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에 있는 병원에 가고 싶다고 진료 소견서와 자료들을 요청한다. 우리 병원에서 치료를 받고 싶은데 자식들이 자꾸만 서울의 병원에 가서 치료를 받자고 해서 할 수 없다고 말씀을 하신다. 그분은 얼마 전 CT 뇌혈관사진을 가지고 내원했다.
두 개의 뇌동맥류가 의심됐는데 하나는 확실했고 다른 하나는 의심스러웠다. 뇌혈관 촬영을 시행하니 두 개의 동맥류가 발견됐고 입구가 모두 넓어 백금 코일을 동맥류 내로 집어넣는 색전술보다는 수술로 결찰하는 방법이 적합한 것 같았다. 병의 자연 경과와 치료 방법 등에 대해 설명하고 치료 여부를 결정하라고 했다. 한참 생각하시더니 "가을 추수가 끝나면 치료하겠다"면서 퇴원했다. 소견서를 적고 진료 자료를 준비해 드리라고 간호사에게 말한 후 생각해 본다.
그분은 우리 병원에서 치료받고 싶다고 했다. 그렇지만 자식들은 달랐다. '부모가 수술을 받는다고 하는데 서울의 최고 병원에서 수술을 받도록 해 드려야 체면이 서고, 그만큼 할 수 있는 능력을 가진 사람으로 인정되지 않을까' 하고 생각했을지 모른다. 게다가 만에 하나 우리 병원에서 치료를 받다가 문제라도 생기면 '아, 서울의 병원에서 치료를 받았으면 괜찮지 않았을까?' 하는 후회감과 "그것 봐, 서울의 큰 병원에서 치료를 받도록 하라고 말했는데 듣지 않더니…" 하는 주위 분들의 꾸지람에 대한 우려도 있었을 것이다.
필자가 과거에 연수했던 병원은 인구 30만 명의 도시에 있었지만 세계의 곳곳에서 환자분들이 수술을 받으러 왔다. 본인도 병이 걸렸을 때 우리 병원에서 수술을 받고 치료를 받았다. 그때 몇몇 사람들이 "왜 서울에 가서 수술과 치료를 받지 않느냐"고 물었다. 그때 그 말을 듣고 솔직히 마음이 약간 흔들린 적도 있었지만, 학회를 많이 참석했던 필자는 우리 병원과 서울 병원의 가공되지 않은 치료 결과의 차이가 별로 없었음을 알았기 때문에 우리 병원 주치 교수를 믿고 내 몸을 맡겼다.
비행기는 특수한 훈련을 받은 조종사가 조종할 수 있다. 택시는 평범한 운전사도 운전을 잘할 수 있다. 서울의 택시운전사가 지방의 운전사보다 꼭 운전을 잘한다는 보장은 없다. 지금 많은 환자들이 서울로 가고 있다.
지방 병원에서 치료할 수 있는 병을 가진 환자도, 정말로 서울의 큰 병원에서 치료해야만 하는 병을 가진 환자도 모두 서울로 가고 있다. 그러면 앞으로 지방 병원들은 어떻게 되겠는가?
장자의 내편에 나오는 물고기 이야기로 끝을 맺는다. '샘이 말라 물고기가 모두 땅 위에 드러났습니다. 서로 물기를 뿜어 주고, 서로 거품을 내어 적셔 주지만, 강이나 호수에서 서로를 잊어버리고 사는 것이 훨씬 더 좋습니다.'-장자 제14(14:11)편.
임만빈 계명대 동산의료원 신경외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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