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신문

[데스크칼럼] '섀도 캐비닛'

'섀도 캐비닛'(shadow cabinet)은 야당이 대선을 앞두고 정권을 잡았을 경우를 예상, 미리 내각을 구성해서 국정 운영의 청사진을 보여주는 '예비 내각'이다.

역사상 가장 치열한 경쟁이 펼쳐지고 있는 미국 대선을 앞두고 공화당 대선 후보인 롬니 전 매사추세츠 주지사는 섀도 캐비닛 구성에 본격적으로 나섰다. 롬니의 섀도 캐비닛에는 짐 탤런트 전 상원의원과 존 리먼 전 해군장관(국방장관), 조 리버먼 상원위원, 퍼트레이어스 CIA국장(국무장관), 잭 킥 전 합참부의장(백악관 국가안보보좌관) 등이 들어가 있는 것으로 알려지고 있다. 유권자로서는 다음 정부의 면면을 미리 예상하고 표를 던지게 된다는 점에서 참 친절한 민주주의다. 6일 민주당 대선 후보로 확정되는 오바마 현 대통령은 굳이 섀도 캐비닛을 구성할 이유가 없다.

우리와 다른 정치 체제를 택하고 있는 중국 역시 오는 10월 중순으로 예정된 당 대표자회의를 통해 시진핑(習近平) 국가부주석을 중심으로 한 제5세대 지도부를 출범시킬 예정이다. 중국 언론에 의해 연일 하마평에 오르내리는 리커창(李克强)'왕치산(王岐山) 부총리 등 당 정치국 상무위원 후보들은 사실상 시진핑 체제의 섀도 캐비닛과 다름없다. 그들은 20년 이상 중앙과 지방정부에서 주요 보직을 맡아 검증 과정을 거쳤다. 보시라이(薄熙來) 전 충칭시 당서기는 막바지 검증 과정에서 낙마했다.

우리나라에서는 1987년 직선 대통령 시대가 열렸지만 한 번도 '섀도 캐비닛'을 구성하거나 발표한 적이 없다. 대통령제를 채택하고 있는 우리도 상식적으로는 야권 대선 주자였던 김대중 전 대통령이나 이명박 대통령의 경우, 예비 내각을 구성, 유권자들에게 미리 선을 보이는 것이 정상적인 득표 전략이었다.

다만 섀도 캐비닛을 공개하지 않았더라도 우리는 DJ와 이 대통령 주변에 포진해 있던 측근 인사들이 집권 후 요직을 차지하리라는 예상을 했고 실제로 그렇게 됐다. 정권 재창출에 성공한 김영삼, 노무현 전 대통령의 사정도 마찬가지였다. 정권 교체의 역사가 짧은 우리나라에서는 국민의 정부에서 참여정부로 같은 진영이 재집권하면서도 정권 교체에 버금가는 권력 이동과 인적 교체가 있었다.

박근혜 새누리당 대선 후보가 당선될 경우, 보수 정권이 이어지는 것이지만 이명박 정부와의 인적 연속성은 극히 제한적일 수밖에 없을 것이다.

유권자들은 이 같은 경험에 따라 대통령 후보 주변에 포진해 있는 인적 네트워크를 보면서 다음 정부를 예상한다. 김종인, 안대희, 홍사덕, 최경환 등이 박 후보가 당선됐을 경우, 차기 정부를 구성하는 핵심 인사가 될 것이라는 예상은 그래서 가능하다.

박 후보 스스로 섀도 캐비닛과 관련, 후보로 확정된 후 기자들과 만나 "사람을 찾거나 발굴하는 것이 저의 일과에서 굉장히 중요하고 그래서 항상 찾고 있다"고 말했다. 영남과 호남 등 지역뿐만 아니라 보수와 진보, 혹은 과거 정권에 몸담았던 사람까지도 능력이 있다면 가리지 않고 쓰겠다는 것이 박 후보의 생각인 것 같다. 나쁘지는 않지만 섀도 캐비닛을 공개하지는 않겠다고 했다.

경선을 치르고 있는 민주통합당이 섀도 캐비닛을 구성할지 여부는 알 수 없다. 민주당은 1위를 달리고 있는 문재인 후보가 후보로 확정될 경우에는 이해찬 대표와 박지원 원내대표가 지원한 '3각 체제'가 완성된다는 측면에서'친노'(親盧) 세력을 중심으로 섀도 캐비닛을 완성할 수밖에 없는 구조다.

새누리당과 민주통합당의 경우, 집권 후의 내각과 정부의 모습을 짐작하는 것이 불가능하지는 않다.

야권의 유력 대선 주자인 안철수 서울대 교수의 경우는 황당하고 무례하기 짝이 없다. 그가 아무리 뛰어난 능력을 갖고 있는 지도자라고 하더라도 자신의 국정 철학을 뒷받침할 수 있는 세력이 없다면 단 하루도 국정을 운영할 수 없을 것이다. 대한민국은 '안랩'처럼 단순하지 않다. 역대 정권마다 인사 논란이 벌어지고 있다는 사실을 감안한다면 지금 시점에서 섀도 캐비닛이 가장 필요한 대선 주자는 안 교수다.

대통령이 직접 임명하는 자리만 장'차관과 공기업 사장 등 수백 개가 넘는다. 도대체 국민들에게 무엇을 보고 선택하라는 것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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