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구가 이인성을 브랜드화 하지 못하는 이유는 무엇일까.'
전국 지방자치단체들은 저마다 도시를 상징하는 대표 인물을 찾기 위해 혈안이 되어 있다. 잠시 거쳐간 인물조차 그 도시의 문화 인물로 조명하고, 미술관 또는 문학관을 만들고 대대적으로 홍보한다.
대구에는 '한반도의 천재 화가'이자 '한국 근대미술을 대표하는 서양화가' 이인성(1912~1950)이라는 훌륭한 자원이 있지만 이를 방관하고 있다. 올해 이인성 탄생 100주년을 맞았지만 아직도 이인성은 제대로 조명받지 못하고 있다.
◆이인성 작품 없는 대구
대구에서는 2005년 민간차원인 대백프라자갤러리에서 전시회를 열었을 뿐이다.
김태수 맥향화랑 대표는 "대구시는 지금까지 한 번도 이인성의 전시를 제대로 예우해서 한 적이 없다"고 말했다. 김 대표는 이인성 작품을 소장하지 못한 대구시를 질타했다. 예산을 들여서라도 이인성의 고향인 대구에서 그의 작품을 사들였어야 했다는 것. 그러나 현실은 정반대다. 대구시에서는 이인성 미술상이 벌써 12회를 맞는 데도 시상식 그 때 뿐이다. 일회성의 생색 내는 행사에만 관심을 보일 뿐이었다.
9월 이인성 작품을 전시하는 대구미술관이지만 모두 빌려온 것들이다. 대구미술관에는 지난해 구입한 수채화 소품 한 점 밖에 없다. 김선희 대구미술관장은 "3~5년 전만 해도 이인성 유화 작품을 지금보다 훨씬 싸게 구입할 수 있었다. 대구미술관을 짓기 이전 컬렉션을 했어야 했는데 아쉽다"고 말했다.
강원도 양구군이 박수근 미술관에 들이는 공의 반만 이인성에게 기울였어도 이인성이 오늘 같은 대접을 받지는 않았을 것이라는 게 미술계의 이야기다.
이인성에 관한 학술적 자료가 축적되지 않은 것도 문제다. 대구시민들이 이인성에 관해 알고 싶어도 마땅한 대중서적 한 권 없는 것. 미술평론가 김영동은 "이제 겨우 우리 역사 속에서 미술사를 연구하기 시작해, 본격적인 이인성 연구자도 없었던 것이 사실"이라고 말했다. 이 때문에 일부 미술관계자들은 '미술상과 함께 학술상을 제정해야 한다'고 주장해왔다. 10년간 연구 성과가 쌓였다면 이인성이 한국미술사에서 크게 주목받을 수 있었다는 것. 윤범모 가천대 교수(한국큐레이터협회장)은 "미술상에 학술상을 추가로 제정해 이인성에 대한 연구 사업에 비중을 둬야 한다"면서 "지금까지 이인성 책 한 권 없는 것은 대구시민들이 부끄러워 해야 할 일"이라고 강조했다. 이인성에 관한 흩어진 자료를 모으는 아카이브 사업도 시급하다.
◆시내 곳곳 이인성의 흔적들
이인성은 가난한 가정에서 태어났지만 천부적인 재능으로 화단에 화려하게 데뷔했다. 정규미술 교육을 받지 못했음에도 18세 조선미술전람회에 입선 한 이래 15년간 연속 출품해 수상했으며, 최고상인 창덕궁상을 수상하기도 했다.
그는 대구 수창초등학교를 졸업하고, 일본 유학 후 남산병원 김재명 원장의 딸 김옥순과 결혼한다. 남산병원 3층에 아틀리에를 열고, '이인성 양화연구소'를 개설해 학생들을 가르치기도 했다. 순수 예술다방이자 당시 대구 지식인들의 사교 장소가 되었던 아루스 다방을 열어 작품을 전시하기도 했다. 39세에 경찰의 총기 오발로 생을 마감하기까지, 이인성처럼 드라마틱한 삶을 살았던 근대 화가는 찾아보기 힘들 정도다. 이인성의 다양한 흔적은 현재 중구 시내 곳곳에 있다.
