데다, 개관을 앞둔 문화예술 거리도 '땜질식'으로 추진되고 있기 때문이다.
◆적막한 영어 거리
28일 범어네거리 지하 범어월드플라자는 을씨년스러웠다. 리모델링을 거쳐 이달 21일 재개장했지만 드문드문 행인들이 오고 가고 할 뿐 문을 닫은 점포가 대부분이었다. 비어있는 벽에는 '임대 문의'라는 현수막이 걸려있었고, 내부 인테리어 공사가 끝나지 않은 점포도 여기저기 눈에 띄었다. 이곳에서 만난 대학생 박모(21'여) 씨는 "영어 거리를 만든다고 해서 외국인들이 북적대는 이색적인 공간을 예상했는데 기대와는 딴판"이라며 "문을 연 가게도 2, 3곳밖에 없어 영어 거리가 맞는지도 의심스럽다"고 말했다.
대구시는 올 4월 범어월드플라자 상가 39곳에 영어권 국가들의 풍물을 본딴 점포 39곳을 도심 영어 거리로 조성했다. 여행사와 편의점, 커피숍, 여행사 등 실생활에서 자연스럽게 영어를 사용하는 문화 거리를 만들겠다는 의도였다. 각 점포에는 원어민을 상주시킨다는 계획도 세웠다. 그러나 유동인구 자체가 적은데다 사실상 사설 영어학원이나 다름없다는 비난이 일었다. 더구나 유료 회원 수도 300여 명에 불과해 수익을 내지 못한 점포들이 방문 예약이 없는 시간에는 문을 닫고 있다. 임대 사업자인 판테온대구도심영어거리㈜ 관계자는 "오고 가는 사람이 적고 문화예술 거리 조성이 늦어지면서 점포마다 매월 수백만원의 적자를 보고 있다"며 "대구시에 임대료'관리비 유예와 관리비 현실화 등을 요구한 상태"라고 말했다.
◆문화예술 거리도 현실과 동떨어져
남은 공간을 문화예술 거리로 조성하겠다는 계획도 삐걱대고 있다. 시는 영어 거리를 제외한 점포 33곳과 길이 130m의 벽면을 창작 전시관과 외국문화관, 갤러리 등으로 조성할 방침이다. 이를 위해 입주 예술가 및 단체 10곳을 선정했고, 중국과 일본'아시아 국가 등을 대상으로 하는 외국문화 전시관 3곳도 만들기로 했다. 대구시는 다음 달 초 시설 공사 업체 선정을 위한 입찰 공고를 낸 뒤 10월 중에는 개장할 계획이다.
그러나 외국문화관을 만들겠다는 계획은 입주 희망 국가가 없어 차질을 빚고 있다. 시는 자원봉사자나 인턴직원으로 인력을 지원하고 기본 전시시설 설치에 임대료나 관리비 일체까지 지원하겠다고 제안했지만 관심을 끌지 못했다. 결국 임시방편으로 중국문화원의 문화'예술품을 단기 전시하고, 일본은 개인 수집가의 도움으로 전시 물품을 구했다. 다문화 국가관의 전시물은 '온 어린이박물관'이 소장품을 임시로 전시하기로 했다. '구색 맞추기'식 외국 문화관이지만 이마저도 1, 2개월 뒤에는 모두 철수할 예정이다.
지역 예술가들이 입주하는 '창작'전시관'에서는 '창작'이 사라질 처지다. 이 공간에서 창작 활동을 한다는 자체가 '어불성설'이라는 것. 환기가 어렵고 상하수도 시설도 없는 공간 특성 상 창작이 불가능하다는 것이 관계자들의 이야기다. 그렇다고 작품 판매를 통한 상업 활동도 불가능하고, 주차 공간이 없어 작품 운반에도 치명적 약점을 안고 있다. 매일 8시간 이상 누군가 상주해야 하는 점도 불편 요소다.
한 입주 작가는 "매월 15만~20만원을 부담하면서 작은 전시 공간으로만 사용해야할 처지"라며 "막상 공간을 확보하기는 했으나 활용도가 높지 않고 제약이 많아 어떻게 해야 할 지 고민"이라고 털어놨다.
대구시 관계자는 "외국문화관에 들어올 국가들은 계속 접촉을 하고 있는 상태다. 여의치 않으면 입주 작가들의 전시 공간으로 쓸 것"이라며 "창작 활동은 입주 작가들이 불편을 조금 감수하면 충분히 가능할 것"이라고 해명했다. 장성현기자 jacksoul@msnet.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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