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34년 2월에 발매되었던 유행가 '처녀총각'(범오 작사'김준영 작곡'콜럼비아 40489). 이 한 곡으로 강홍식의 위상은 배우 경력을 가진 인기 레코드 가수로 확고하게 자리를 잡았습니다. 이 노래는 당시 극단 단성사의 음악 담당이었던 김준영의 남다른 센스와 솜씨로 만들어졌습니다. 서울 국일관 뒤의 어느 여관에서 극단 멤버들이 술을 마시며 시간을 즐길 때 술에 취해 거나해진 강홍식이 콧노래로 '흥타령'을 불렀습니다. 이를 너무나 재미있게 들었던 김준영이 즉시 악보에 옮겨서 '처녀총각'이 탄생하게 된 것입니다.
봄은 왔네 봄이 와 숫처녀의 가슴에도
나물 캐러 간다고 아장아장 들로 가네
산들산들 부는 바람 아리랑타령이 절로 난다
흥~~~~~
새싹이 돋고 훈풍이 볼을 간질이는 삼사월 봄날, 은근하고 구수한 전통적 색조가 물씬 풍겨나는 이 노래를 듣거나 부르노라면 그 봄이 더욱 흥겹고 즐거워지는 효과가 물씬물씬 솟구쳐 오릅니다. 이 음반은 무려 10만 장 넘게 팔려나갔다고 하니 참으로 엄청난 매상이 아닐 수 없습니다. 옛 가요 '처녀총각'은 현재 남북한을 가리지 아니하고 우리 민족이 함께 즐겨 부르는 노래로 분단을 뛰어넘은 몇 안 되는 대표적 가요 작품 중 하나입니다. 당시 어느 잡지사에서 조사한 인기투표에서 강홍식은 서열 3위에 올랐습니다.
1934년 이후 강홍식의 대표곡으로는 '이 잔을 들고'(김안서 작사'신진 작곡'콜럼비아 40491) 등 10여 곡이 넘습니다. 작사가로서는 '범오'란 예명을 썼던 시인 유도순, 시인 김안서 등과 주요 콤비였습니다. 작곡가로서는 주로 김준영과 단짝을 이루었습니다.
참으로 씩씩한 곡조와 경쾌한 테마로 구성된 '먼동이 터 온다'(범오 작사'김준영 작곡'콜럼비아)는 강홍식의 대표곡 목록에서 결코 빠뜨릴 수 없습니다. 이 노래는 동해안 작은 어촌의 아침풍경을 민요풍으로 만든 네 박자 곡입니다. 만선의 기쁨을 안고 돌아오는 남정네와 그들을 기다리는 포구의 여인네들을 다룬 아름다운 한 폭의 서정적 풍경과도 같습니다. '청춘타령'(유도순 작사'김준영 작곡'콜럼비아 40610)도 대표곡 목록에 반드시 넣어야 합니다. 강홍식이 남긴 노래들 중 신민요 계열의 작품이 상당수입니다. 그것은 강홍식의 구성진 창법과 가장 잘 배합이 되었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1930년대 후반으로 접어들면서 강홍식의 노래는 차츰 대중들의 관심에서 멀어지게 됩니다. 전문 가수들의 활동이 뚜렷하게 강화되면서 연극, 영화 등과 장르를 넘나드는 가수들은 현저히 설 자리를 잃어가게 됩니다. 게다가 트로트 음악이 전체 가요계를 휩쓰는 풍토 속에서 강홍식의 실실이 늘어지는 듯한 타령조와 전통적 색조가 느껴지는 창법은 비정하게 주변부로 밀려나고 말았던 것입니다. 세월에 떠밀리게 되면 그 대세를 어찌할 수 없이 받아들이고 울며 겨자 먹기로 감당해야 하는 것이 인생의 과정이 아니겠습니까?
인기의 중심에서 멀어진 가수 강홍식은 연극영화계로 다시 복귀를 시도하지만 그곳에도 이미 자신이 설 자리는 없었습니다. 남북이 분단된 직후 고향인 평양으로 떠나간 강홍식은 당시 아무런 콘텐츠도 갖추지 못한 궁벽한 북한 영화계의 개척자로서 새로운 꿈과 열정을 펼치게 되었습니다. 그는 북한 영화의 기초를 닦아놓고 1971년 세상을 떠났습니다. 평양의 애국열사릉에 그의 무덤이 있다고 합니다.
영남대 국문학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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