특히 이인성이 살던 생가 역시 뼈대가 지금까지 그대로 보존된 것으로 알려졌다. 이 집에 살고 있는 박정욱 씨는 "할아버지는 1960년대 이 집을 구입했고, 그 후 동네 사람들을 통해 이인성이 살던 집이라는 사실을 알았다"면서 "당시 기와 지붕을 슬레이트로 교체하고 내부 인테리어는 교체했지만 집의 뼈대는 그대로 남아 있다"고 말했다.
당시 남산병원 터는 반월당 부근에 있고 그 뒤 남산병원 간호사 기숙사로 사용되던 집이 아직 남아 있다. 또 이인성은 이상화와 친해서 자주 이상화의 집을 오갔던 것으로 알려져 있다. 서동진에게 미술을 배웠던 '대구미술사'도 계산성당 부근에 존재했다.
김태곤 대백프라자갤러리 큐레이터는 "이인성만으로도 충분히 스토리텔링이 가능하며, 이인성의 흔적은 대구 중심가 곳곳에 포진하고 있기 때문에 의지만 있다면 체계적으로 브랜드화할 수 있는 인물"이라고 강조했다. 이인성의 아들이기도 한 이인성기념사업회 이채원 대표는 "20년간 꾸준히 아버지에 대한 자료를 모아왔다"면서 "아루스 다방을 재현해 그곳에서 시민들이 아버지의 작품을 감상하고 당시 분위기를 느낄 수 있었으면 한다"고 말했다.
◆이인성미술상, 이대로 좋은가
윤범모 교수는 29일 열린 이인성 탄생 100주년 기념 이인성 학술세미나에서 '이인성 미술상'의 문제점을 지적했다. 상금도 격에 맞지 않고 원로들에 대한 공로상 내지 위로상 성격으로는 이인성의 재조명이라는 본래 취지와는 거리가 너무나 멀어 보인다는 것. 특히 상금 1천만원은 말이 안 된다고 했다. 국내 유명 문화예술상과 비교할 경우 10분의 1에 지나지 않는다.
윤 교수는 또한 이인성 재조명을 위한 방법으로 장기적으로 '재단 법인화'를 대안으로 제안했다. "스타급 인물이 없는 도시에서도 도시의 상징 인물 만들기에 주력하고 있는 현실을 볼 때 대구시는 이인성을 상징 인물로 만드는 것에 좀 더 적극적으로 나설 필요가 있다"고 주장했다. 대표 인물 만들기에 주력하고 있는 타 시'도의 예에서 볼 때 대구의 이인성에 대한 대접은 이해가 가지 않는다고 했다. 대전시가 이응노 미술관 운영을 위해 고암미술문화재단을 설립한 사례를 예로 들었다.
이에 대해 김대권 대구시 문화체육관광 국장은 "이인성 작품 컬렉션은 대표작은 미술시장에 나오지도 않을뿐더러 고가이고, 거래되는 작품은 대표작이라 할 수 없어 어려운 문제"라면서 "예산이 허락 된다면 미술상 심사위원들을 해외 유명 미술인들을 불러와 수상 작가의 업적을 세계에 알리는 방향으로 고려하고 있다"고 말했다.
최세정기자 beacon@msnet.co.kr
댓글 많은 뉴스
12년 간 가능했던 언어치료사 시험 불가 대법 판결…사이버대 학생들 어떡하나
[속보] 윤 대통령 "모든 게 제 불찰, 진심 어린 사과"
한동훈 "이재명 혐의 잡스럽지만, 영향 크다…생중계해야"
홍준표 "TK 행정통합 주민투표 요구…방해에 불과"
안동시민들 절박한 외침 "지역이 사라진다! 역사속으로 없어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