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신문

[연극 맛있게 먹기] 주인공

실제 삶의 모습과 비슷…'주인공=나' 동질감 느껴야 호응

어떤 일에서 중심이 되거나 주도적인 역할을 하는 사람을 우리는 주인공이라고 부르는데 연극에서는 사건의 중심이 되는 인물을 의미한다. 그러니 이미 우리가 알고 있는 것처럼 주인공은 당연히 다른 등장인물에 비해 출연 분량과 대사가 많을 수밖에 없다. 이것이 일반적인 상식이다. 물론 주인공의 신체적 특징이나 성격에 따라 대사가 아예 없거나 적을 수도 있다. 하지만 출연 분량이나 이야기에서 차지하는 중요도는 다른 역할에 비해 상대적으로 높다. 이야기를 이끌어 가거나 이야기의 중심에 놓여 있는 가장 비중이 높은 인물을 주인공이라고 부르니 당연한 것이라고 하겠다.

고대 그리스 비극에서는 그리스 신화처럼 신 혹은 신과 비슷한 위치를 지니는 인간이 주인공이었다. 하지만 시간이 흐르면서 왕족이나 귀족 등 평범한 인간보다 신분이 높은 인간이 연극의 주인공이 되었고 점차 평범한 인물이 연극의 주인공이 되기 시작했다. 현대에 이르러서는 아예 평범한 인간보다 여러 가지 면에서 낮은 계층의 인간, 즉 약점을 많이 지닌 나약한 인간이 연극의 주인공이 되기에 이르렀다.

이는 비극의 주인공은 신분이 높은 고귀한 인물이어야 한다는 원칙과도 같았던 과거의 이론이 무너진 것을 의미한다. 생각해 보면 일반인과는 아주 먼 주인공에서 이제는 주변에서 쉽게 찾을 수 있는 평범한 인물이 주인공이 된 것이다. 인간의 사회, 경제, 정치적 역사와 맥을 같이하고 있는 셈이다. 소포클레스의 '오이디푸스왕', 셰익스피어의 '햄릿', 아서 밀러의 '세일즈맨의 죽음'은 이러한 연극사의 변화를 잘 보여주는 대표적 비극작품으로 알려져 있다.

오늘날의 연극에는 주인공이 아주 평범한 인물이거나 그보다 못한 인물이 주를 이룬다. 우리가 흔히 보는 텔레비전 드라마에는 재벌이나 유력한 정치인 등이 자주 등장하지만 연극에는 지극히 평범한 주인공이 많이 등장하는 편이다. 주인공의 특성만을 살펴보자면 연극이 훨씬 더 현실감이 있다고 할 수 있다. 물론 이것은 반드시 지켜지는 원칙은 아니다. 어디까지나 심리적인 측면에서 바라본 것이다. 하지만 이러한 점이 연극적 특성을 잘 담고 있는 것만은 확실하다.

연극 이론이나 극작 이론에서 주인공에 접근하면 지금까지 했던 이야기보다 훨씬 더 복잡한 이야기가 가능하다. 주인공은 어떻게 설정해야 하며, 주인공과 부딪치는 반동인물, 주인공을 돕는 조력자, 주인공의 성격이나 상황 등을 보여주기 위해 등장하는 단역 등은 또 어떻게 설정해야 할 것인지에 관한 다양한 이론이 존재하기 때문이다. 하지만 주인공과 관련된 수많은 이론들은 결국 지금까지 나온 수많은 작품들에 등장하는 주인공의 사례를 토대로 정립한 것이지 처음부터 그런 이론이 존재했던 것은 당연히 아니다.

주인공은 꼭 어떤 인물이어야 하거나 어떻게 설정해야 한다는 원칙은 없는 것이나 마찬가지다. 지금까지 보기 어려웠던 새로운 주인공을 성공적으로 제시한다면 이는 새로운 이론을 정립하는 것과 같다. 모든 예술이 그러하듯이 연극과 연극의 주인공에 관한 정답도 없다. 인간이 자신에게 주어진 삶을 최선을 다해 살아야 하듯이 연극의 주인공은 작품 안에서 주어진 삶을 최선을 다해 살도록 하면 된다. 그것이 꼭 작품 내용상 주인공의 성공을 의미하지는 않는다.

연극의 주인공도 우리네 인생처럼 때로는 실패해 울고 때로는 성공해 웃을 수도 있다. 중요한 것은 주인공이 숱한 갈등을 극복하며 자신의 목표를 달성하고자 하는 과정이다. 성공이냐 실패냐 하는 최종 결과에 따라서 작품의 형식이나 색깔은 달라지겠지만 그 이야기의 중심에 서 있는 인물이 주인공이라는 사실에는 틀림이 없다. 그렇기 때문에 사람들은 주인공을 따라가며 이야기를 파악하게 되고 주인공의 상황에 몰입하는 것이다. 이것이 '주인공은 곧 나'라는 동질감을 느끼기 쉬운 주인공이 관객의 호응을 더 많이 얻을 수밖에 없는 이유이기도 하다. 누구나 주인공은 자신이라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연극이 맛있는 이유도 여기에 있다.

안희철 극작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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