두어 해 전부터 영천 남천내 둔치가 달라지기 시작했습니다. 영천시 서세루(瑞世樓) 남녘, 금호강으로 이어지는 둔치 따라 강변도로가 만들어졌습니다. 기존의 방죽을 다시 쌓고 과수원이며 채전을 모두 허물었습니다. 방죽에 기대어 살던 한두 채의 집과 시설물들도 걷어내고 보니 물길을 에워싼 둔치는 한결 넓어졌습니다. 세월이 흐르면서 남천 둔치는 새로운 공간으로 단장되기 시작합니다. 말끔한 수변공원이 되었지요.
갖가지 운동기구들이 설치되고 매끈둥한 나무 평상도 군데군데 놓여있습니다. 원두막 같은 나지막한 정자도 들어앉았습니다.
요즘 들어 부쩍 늘어난 강변 풍경들이라 할까요. 정부의 4대강 사업의 산물들입니다. 큰 강줄기에는 대형 보(洑)가 설치되고 샛강변에는 자전거 길이 만들어졌습니다. 흐르는 큰 강줄기 옆으로 새로이 작은 개울의 물길도 만들어 냅니다. 시멘트 바닥에 홈을 파고는 돌을 쌓아 인위적으로 멋을 낸 수로와 같은 개울인데 늘 물이 말라있어 언제 제 역할을 할 지는 알 수 없습니다. 꽤 넓은 강을 가로질러 건널 수 있는 징검다리가 운치를 더하고 산중에서 옮겨온 미끈한 소나무들이 낯선 경관을 메꾸기도 합니다.
그 변화를 바라보는 나는, 오래 전 앞 들녘이 경지정리되던 때의 감정으로 되돌아가곤 합니다. 실선처럼 꼬불꼬불 이어진 정겨운 논두렁이 사라져 가는 애틋함을 내 마음 한 켠에 묻어두어야 했었으니까요.
급속한 산업화와 함께 점차 황폐해져 가는 강을 걱정하였지요. 유장하게 흐르던 맑은 낙동강이 한때는 오염의 대명사처럼 여겨지기도 하였으니까요. 남천도 홀대를 받기는 마찬가지였습니다. 한동안 거리를 두고 살아온 둔치가 요즘엔 한결 가까워졌습니다. 한껏 겉치장을 하고 회향(回鄕)한, 마치 이방인 같기도 하고 조금은 낯설기도 하지만 그래도 강가에는 때맞게 야생 풀꽃들이 피어납니다. 왜가리며 청둥오리 떼, 온갖 날짐승들이 노닐다 갑니다. 거기다 편의시설까지 갖추어 있으니 즐겨 찾는 사람들로 넘쳐 납니다. 뛰는 사람, 걷는 사람, 자전차를 타는 사람, 강아지를 산책시키는 사람, 유모차를 끌고 나온 젊은 부부들, 혹은 평상에 둘러 앉아 이야기 보따리를 풀어내는 아낙네들, 책가방을 둘러메고 돌다리를 폴짝폴짝 건너뛰는 아이들…. 그저 바라만 보던 강변이 이제 누리는 자연공간으로 변화된 듯하여 위안이 됩니다. 우리네 삶이 그만큼 넉넉해진 것이니까요.
점차 도심 깊숙한 곳에 자연공간이 늘어나고 있습니다. 우리의 살림살이가 빠듯했을 때는 한 뼘의 땅도 결코 빈 땅으로 내버려두지 않고 애써 갈고 씨를 뿌렸습니다. 개인은 물론 나라의 살림이 넉넉지 못한 때는 공공의 자연공간까지 생각할 여력이 없었지요. 공원이나 체육시설이 어디 흔했으며 자동차 도로와 구분된 인도나 자전거 전용도로를 상상이나 할 수 있었던가요.
일부 문화 행정가는 도시의 주거면적에서 공원이 차지하는 비중에 따라 문화 선후진국으로 구분하기도 합니다. 그런 기준으로 본다면 넓은 수변공원을 비롯하여 마을 정자와 주민회관 등 많은 공유 공간을 가진 우리네는 이제 선진국 대열에 들어간다고 단언해도 되는 걸까요?
눈길을 잠깐 강 밖으로 돌려봅니다. 시원스레 뚫린 도로망은 격자 모양을 이루어 나갑니다. 도시 가로와 건축물이 해가 다르게 빼어난 미관을 선보입니다. 농촌 마을의 지붕들도 형형색색 취향을 달리합니다. 우리는 그리 불만족스럽지 않는 사회 기반 시설을 갖추고 삽니다. 좋은 사회적 그릇을 가진 것이지요. 그런데도 공동 우물가나 동구 밖 정자나무 그늘 아래서 이웃을 만나고 담소를 나누던, 비좁게 살던 시절에 비하면 왠지 쓸쓸하고 무정하고 고단하다는 생각이 듭니다. 오히려 마음은 더 가난하고 옹졸해지는 것만 같습니다.
이제는, 잘 갖추어진 물리적인 세계의 풍요 위에 소담하게 올려놓을 위로와 희망 프로그램들이 뒤따라야겠지요. 배려와 나눔 같은 덕목들은 더더욱 빠뜨릴 수가 없지요. 진정 살맛나는 관계의 미를 수북하게 담아내는 넉넉한 그릇으로 쓰여진다면 참 좋겠습니다.
김정식/담나누미스토리텔링연구원장
댓글 많은 뉴스
권영세 "이재명 압도적 득표율, 독재국가 선거 떠올라"
이재명 90% 득표율에 "완전히 이재명당 전락" 국힘 맹비난
이재명 "TK 2차전지·바이오 육성…신공항·울릉공항 조속 추진"
이재명, 민주당 충청 경선서 88.15%로 압승…김동연 2위
전광훈 "대선 출마하겠다"…서울 도심 곳곳은 '윤 어게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