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신문

전국 최초 여성 장애인 '꽃미녀 축구단' 창단 스토리

숨어서 피던 꽃 축구화 신고 세상 밖으로

경남
경남 '의령 사랑의 집' 원생으로 이뤄진 전국 최초 장애인 여자축구단인 '의령 꽃미녀 축구단'. 왼쪽부터 박현미, 김은지, 박정애, 김연순, 김경미, 김수현, 정숙이 선수.
지적장애인들이 만들어내는 아름다운 핸드벨 소리는 천상의 소리. 의령 사랑의 집 원생으로 이뤄진
지적장애인들이 만들어내는 아름다운 핸드벨 소리는 천상의 소리. 의령 사랑의 집 원생으로 이뤄진 '소리샘 벨콰이어'는 외교사절단이 왔을 때도 감동의 공연을 선사한 유명 공연단이다.

고교 때부터 봉사활동을 하며 만났던 영'호남 출신의 남녀가 사랑을 싹 틔워 결혼에 골인했다. '봉사 DNA'를 가진 이 부부는 직장 생활을 하면서도 자원봉사단체에서 일하는 것을 잊지 않았다. 남자는 30세가 되던 해, 소중한 직장을 그만두고 아예 봉사활동에 인생을 걸어버렸다. 물론 천성적으로 봉사에 적극적인 여자도 함께했다.

1999년 첫 출발은 경남 의령군 지정면 태부리의 산 아래 식당 자리였다. 남자는 '의령 사랑의 집'이라는 여성 장애인 시설을 이곳에 설립했다. 식당은 전면적으로 장애인들을 위한 시설로 탈바꿈했다. 그렇게 부부는 식당이었던 이곳을 손수 하나하나 개조해 장애인들이 사용하기에 편리한 공간으로 만들었다. 13년이 지난 지금은 경치 좋은 곳에 자리 잡은 산중 펜션처럼 아름다운 집 한 채로 변신했다.

이 부부는 사회적으로 핍박받던 여성 지적장애인들에게 따뜻한 보금자리를 제공하고 있다. 하지만 여기에 만족하지 않았다. 특명은 '문화'체육을 향유하는 원생들'. 마라톤을 좋아했던 남자는 자신이 운영하는 시설에 들어온 여성 지적장애인들에게 처음에는 5㎞, 그리고 이내 10㎞ 달리기를 권유했다. 뛰는 것을 좋아한 몇몇 장애인들은 하프마라톤까지 완주했다.

그렇게 기초 체력을 쌓고 있던 중 지난해 10월 의령고 학생들이 봉사활동을 왔다. 레크리에이션 시간에 함께 축구를 했는데, 달리기를 좋아했던 이곳 장애 여성들은 축구의 매력에 흠뻑 빠져들었다. 원장인 남자는 타이밍을 놓치지 않았다. 수시로 축구를 즐기도록 하면서 자신은 축구지도자 3급 자격증을 취득했다. 미모와 뛰어난 운동신경을 겸비한 사회복지사 감독까지 선임했다. 그리고 전국 최초 여성 장애인 축구단인 '의령 꽃미녀 축구단'을 발족했다. 이 남자는 '의령 사랑의 집' 김일주(42) 원장이고, 이 여성은 이곳에서 남편을 도와 사무국장 업무를 하며, 같은 여성의 입장에서 장애인들을 세심하게 보살피고 있다.

◆첫 대회 준우승에 빛나는 '의령 꽃미녀FC'

올해 창단한 의령 꽃미녀 축구단은 지난달 16일부터 19일까지 경북 경산에서 열린 한국스페셜올림픽 대회에 나가 2승 1패로 은메달(2위)을 차지했다. 군산 장애인팀과 의령 꽃미녀 축구단, 그리고 혼성으로 이뤄진 5팀 등 총 7팀이 참가했는데 의령 꽃미녀 축구단이 당당하게 준우승을 한 것이다. 남성 3명과 여성 2명으로 이뤄진 승가원팀과의 결승전은 예상만큼 힘든 경기였다. 결국 9대 2로 대패하고 말았다.

주장 겸 공격수(골게터) 역할을 맡고 있는 정숙이(21) 씨는 "저 혼자 골을 다 넣다 보니 조금 미안한데, 이 모든 것이 우리 팀 승리를 위한 팀워크"라며 "원장님이나 감독님이 잘 지도해주고 응원해줘 고맙다"고 말했다. 막내 박현미(16) 양은 "처음엔 드리블이 뭔지도 몰랐는데 이젠 제법 공을 잘 다룬다"며 "전 막내라서 축구 외에 춤이나 노래로 언니들을 즐겁게 해주려 한다"고 웃었다.

