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신문

[서명수의 집중 인터뷰] 안택수 신용보증기금 이사장

"5년 임기보장 최장수 이사장…일복이 남은 것 같아 다행스러워"

신용보증기금은 2008~2009년 글로벌 금융위기 극복 과정에서 중소기업 지원 금융기관으로서의 역할을 톡톡히 해냈다. 신보가 선제적이고 과감한 지원을 하지 않았다면 우리 경제는 지금처럼 빠르게 경제위기에서 벗어나지 못했을지도 모른다. 당시 중소기업에 대한 대출 순증액 21조1천억원 가운데 41.7%에 이르는 8조8천억원이 신보의 보증으로 이뤄졌다. 반면 은행권은 리스크를 우려, 2조5천억원밖에 대출 규모를 늘리지 않았다.

신보의 이 같은 과감하고 선제적이고 충분한 중소기업 대출 지원은 안택수 이사장 체제하에서 가능했다. 안 이사장은 "금융위기 상황에서 우량 중소기업을 살리는 길은 과감하고 선제적으로 충분하게 지원하는 것이 최선"이라면서 관료 출신들이 정부가 시키는 대로 해왔다면 나는 정치인이었기 때문에 정부에 대해 중소기업의 목소리를 대변해서 관철시킬 수 있었다"고 말했다.

2008년 7월 취임 후 3년의 임기를 마친 안 이사장은 1년 임기를 연장받은 데 이어 올 7월 다시 1년을 더 보장받아 36년 신용보증기금 역사상 최장수 이사장 기록을 갈아치우고 있다. 그의 임기는 내년 7월까지다. 악화되고 있는 세계경제 상황을 예의 주시하면서 재발할지도 모를 경제위기 상황에 대비하고 있는 안 이사장을 5일 만났다. 그는 "일복이 남아 있는 것 같아서 개인적으로도 다행스럽게 생각한다"고 말했다.

그는 금융기관 출신도 경제관료 출신도 아닌 정치인이 신보를 중소기업 지원의 첨병 역할로 확실히 자리 잡을 수 있도록 한 비결에 대해 3선 국회의원으로서 의정활동을 하면서 국회 재정경제위원장을 지내는 등 무려 7년 동안 재경위에서 활동한 경력을 내세웠다. 경제전문가라고는 할 수 없어도 준(準)전문가는 된다는 것이다.

안 이사장은 남은 임기 동안 "그동안 벌여놓은 사업들을 잘 마무리하고 혹시나 올지도 모를 제2의 경제위기에 대비해 나가는 것이 가장 중요하다"며 "새로운 욕심을 부리지는 않을 것"이라고 말했다.

-신보는 '미래비전 2020'을 통해 공사로의 전환을 추진하고 있는 것으로 알고 있다.

"'비전 2020'은 지난해 12월 신보의 미래전략을 수립하고자 일반직원과 노조 대표까지 참여시킨 태스크포스(TF)가 만들어 낸 전략이다. 주요 내용은 '기업이 행복한 세상, 함께 가는 Value Creator'를 중장기 비전으로 공사형 공기업으로 발전시켜 나가자는 것이다. 신보는 설립하면서부터 정부가 출연하는 기금으로 중소기업을 지원하도록 돼 있다. 그래서 인사와 예산 및 사업 영역에서 정부의 입김이 너무 세다. 신보를 공사로 바꾸면 인사와 예산 사업 등 세 가지 분야에서 숨통이 트일 수 있고 보다 자유로울 수 있다. 공사가 된다고 해서 중소기업 지원이라는 신보의 기본 성격이 바뀌지는 않는다. 정부가 정책적으로 수용하기를 희망하는 부분은 할 것이다. 다만 예산 편성 과정과 인사 및 사업 추진 영역에서 자주성과 자율성을 갖게 될 것이다. 그래도 금융위기 등이 온다면 정부로부터 막대한 보증재원을 출연받아야 하기 때문에 정부와의 관계는 지금과 큰 차이가 없을 것이다."

-지난 4년의 임기 동안 신보의 가장 큰 변화는 무엇인가.

"우선 금융위기를 빠르게 극복하는 데 앞장섰다는 데 보람을 느낀다. 그다음으로는 보증 심사 방법을 선진화한 것이 가장 두드러질 것이다. 보증 심사를 할 때 미래성장성과 미래가치를 결합한 신개념의 보증 심사 결정 시스템을 도입했다. 이는 과거 실적 중심의 신용도 평가 방식에서 벗어나 기업의 미래가치를 결합시킨 미래지향적 심사 시스템을 구축한 것으로 중소기업이 경쟁력을 갖추고 세계적 강소기업으로 발전하는 데 큰 도움이 될 것이다.

또 중소기업인들에게 직접 혜택이 돌아가는 신상품으로 온라인 '대출장터'를 개설한 것도 주목받을 만하다. 이는 신보의 홈페이지에 기업과 은행이 대출 정보를 교환하고 기업이 가장 유리한 조건의 은행을 선택하도록 하는 역경매 방식의 온라인 대출 방식인데 기업인들에게 큰 인기를 끌고 있다. 기업으로서는 싼 금리 혜택을 보고 은행도 영업비를 절약할 수 있고 신보는 기업 부실을 최소화할 수 있어 3자가 모두 이익이다. 이를 통해 금리가 0.62% 포인트 떨어져 연간 약 2천400억원의 금융비용을 절감시키고 있다.

