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신문

[주목 이책!] 여왕 페기

새벽 4시, 비몽사몽 간에 받은 전화에서 뜬금없는 축하 인사가 흘러나온다. "축하합니다. 당신이 오투암의 새로운 왕으로 추대되었습니다." 왕이었던 외삼촌이 죽었고, 조상의 뜻을 묻는 독주에서 김이 피어올랐으니 당신이 부족의 왕이라는 뜬금없는 통보였다. 주미 가나대사관에서 비서로 근무하던 평범한 여성은 그렇게 하루아침에 왕이 됐다. 아프리카 가나의 주민 7천여 명이 사는 부족마을 오투암에서 사상 최초의 여왕이 탄생하는 순간이었다. 3개월 동안 뜬 눈으로 밤을 새우며 고민한 끝에 페기는 왕의 자리를 운명으로 받아들이고 긴 휴가를 내 아프리카 가나로 떠난다.

'여왕 페기'는 평범한 대사관 비서에서 여왕의 자리에 오른 페기린 바텔스의 실화다. 왕이 된 2008년부터 2년여에 걸쳐 변화와 개혁의 바람을 불러일으켰던 과정을 담았다. 왕의 자리에 올랐지만 부족의 현실은 참혹했다. 왕궁은 허물어지기 직전이고, 아이들은 매일 몇 시간씩 걸어 연못에서 누런 물을 길어다 마셨다. 병원은 침대가 부서질 정도로 낙후된 데다 의사는 한 명도 없었다. 게다가 왕실 원로들은 오랫동안 주민들의 세금을 착복해 사리사욕을 채우고 있었다. 페기가 넘어야 했던 높은 벽은 부정부패와 지독한 남성우월주의였다. 페기는 우선 젊고 유능하며 청렴한 젊은 인재를 원로로 선정한다. 원로들의 원성과 반발, 방해에도 굴하지 않고 세금 징수제도를 집중적으로 바꾼다. 사비를 털어 허물어져 가는 왕궁을 고치고, 선왕의 장례를 치른다. 아이들에게 학교가 생겨났고, 수로(水路)가 건설됐다. 15명의 원로 중 절반은 여성으로 교체됐다. 그녀에게 감동한 가나 정부도 오투암에 도로를 건설했다. 페기는 여전히 대사관에서 근무하고 있고 1년에 몇 주 동안 가나로 가서 왕의 역할을 수행하고 있다. 544쪽. 1만4천원.

장성현기자 jacksoul@msnet.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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