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0~40년 전 우리는 외국 음악을 많이 들었다. 1970년대에 윤형주와 송창식의 포크 가요가 대중의 정서를 파고들 무렵 외국 번안 가요도 함께 인기를 끌었다. 1980년대는 록과 팝 음악이 득세했다. 조용필과 이용, 전영록이 음악 시장의 한 축을 차지했지만 마이클 잭슨과 마돈나, 듀란듀란의 노래도 라디오와 레코드 가게에서 끊임없이 흘러나왔다.
1990년대 이후 사정이 바뀌었다. 김건모와 신승훈, 서태지와 아이들, H.O.T의 노래가 열광적인 반응을 얻으면서 외국 음악은 점차 밀려났다. 그리고 소녀시대와 슈퍼주니어로 상징되는 아이돌 그룹의 시대가 도래했고 이들의 음악은 K-팝이 되어 세계적인 주목을 받게 됐다. K팝의 국제화는 과거 선진국 중심의 음악 유통 구조가 인터넷과 SNS의 등장으로 세계화되고 평등화된 세상에서 우수한 콘텐츠로 무장한 결과이다. 외국 음악을 수입하는 처지에서 우리 음악을 수출하게 됐으니 대중음악에서도 경천동지할 만한 변화가 일어난 것이다.
그렇다 하더라도 싸이의 '강남 스타일'이 세계적인 성공을 거두고 있는 것은 놀라운 일이다. '강남 스타일'은 유튜브를 통해 뮤직 비디오가 공개된 지 50일 만에 조회 수 1억 건을 넘었고 싸이는 여세를 몰아 미국의 세계적인 음반사와도 계약을 맺었다. 싸이의 성공은 K팝 주자들이 미국 무대에 구애하는 형태의 진출을 시도한 데 비해 간청을 받아들인 형식이라는 점에서도 차이가 있다. 아이돌 그룹이 멋진 외모와 화려한 춤을 구사하는 댄스 가수인 데 비해 싸이는 잘생기지 않은 외모와 우스꽝스러운 춤을 추는 댄스 힙합 가수라는 점도 구별된다.
싸이는 2000년 발매된 1집 앨범에서 '새'를 들고 나올 때부터 '엽기 가수'로 통했다. 자신을 희화화하는 가사와 막춤에 가까운 독특한 춤으로 자신만의 스타일을 고수하며 다른 가수와 뚜렷이 차별화됐다. '강남 스타일' 역시 울퉁불퉁한 몸매로 '말춤'을 추며 촌스럽고 멋지지 않게 보인 점이 먹혀들었다. '강남 스타일'의 뮤직 비디오는 가볍고 재미있으면서도 부의 상징인 강남을 비트는 요소를 담고 있다. 거기에다 중독성 강하고 세련된 음악이 싸이의 돌풍을 가능하게 했다. 우리 대중음악은 1990년대 이후 국내 시장을 장악하면서도 힙합 등 세계 음악의 조류를 끊임없이 받아들이면서 발전시켜왔다. '강남 스타일'이 단순히 재미만 있는 것이 아니라 음악적 공감까지 얻는 것도 그러한 결과라고 할 수 있다.
그 때문에 싸이의 성공은 음악적 측면에서도 주목할 필요가 있다. 과거에 비틀스는 서정적인 멜로디에 삶과 사랑, 평화를 노래했고 마이클 잭슨과 마돈나는 비트가 있는 리듬에 개인적 희망이나 사회적 메시지를 실었다. 싸이를 비교 대상이 될 수 없는 비틀스나 마이클 잭슨과 비교하자는 것이 아니라 과거의 음악적 경향이 그랬다는 것이다. 싸이의 음악은 주로 개인과 현실의 궁상스러움을 직설적이면서도 재미있게 표현하고 있다. 1996년 세계적인 인기를 끌었던 스페인 그룹 로스 델리오의 댄스곡 '마카레나'가 편안하고 흥겨웠다면 '강남 스타일'은 더 재미있는 음악이다. 그래서 '강남 스타일'이 값싼 느낌을 주는 'B급 문화'의 음악적 출현으로 분석되기도 하지만 전에는 음악에 재미를 입힌다는 발상을 거의 하지 않았던 점에서 싸이의 독창성이 돋보인다고 할 수 있다.
'B급 문화'는 요즘 문화의 주류적 현상이기도 하다. 막장 드라마와 개그맨 유세윤이 속한 그룹 UV가 부른 '이태원 프리덤', 무한도전 출연 개그맨들이 부른 노래 등이 인기를 얻거나 '그레이의 50가지 그림자'라는 성애 소설이 세계적인 붐을 일으키는 것도 그러하다. 전 세계를 휩쓰는 경기 침체로 팍팍한 삶에 지친 사람들이 탈출구로 'B급 문화'에 빠지게 된다는 분석이 설득력을 얻고 있다.
싸이는 이처럼 가벼운 문화를 소비하는 시대에 자신만의 독창적인 방식으로 공감을 얻으면서 세계에 얼굴을 내밀게 됐다. 세계인들에게는 새로운 싸이의 음악이 한류의 지평을 넓힌 점도 분명하다. 미국 시장에 서게 된 싸이의 음악적 발전과 성공이 어디까지 뻗어나갈지 흥미를 갖고 기대하게 된다. 아이돌 그룹과 싸이뿐만 아니라 뛰어난 가창력으로 진지하게 노래하는 가수들의 한류 붐도 이어졌으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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