실도랑을 사이에 두고 경상도와 충청도로 갈라진 '임곡리'.
강 씨와 장 씨가 집성촌을 이루며 대대로 함께 어울려 살아가고 있는 곳이지만, 행정구역은 경북 상주시 화남면 임곡리와 충북 보은군 마로면 임곡리로 나뉘어 있다.
임곡리는 비룡산과 천탁산, 삼황산과 구병산, 그리고 저 멀리서 달려오는 듯한 먹산이 사방으로 둘러쳐져 있다. 이 마을은 동학 교도들의 한이 서려 있고, '십승길지'(十勝吉地)의 한 곳으로 알려질 만큼 역사가 오롯이 흐르고 바깥 세상과 단절된 듯한 곳이다. 그러기에 경상도와 충청도를 따지지 않고 함께 어우러져 삶을 일궈왔다. 하지만 세월만큼이나 마을의 모습도, 마을 사람들의 인심도 많이 달라지고 있다.
◆산신제, 마을 대소사 함께해 온 임곡리 사람들
해마다 정월 보름이면 양 지역사람들은 동네 앞 산꼭대기에 올라 한 해의 평온과 풍년농사를 비는 산신제를 함께 지내고, 가뭄이 들면 기우제도 함께 지낸다. 물론 제주와 유사도 지역 구별없이 뽑고 음식도 공동으로 준비한다.
경상도 쪽 마을이장을 지냈던 전해웅(74) 씨는 이쪽 저쪽에서 혼사라도 있을 경우 이 마을 최대 잔치로 받아들여 양쪽 혼주들이 서로 다른 혼인 풍습을 논의하고 세심한 신경을 썼던 기억을 들려준다.
전 씨는"내가 이장을 처음 맡을 때만 해도 그저 가까운 곳에 나가 장보기를 하고 아이들 학교도 보내고 그랬지. 시골 사람들이 뭐 행정구역을 아는가? 마을 대소사를 챙기고 이웃들간의 사소한 다툼을 해결해 주는 일이 이장의 역할이었지"라고 했다.
마을 사람들은 "우리 동네는 예부터 친'인척들이 살았던 곳이기 때문에 행정구역이 나누어졌다고 사람의 정까지 나누어지지는 않을 것"이라고 말한다.
두 지역이 생활권은 하나이지만, 같은 집에서 전화 지역번호를 별도로 사용하는 재미있는 현상도 있다.
경북지역 김연식(81'여) 씨 집에는 전화가 두 대다. 한 대는 대전과 충청도 쪽으로 나가 있는 자식, 친'인척들과 통화하기 위한 충청도 전화이고, 또 다른 하나는 경상도 지역 농협과 우체국 등 생활에 필요한 경상도 전화이다.
경상도 쪽 장난수(55) 이장은 "행정구역이 달라서 생기는 불편이나 불만은 없다"고 말했다.
상주 화남면 소재지에서 마을로 들어오는 진입로가 없었던 1980년대 중반에는 양쪽 마을 주민들이 길을 뚫는데 함께 나섰다. 주민들은 도로 부지에 접한 땅을 선뜻 내놓았고, 땅이 없는 주민들은 보리쌀 두어 말로 힘을 보탰다. 하지만 지금도 길이 가팔라 큰 차량은 보은 쪽으로 돌아와야 한다.
"행정구역이 다른 게 요긴하게 쓰일 때도 많았어요. 왜정 때 징집 나오면 도랑 건너 몸을 숨겨 피할 수 있었고, 밀주나 땔감용 장작 불법 간벌 단속 때에도 술통과 장작을 개천 너머로만 옮겨 놓으면 그냥 넘어갔다고 들었으니까요."
◆"경상도서 잠자고 충청도 물 마신다"
수 년 전 임곡리에서는 "잠은 경상도에서 자고 물은 충청도 물을 먹는다"는 말이 생겼다. 지난 2004년 상주시가 경상도쪽 주민들을 위해 설치한 간이상수도가 충청도 쪽 지하에서 끌어올린 원수(源水)를 사용하면서부터이다.
그런데 정작 충청도쪽 주민들은 관정을 파지 못해 계곡에서 내려오는 자연수를 마시고 있으니, 은근한 불만이 생기고 있다는 것이다.
임곡리 마을에는 60년대 중반까지만 해도 경북지역 인구가 600여 명, 충북지역 인구가 200여 명이나 됐고 학생 수도 200명이 넘을 정도였다. 그러나 지금은 상주시 임곡리에 30여 가구 50여 명, 보은군 임곡리에 10여 가구 20여 명에 불과해지면서 사람들 마음 한 구석에 조금씩 반목과 경쟁이 고개를 내미는 일이 생겨났다.
노인회관이 대표적인 예이다. 마을 한 가운데에는 상주시가 지은 노인회관이 자리잡고 있다. 수 년간 이 회관은 경북이나 충북쪽 구별 없이 노인들의 쉼터였다.
하지만 충청도쪽 노인들이 마로면을 찾아 노인회관 신축을 요구했고, 상주 노인회관과 얼마 떨어지지 않은 언덕배기에 노인회관을 세운 것.
전해웅 전 이장은"그후로는 저쪽 노인네들이 조금씩 이쪽 발길을 끊는거야. 마을 분위기가 점점 이러니 이장 노릇도 힘들어 질 수밖에…."
전 전 이장은 그래서 몇 해 전 지금의 젊은 이장에게 마을 일을 맡겼다. 충청도쪽 마을 이장인 장재원 이장도 58세이니 젊은 이장들끼리 마음을 합쳐 옛날처럼 오손도손 살아가길 바라고 있다.
