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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일춘추] 팬픽문화

요즘 출판 시장을 뒤흔들고 있는 E. L. 제임스는 팬픽 작가로 출세(?)한 사람이다. 그녀는 팬픽이라는 걸 알기 이전에는 글을 써 본 적이 없었다고 한다. 평범한 중년 여성의 인생 방향을 바꾸게 한 것은 바로 트와일라잇 팬픽이다.

팬픽(fan fiction)은 만화, 소설, 영화 등 장르를 구분하지 않고 대중적으로 인기를 끄는 작품을 대상으로 팬이 쓰는 소설을 일컫는 말이다. 주로 자신이 좋아하는 연예인을 주인공으로 삼는 경우가 많다. 인터넷 소설의 양산으로 팬픽의 열기가 다소 낮아졌다고는 하지만, 주 공감 층인 10대들 사이에선 어느 아이돌 못지않은 인기로 공감되고, 공유되고 있다. 또, 그 열기만큼이나 많은 팬픽이 지금 이 시간에도 끊임없이 생산되고, 여전히 사랑받고 있다. 팬픽은 팬 카페나 팬픽 전용 사이트를 통해서 독자를 확보한다. 그리고 독자들은 사이트 게시판이나 대화방을 통해 저마다의 의견을 올리고, 베스트 팬픽을 추천하기도 한다. 이렇게 이미 팬픽은 10대들의 독특한 문화로 자리매김을 했다.

지금껏 오랜 세월 동안 스타와 팬 사이에는 엄청난 괴리의 벽이 있었다. 팬에게 있어 스타는 막연한 선망의 대상, 동경의 대상, 박수의 대상, 좀처럼 다가갈 수 없는 상대이었을 뿐이다. 스스로가 스타의 신분이 되지 않는 한, 스타와 팬은 쉽게 가까워질 수가 없다. 팬픽은 이러한 스타와 팬을 한결 가까이 느끼게 하고, 수직적 관계가 아닌 수평적 관계로 느끼게 하는 등과 같은 긍정적 효과가 있다고 생각한다.

10대들이 좋아하는 팬픽의 주제는 주로 순정, 우정, 무협, 판타지, 코믹, 공포, 추리, 리얼 소설에 이르기까지 매우 다양하다. 이중에서 한창 감수성 예민한 10대들답게 순정물이 가장 인기이다. 대체로 아이돌 멤버끼리의 사랑을 다룬 동성애가 주를 이룬다. 여기에서 매우 위험한 문제점이 발견된다. 독자들이 팬픽을 100% 픽션으로 생각하지 않아서 상당한 오해의 소지가 발생할 수 있다는 것이다. 심리적으로 우리가 익히 알고 있는 스타를 실명으로 한 작품일수록 픽션보다는 논픽션으로 받아들여지기가 쉽기 때문이다.

팬픽문화의 1세대 젝스키스의 리더였던 은지원은 쇼 프로그램에서 멤버들 간의 연애 이야기를 그린 팬픽을 보고 한동안 멤버들끼리 몹시 어색하고 불편했으며, 정말로 짜증이 났었다고 속마음을 털어놓았다. 그것이 동성애자로 오해를 받게 한다면 이야기는 더욱 달라진다. 어찌 팬픽 피해자가 은지원의 경우뿐이겠는가. 어느 연예인이 삭일 수 없는 깊은 상처를 입는다면 이 또한 문제가 아니겠는가. 팬픽이 시류에 따라 자연스럽게 자리한 새로운 문화라 하더라도 그 파급력을 감안하여 보다 조심할 필요가 있지 않을까 싶다.

심지현 문학박사'대구가톨릭대 강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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