그 밖에 공심(公心)경영을 통해 보증질서를 확립한 것도 성과다. 이제는 안 되는 보증은 누가 청탁해도 안된다. 나 스스로 취임 이후 직원들에게 보증질서 확립을 강조해왔다. 보증 업무에 있어서 부당한 청탁과 사심을 배제하는 보증질서는 이제 확실하게 확립됐다. 사심이 발동되면 그날로 그 기관은 망한다. 이전에는 안 되는 것도 되는 등 온갖 웃지 못할 일들이 벌어졌던 것이 사실이다. 그래서 장관과 국회의원 지낸 사람이 찾아와서 사정을 하는 일도 있었지만 부탁을 들어주지 않았다. 개인적으로는 미안하기도 했지만 어쩔 수 없었다. 욕하는 소리를 많이 들었지만 초기에 욕을 많이 얻어먹고 나서야 보증질서가 잡혔다."

-이번 태풍 볼라벤으로 피해를 당한 중소기업 지원 방안도 내놓았다.

"신보는 지난 8월 말 태풍과 풍수해로 인한 피해 중소기업에 대해 재해특례보증을 시행하고 있다. 해당 기업들은 기존 보증금액 외에 운전자금과 시설자금을 합해 최대 3억원까지 추가 지원받을 수 있다. 또 피해기업의 보증료 부담도 경감시켜 주고 있다. 특별재난지역으로 선포된 지역에서는 지원 내용이 더 확대될 것이다. 특히 보증료는 0.1%의 최저 보증료만 부담하면 된다."

-신보는 2014년 대구 신서혁신도시로 이전할 예정이다. 이전 준비는 어떻게 되고 있는가.

"개인적으로 대구에서 정치를 한 입장에서 대구에 이전하는 신보의 이전을 준비하고 있어 보람을 느낀다. 대구는 18년째 1인당 GRDP 꼴찌다. 지역 국회의원을 했지만 그 오명을 떨치지 못했다. 그러나 우리 신보가 2014년 대구로 이전하게 되면 대구지역 중소기업 보증지원도 한 단계 레벌업되지 않겠는가. 신보가 대구 경제 활성화에도 이바지할 수 있을 것이다. 특히 신보가 여유자금을 갖고 있기 때문에 지금도 대구은행 등에 지원하고 있지만 대구에 가게 된다면 더 많은 자금을 지원할 수 있을 것이다. 지난 7월 대구은행과 지역경제 활성화 및 지역사회 공헌을 위한 상호협력에 관한 MOU를 맺었다. 실질적인 대구지역 경제활성화에 나설 수 있을 것이다.

또 300여 명의 본사 직원들이 대구로 이사 가게 된다면 지역경제에도 큰 도움이 될 것이다. 정치하면서 제대로 못 한 것을 신보에 와서 하게 돼서 다행이다. 그런 것을 생각하면 기분이 좋다. 대구 신사옥은 지난 6월 착공식을 했다. 예정대로 잘 추진되고 있다."

-지역인재 우선 채용 계획은.

"조만간 대구 이전 기관장 모임을 할 예정이다. 거기에서 확정되겠지만 30% 이상을 지역인재를 채용하겠다는 계획을 세우고 있다. 어제 오늘 대구에서 합동채용설명회도 가졌다. 지역인재뿐만 아니라 이공계 출신과 여성인력 공공기관 인턴 등 사회적 약자의 사회 진출도 적극 지원해 나갈 것이다."

-신용보증제도의 해외 수출에도 성과를 거둔 것으로 알고 있다.

"내가 오고 나서 신보제도의 해외 전수가 늘어났다. 기존에는 경제발전 경험 공유사업(KSP사업)의 일환으로 2007년부터 베트남과 캄보디아 등에 신보제도를 전수하고 있었는데 취임 후 카자흐스탄과 터키, 우즈베키스탄 가나 등으로 지원을 확대하고 있다. 우리나라의 신보제도는 규모도 확실하고 과감하고 위기 상황에서 조기에 신속하게 지원하는 제도다. 그래서 후진 개발도상국에서 우리 제도를 배우려고 하고 있다."

-향후 계획은 있는가.

"원래 지난 7월 연임된 임기가 마무리될 때 우선 쉬겠다는 생각뿐이었다. 그리고는 내가 걸어온 길과 맞는 봉사활동을 찾아볼 생각이었다. 오랫동안 정치도 하고 공직생활을 했으니까 어디 작은 기관 같은 곳에서 봉사를 하고 싶었다. 그런 그림을 그렸는데 한 1년쯤 그 계획이 연기된 셈이다."(웃음)

-연임이 되자 신보 노조는 반대했다.

"노조는 늘 그렇게 반대해왔다. 이것은 잘못된 습관이다. 이사장뿐만 아니라 외부감사나 이사에 대해 낙하산이라며 반대해오고 있다. 습관적으로 일어나는 일이어서 노조의 생각도 시정될 필요가 있다고 생각한다."

-신보 이사장으로서 가장 보람 있었던 일은 무엇인가.

"국회에 있을 때는 (정치인으로) 손에 잡히는 결과물이 별로 없었다. 지역예산을 확보하거나 공약을 완수하는 일은 있었지만 대부분 공중에 떠있는 구름 같은 성과물이었다. 그러나 여기서는 한 달, 6개월, 1년이 지나면 결과물이 통계로 딱 나온다. 일을 잘하고 못하고가 다 드러난다. 직원들이 잘해준 덕분에 신보는 금년에 A등급을 받았고 82점에 0.2점 부족한 최고 수준이 된 것이다. 여의도에서는 이런 기쁨을 맛보기 어렵다.

에산을 따봤자 개인적으로 50억원이 넘어가는 사업이 없었다. 신보는 일반보증만 잔액이 40조원이 넘는다. 책임이 막중하다."

서명수 서울정경부장 diderot@msnet.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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