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신문

[동해의 窓] 상처만 남긴 포항화력발전소

#1. 시골에서 어렵게 도시로 나와 대학까지 졸업한 백수 씨는 취업경쟁에서 낙오한 채 귀향해 농사일을 돕고 있었다. 그러던 중 마을에 어마어마한 규모의 화력발전소가 들어선다는 소식에 귀가 번쩍 뜨였다. 발전소가 들어서면 마을 사람을 우선 채용한다는 말이 파다했기 때문에 자신도 이제 번듯한 직장에 다닐 수 있을 것이라는 기대감에 들떠 있었다. 그러나 백수 씨의 장밋빛 꿈은 그리 오래가지 못했다. 발전소 건립이 백지화됐기 때문이었다. 백수 씨는 다시 실의에 빠져 있다.

#2. 평소 환경 문제에 관심이 많았던 초록 씨는 자신이 살고 있는 지역에 화력발전소가 건립된다는 소식을 듣고 화들짝 놀랐다. 화력발전소에서 사용되는 석탄이 이산화탄소 배출의 주범이라는 사실을 누구보다 잘 알고 있기에 발전소 건립 반대에 적극 뛰어들었다. 마침내 발전소 건립 백지화를 이끌어 내는 데 성공했다. 초록 씨는 자신의 노력이 결실을 거둔 것에 크게 만족하고 있다.

위 두 장면은 포항 사회를 1년 넘게 갈등으로 몰아갔던 포항화력발전소 유치를 둘러싼 찬반 양측의 입장을 꾸며본 것이다.

포항시는 건설의향서를 제출했던 MPC코리아홀딩스가 의향서 철회를 통보해옴에 따라 더 이상 화력발전소 건설을 추진할 수 없게 됐다고 지난달 29일 공식 선언하면서 이 문제는 일단락됐다.

찬반을 떠나 이를 지켜본 포항시민들의 마음은 착잡하다. 시민들은 7조원 규모의 사업을 추진하면서 주먹구구식 행정을 펼친 것에 대해 포항시에 책임을 물어야 한다는 지적이다. 행정을 제대로 감시하지 못한 채 끌려다니며 뒷북을 친 시의회에 대한 비판의 목소리도 그 어느 때보다 높다.

이제 발전소 건설은 없던 일이 됐다. 남은 것은 행정의 잘잘못을 가리는 것과 주민 갈등 치유다. 포항시는 사업을 추진한 해당 부서에 대한 철저한 사무감사를 통해 무엇이 잘못됐는지를 밝혀내야 할 의무가 있다. 시의회도 오락가락했던 자신들의 행보에 대한 자체 반성과 함께 의회 차원에서 진상조사를 실시해 시민들을 납득시켜야 할 책임이 있다.

이와 함께 당장 장기면 주민들의 분노를 어떻게 가라앉힐지도 해결 과제다. 포항시는 먼저 장기면 주민들을 포함한 포항시민들에게 공식 사과함으로써 갈등 치유에 나서야 한다. 이어 장기면 중장기 발전계획 수립에 대한 의지 표명으로 낙후 지역에 대한 희망을 제시해야 한다.

행정이 여론 수렴이라는 과정 없이 독단으로 흐를 경우 그 폐해는 고스란히 시민들의 몫으로 되돌아온다는 평범한 진리를 이번에 뼈저리게 깨달은 만큼 다시는 실수를 되풀이하지 말아야 할 것이다. 이상원기자 사회2부 seagull@msnet.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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