◆지방화 바람 이후 다시 화합하는 마을
수 백 년을 함께해 온 이웃과의 정을 갈라 놓고 있는 작은 실개천 하나가 요즘 들어 더 넓게 보인다. 이웃사촌으로 길흉사를 내 집안일처럼 거들었던 이웃들이 이제 조금씩 서먹서먹해지는 것 같아 때로는 가슴이 먹먹하다.
속절없이 가버린 세월이 아쉬운 듯 먼산을 바라보고 선 장난수 이장 얼굴에는 여느 이장들에게 느낄 수 없는 특별한 애환이 스며 있다. "그 세월을 어찌 말로 다해. 도랑 하나를 사이에 두고 '경상도 사람' '충청도 사람'하며 살아왔지. 사립문만 열면 부딪치는 이웃이었는 걸…."
그런데 문만 열면 보이는 집들이지만 행정구역이 달라 행정서비스에 차이가 생겨나고 있다. 몇 해 전 상주시가 이 마을에 간이상수도를 놓자, 이번엔 보은군에서 충청 사람들을 위해 간이상수도 공사를 해주었다.
경북 쪽 마을 장진복(81) 씨는 "작은 마을에 노인회관이 두 개나 왜 필요하냐"며 "공연히 지역마다 경쟁적으로 건물을 지어주고, 도로를 닦아주면서 마을 사람들의 인심을 갈라놓고 있다"고 했다.
특히 충청 쪽 주민들은 "예부터 이곳은 보은군에 속했기 때문에 충북으로 와야 한다"고 입을 모은다.
하지만 경상도 사람들은 "이곳에서 충북쪽 마로면 소재지보다 화남면 소재지가 더 가깝고 가구 수도 더 많아 경북쪽으로 합쳐야 한다"고 반박한다.
그러면서도 양쪽 사람들은 "양 지자체가 경쟁적으로 사업을 벌일 것이 아니라 서로 협력해 마을 사람들이 경상도와 충청도를 왕래할 수 있도록 해야 한다"고 희망한다.
주민들의 이런 희망 때문인지 2년 전 마을 아래 쪽으로 새 다리를 놓을 때는 별 다른 잡음이 없었다고 한다. 마을 안으로 흐르는 도랑물이 넘쳐 경상도 쪽 집이 침수되는 등 수해가 나자 보은군에서 사업비를 들여 다리를 새로 놓고 충청도 쪽 논밭을 사들여 팔각정과 새 도로를 닦아 놓은 것이다.
◆정감록 십승지, 동학교도 한 서린 천장지지
조선시대 예언서인 정감록에는 십승지(十勝地)에 관한 이야기가 나온다. 나라 안에서 피란(避亂)하기 좋다고 전하는 열 군데의 지방이란 뜻이다. 예언자 격암 남사고(南師古)는 십승지를 '지세가 깊숙하여 병란이 들어오지 않으므로 대대로 평안을 누릴 수 있는 곳'이라고 했다. 십승지는 산세가 험한 경북 지역에 주로 몰려 있다. 한강 이북에는 한 군데도 없다. 우리 민족이 예부터 오랫동안 북방민족들의 침략에 시달려 왔던 까닭이다.
서울에서 고속도로로 상주까지는 2시간 남짓이며, 화령을 지나 보은 방면으로 30여 분 산길을 가면 임곡리라는 입간판이 나온다. 구병산을 병풍으로 시루봉을 앞에 두고 음양오행의 완벽한 조화를 이룬 산과 들로 둘러싸인 곳이다. 한때는 소달구지가 길게 행렬을 이루며 번성했던 마을이지만, 지금은 집터로 사용되던 곳들이 모두 밭으로 변했다. 주민들은 표고버섯과 율무 재배를 주업으로 삼고 있다. 간간이 충남 금산 사람들이 땅을 빌려 인삼을 재배하고 있다.
20여 년째 버섯을 재배하는 김용덕(67) 씨는 "이곳에 숱한 도인들이 들어와 수도를 했지만 워낙 지기(地氣)가 강해 감당하지 못하고 떠나갔다"고 말했다.
그래도 현재 살고 있는 주민들은 나름대로 '수행의 길'을 찾아 정착한 사람들이란다. 도심에서 멀리 떨어져 있어 겨울철 은하수를 볼 수 있을 정도로 대기가 맑다. 구병산 천문대는 '아폴로 박사' 조경철 씨가 초대 천문대장이었다.
임곡리는 동학교도들의 한이 서려 있는 곳이기도 하다. 동학군 지도자로 활약했던 강선희의 묘가 있다. 동학인이었던 선조가 100년 전 이곳으로 피신해 온 이후 지금까지 터를 잡아 산다는 전해웅(74) 씨는"6'25 무렵에는 외지인의 유입이 거의 없어 윗마을 장 씨와 아랫마을 강 씨가 겹사돈을 맺어야 할 정도였다"며 "마을이 길지(吉地)라서 이 마을 출신들은 6'25 때나 월남전에서 죽은 사람이 한 사람도 없다"고 자랑했다.
속세를 떠난 심신수행으로 외부와 접촉을 꺼리는 사람들, 하늘이 숨겨놓은 명당이라 하여 천장지지(天藏之地)로 불렸던 임곡리. 그러나 최근에는 채석장이 생겨나서 십승지가 자리잡은 명산들이 마구 훼손되고 있다. 천혜의 신비와 명산이 빚어놓은 명당의 역사가 지워지는 것 같아 안타깝다.
상주'엄재진기자 2000jin@msnet.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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