의령 꽃미녀FC만의 끈끈한 팀워크에 대한 자랑도 계속됐다. 수비형 미드필더를 맡고 있는 김수현(29) 씨는 "우리 팀은 남의 탓을 하지 않으며, 항상 서로 배려해주기 때문에 싸울 일이 없다"고 말했다. 공격형 미드필더인 김은지(26) 씨는 "우리 팀은 팀워크가 좋아서 몇 년 내에 전 세계적으로 유명한 여성 장애인 축구단으로 거듭날 것"이라고 자랑했다.

골키퍼 김연순(25) 씨는 "막상 대회에 나가 보니 정말 잘하는 선수들이 많았다"며 "골키퍼로서 책임이 무겁지만 골문을 잘 지켜서 팀의 승리를 이끄는 역할을 할 것"이라고 파이팅을 외쳤다. 미드필더 역할을 맡고 있는 박정애(31) 씨'김경미(19) 양도 "예전에는 축구경기에 관심이 없었는데, 이제는 축구경기 중계방송을 챙겨 본다"며 "특히, 박지성, 김보경, 기성용 선수 등을 아주 좋아한다"고 환한 미소를 보였다.

의령 꽃미녀FC의 감독인 조이슬(22) 사회복지사는 어릴 때부터 타고난 운동신경을 가진 미모(?)의 만능 스포츠우먼으로 선수들의 절대적인 지지를 받으며, 축구를 가르치고 있다.

◆감동을 선사하는 핸드벨연주단, '소리샘 벨콰이어'

의령 사랑의 집 소속 장애인들은 축구만 잘하는 것이 아니다. 예술적 소양도 갖추고 있고 경력도 화려하다. 대통령 영부인 앞에서 공연을 펼쳤으며, 외교사절단이 왔을 때도 감동의 선율을 선사했다. 바로 핸드벨 연주단인 '소리샘 벨콰이어'다. 8명의 여성 지적장애인으로 구성된 이 연주단은 천상의 소리인 핸드벨의 아름다운 울림을 사랑과 감동으로 전하는 악단이다.

올 1월에는 서울 그랜드힐튼호텔에서 열린 2013년 평창 동계스페셜올림픽 후원의 밤 행사에 초청받아 많은 국내외 주요 인사들 앞에서 아름다운 음악을 들려줬다. 기립박수를 받을 정도로 반응은 뜨거웠다.

핸드벨 연주단의 탄생에도 김일주 원장의 역할이 컸다. 김 원장은 의령 사랑의 집을 운영하면서 원생 21명을 상대로 열쇠 고리나 앞치마 등을 만드는 직업재활과 문화체육 분야에서의 레크리에이션 강화 등을 주요 과제로 내걸었다. 문화 분야에서 활동할 거리를 찾고 있던 중 핸드벨이라는 희귀한 악기를 알게 됐다. 그리고 2천500만원이라는 거금을 들여 핸드벨 악기 세트를 구입했다. 김 원장은 재능이 뛰어난 원생들의 끼를 100% 발휘하도록 도왔고, 피나는 연습 끝에 '소리샘 벨콰이어'를 출범시켰다. 연주단은 공연마다 청중들의 호응을 이끌어 냈고, 언론에 소개되기도 했다.

의령 사랑의 집의 큰 자랑거리인 '의령 꽃미녀 축구단'과 '소리샘 벨콰이어'의 주요 멤버들은 동일 인물이다. 문화'체육 쪽에 동시에 재능을 가진 원생들이 주축 멤버로 축구단과 공연단을 이끌고 있다. 이곳에서 생활하는 여성 지적장애인들은 저마다 꿈과 희망을 갖고 있다. 그 꿈을 이루기 위해 열심히 사는 모습이 아름답고 감동적이다. 이들은 10월 7일 경남 창원 성산아트홀에서 핸드벨 공연을 하고, 이 달 15, 16일에는 경남 남해 스포츠파크에서 열릴 영'호남 지적장애인 친선 축구대회에 출전할 예정이다.

권성훈기자 cdrom@msnet.co.kr

사진'성일권기자 sungig@msnet.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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